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변방 반야월 각산골짜기에서 빈농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 왕복 30릿길이 넘는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하다. 지금은 대구와 뉴욕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는 두 친구와 함께 철모르고 그냥 열심히 다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가대 지휘자의 길에 들어서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부산지점으로 발령받아 고신 그리고 합동 소속의 소위 대형교회의 청년부 지도와 성가대 지휘자로 부산지역 교회 순례를 이어가다. 덕천제일교회 지휘자 시절 양산에 위치한 증산교회 주일밤예배 설교자로 5년여 봉사하다. 20여년의 부산생활을 접고 대구로 귀향한 후 합동측 서광교회에서 지휘자로 봉사하던 중 2001년 집사 안수받다.
대학 시절부터 성경과 현실 교회의 괴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내적 갈등이 시작되다. 부족한 신앙의 지적 갈급함을 신학자들의 저서로 채우기 시작한 습관이 지금까지 서점을 들락거리게 하다.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묵시문학을 지나 요즘 역사적 예수와 그 가르침을 천착 중이다. 사복음서의 그 예수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그 교회를 꿈꾸다. 예수가 저주하며 허물어버린 건물성전 보다 사람교회 살리는 역사적 예수의 사역에 적극 공감하다. 맘몬에 찌들어 손가락질 받고있는 왜곡된 예수상을 이 땅에 바로 세우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이다. 홀로 빛나는 대형교회를 거부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작은교회를 언제나 상상하다.
인생 예순을 훌쩍 넘기는 과정에 질곡의 시간이 없었겠느냐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신명기8:2~4 말씀은 언제나 위로의 말씀인 동시에 인생을 반추케 하는 생동하는 능력이다. 미사여구로 덧칠하지만 행간에 스며있는 차마 표현 못한 부끄러움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한다.
짧은 기간의 시무 장로직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으며 빌립보서2:5~8에 기록되어있는 "예수의 마음"을 마음에 품는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음에 이르도록 겸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