그해 겨울이 따뜻했네.
입주 1년을 넘기고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갑자기 수은주가 내려갔고, 어느 때보다 추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지난 11월 총회에서 엉겁결에 포레나송파 노인회 회장이 되었다. 내가 노인이란 것도 생경한데 거기다 회장이라는 직함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그동안 방관자였던 내가 책임을 맡고 살펴보니 120평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청소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SH공사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실무자와 면담을 통해 일정부분 미비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혹독한 날씨에 비어있는 경로당이 동파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관리사무소와 긴밀하게 움직였다. 개소가 되어있지 않은 공간이지만 열다섯 명 내외 어르신들이 점심을 드시고 오후에 나오셔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세계역사에 유례없는 대한민국 비약적인 발전의 중심에 계셨던 분들이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가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 드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힘을 내기로 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 개인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직 노인회 개설에 집중했다. 이재명 회장님과 장동석 동생이 앞장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위례신도시 주변에 대형업체가 부재해서 기부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전 아파트에서 회장으로 섬기셨던 장동석 님의 발 빠른 소개로 이곳저곳 전화를 하고 방문했다. 호의적인 곳보다는 알겠다는 선에서 대충 얼버무려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12월 7일 노인여가복지시설(경로당) 설치신고필증을 교부 받았다. 이어 12월 13일 비영리법인으로 고유번호증을 받게 되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포레나송파 경로당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22년 12월 21일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송파구 175개 경로당 회장들이 모여서 송년회 겸 사업 보고를 들었다. 표창받는 단지들을 보면서 의욕이 솟구쳤다. 그곳에서 만난 13단지 김윤모 연합회장님의 호의로 시의원 구의원 마천동 복지관 그리고 주민센터에 이르기까지 전화와 방문을 거듭했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나 결과는 미지수였다.
그러던 중 동대표회의에서 1,500만 원을 승인해주어 숨통이 트였다. 그럼에도 120평 공간을 다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십시일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입주민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받기로 하고 입대의에 구두로 허락받았다. 즉시 아파트 동마다 게시판에 안내 글이 부쳐지고, 카페와 아파트너에 내용을 올렸다.
올리자마자 송금 톡이 뜨기 시작했고 카페에 격려 글이 쇄도했다. 금액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과 이어진 사랑의 반응이기에 톡이 올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중에는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쩌면 일면식도 없는 어르신들을 향한 소중한 물질이기에 감사가 변하여 감격이 된 것이다.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었지만 입주민들의 정성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성원에 힘입어 설날 이전에 개소식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사랑받고 어르신들이 존경받는 행복한 아파트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하루가 기쁨이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는 나를 보고 돈 나오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거드는 아내 역시 껌딱지처럼 함께 다니고 있다.
94세에 소풍을 끝내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늘 시려온다. 따뜻한 온천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손잡고 왔었으면 하는 아쉬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무침이 그리움이다. 이제 남은 효도를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