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본 연구는 "새 천년과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과제"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광범위한 주제에 접근하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고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접근은 새 천년이라는, Third Millennium의 성격을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기술한 후에,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도전들에 대해 복음주의 신학이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겠느냐 하는 일반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본 논문은 그러한 일반 문화분석에 대한 신학적 대응이라는 접근을 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약간 더 범위를 좁혀서 미국의 현재 복음주의 신학들의 다양한 발전 양상들을 기술하며 그와 더불어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가 당면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과제들에 대해 내적으로 성찰해 보고자 한다. 왜 하필이면 미국인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필자의 좁은 지식의 한계성을 고백해야 하는 동시에, 또한 한국의 기독교가 초반기부터 미국의 선교사들의 성격과 미국의 교회사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마도 가장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98년 봄에 내한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강연한 바 있는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약 신학자 D. A. Carson 박사도 필자와의 개인적인 사담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현 상황은 미국의 30년 전의 상황과 유사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가 사대주의적으로 미국을 따라가거나 아니면 혹시 영국이나 독일, 화란 등의 다른 외국의 신학을 직수입하며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 수정해야 할 것은 비판 수정 해가면서 대내외적인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미국 복음주의의 최근의(대략적으로 1970년대 이후) 신학적 변화의 양상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정체성 희석화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날의 현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도에 도움이 될만한 통찰(insights)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이다. 이 논문의 논지는 현재 미국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새로운 신학적 제의들은 본래 복음주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위협을 줄뿐만 아니라, 현대 복음주의의 형성과 변천의 역사를 해석하는 그들의 시각도 비판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보다 경계심을 가지고 참된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가야 할 지에 대해 다시금 심각히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 먼저 본 논의에 앞서서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워낙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는 그 자체가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하나의 복잡한 논제로서 독립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그것은 "깨기 어려운 호두"(a difficult nut to crack) 라는 별명이 붙어 있으며 복음주의자들이나 비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다루어져 오는 문제이다. 이처럼 복음주의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용어가 무척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개념의 넓은 외연 때문이다. 복음주의는 때로 신앙체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일정한 신앙체계를 지키려는 운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일정한 공동체 집단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요사이는 일정한 영성 또는 신앙 스타일이나 경향성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복음주의는 다양한 신학체계들과 기독교 내의 다른 여러 전통들을 포용하는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규정하는 자들에 따라 달리 이해되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기 무척 쉽다. 복음주의의 정의 문제는 단순한 용어 정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복음주의 운동의 성격과 정체성과 관계되며, 더 나아가 신학적 또는 역사 기술의 문제들과 얽혀있는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이다. 특별히 미국의 개신교 역사기술(historiography)의 관점은 복음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내 신학적인 변화와도 맞물려 복음주의의 정의에 대한 모델이 변화되고 있으니 이 또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성에서도 불구하고 본 논문의 논제의 초점이 달리 놓여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정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고,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제안과 더불어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복음주의의 의미들에 대한 간략한 구분과 함께 복음주의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제언코자 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사용자 자신이 각각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명시하자는 것이다. 1997년 "복음주의 신학의 최근의 동향" 이라는 제목으로 성결대학에서 열렸던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제 28차 논문 발표회를 기억해 본다. 기조 강연 후 토의에서 복음주의라는 개념이해의 혼란으로 인한 대화자들 사이의 토의가 서로 초점이 맞지 않고 어긋났던 것을 되돌아본다. 그러한 용어의 혼란으로 인한 어긋나는 토의는 그 다음 날 있었던 조직 신학 분과에서도 여전히 나타났었다. 그 때 필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복음주의에 대한 신학적 정의와 역사적 정의가 혼돈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복음주의에 대해 논할 때 신학적 정의, 역사적 정의, 사회학적 정의 등의 범주별 이해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복음주의에 대한 논의자들마다 어떤 범주에 대해 논하는지를 어느 정도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음을 본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오면서 지향하는 바는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의 복음을 그대로 믿고 수호하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치고 수호했던 복음을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천명하고 그에 대한 신앙를 세우는 신학적 노력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미의 복음주의는 신학적으로 정의되는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파와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신앙를 세우는 모든 신학적 운동과 노력을 포함한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라는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복음주의도 이러한 당위적 의미로서, 장로교뿐만 아니라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파 등 복음신앙을 보수하는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자와 목회자의 신학모임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대별되는 보수 신학적 연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갈라지고 분열된 보수주의내의 진정한 교회연합운동의 기초가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를 중심으로 세워지기를 희망해 본다. 반면에 이와 같이 지향하는 바의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와 구별되는 역사적 의미의 복음주의는 여러 역사적 유형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복음주의와 좁은 의미의 복음주의로 또 다시 나뉠 수 있다. 광의의 역사적 복음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복음신앙 회복 운동과, 17세기의 청교도 운동과 경건주의 운동,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웨슬레와 휫필드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과 18-19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한 1, 2차 각성운동 및 다양한 웨슬레적 경건주의 분파운동, 20세기 초엽의 근본주의 운동, 오순절 운동과 20세기 중엽 근본주의 운동의 배타적 경향성을 반대하고 나오는 미국의 복음주의운동 등을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전통을 의미한다. 이 중 특별히 20세기 중엽 이후에 발전 형성되어 오는 미국 중심의 복음주의를 일컬어 협의의 의미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것의 신학적 정의와 역사적 정의 그리고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구분하면서 되도록 의미를 좁혀주는 형용사와 함께 사용하여 그 용법을 분명히 해주면 혼란을 다소 줄일 수 있을지 않을까 한다. 본 논문에서는 복음주의를 주로 역사적으로 20세기 중엽 이후의 미국의 복음주의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할 것이며, 한국의 복음주의를 논할 때는 사회학적으로 현재 형성되어 있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라는 장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할 바의 당위적 의미의 복음주의로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복음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신학적 의미이건 역사적 의미이건, 항상 복음주의는 성경의 역사적 복음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신앙의 두 축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본다. 흔히 복음주의에 대해서 신학적으로는 개혁주의적 이해와 알미니안적 이해의 대립을 말하고 역사적으로는 종교 개혁 전통의 이해와 경건주의의 전통의 이해의 대립을 말한다. 이와 같은 대립은 어디까지나 복음주의내의 두 축으로서 신학과 경건 또는 말씀과 체험이 하나가 되어야 하듯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함께 포괄되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에 대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정의를 결론으로 인용하고자 한다. "복음주의는 바른 교리에 대한 개혁주의적 강조와 '산 신앙(a living faith)'에 대한 경건주의적 강조의 창조적 결합이다" 또한 "복음주의는 에큐메니칼 신조들에 나타난 바,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서 특별히 그러한 신앙의 개인적인 적용과 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어떠한 것도 복음 전파의 적용의 사명보다 앞서는 것에 대해 허락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필자는 이러한 맥그라스의 정의가 복음주의의 본질을 바로 기술한 것이라고 보면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복음주의의 역사를 기술하며 해석해가야 한다고 믿는다. III. 미국 20세기 복음주의의 변천에 대한 간략한 개관 역사를 개관한다는 것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알게 모르게 전제된다. 복음주의의 역사 개관도 상기한 바대로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적 복음과 개인적 신앙의 통일성이라는 본질적 이해에서 출발하여 17세기 청교도 운동이나 18, 19세기 경건주의 부흥운동들과 그 지류들 뿐 아니라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과 20세기 초 근본주의 교리수호 운동을 모두 포괄하는 연속적인 복음운동의 진행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변천을 개관하는 작업은 본 논문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방대한 작업이 요구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간략한 스케치를 하고자 하는데, 그 첫째 목적은 주로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나오게 되는 배경과 상황을 설명코자 하는 의도이며, 그 둘째 목적은 복음주의 신학의 울타리를 대략적으로라도 그려보기 위한 의도이다. A. 근본주의 운동과 신복음주의 운동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근본주의와의 관계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시발점을 1942년 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결성과 더불어 근본주의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으로 시작하는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으로 본다. 우리는 이 신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것을 본다. 본래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그 운동의 핵심인물인 Carl Henry나 Harold J. Ockenga에 의해 사용되었었다. 그 운동은 본래 세 가지 포부를 가지고 시작되었다고 평가되는데, 첫째는 1920년대의 자유주의자와의 교파적인 갈등을 통해 변질되어버린 미국의 19세기 복음주의 전통의 회복이요, 둘째는 미국 문화의 중심세력으로 다시 부상하기 위한 노력이요, 셋째는 상기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통 개신교도들 사이의 연합전선 구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신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 미국의 찬란했던 복음주의 제국의 새로운 회복을 꿈꾸며 나왔던 운동이다. 그리고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근본주의의 성격에서 변화된 신 근본주의의 반 지성주의와 배타적 분리주의를 극복하려는 개혁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그 운동은 기독교의 복음을 현대 문화에 적응시키려는 수정주의로 매도되어졌고 신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본래 복음주의에서 벗어난 운동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별히 근본주의 운동의 성격의 변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신복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이질적인 그룹들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근본주의 운동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그 본질을 "19세기 말 북미에서 일어난 보수적이며 성서적인 기독교 정통주의를 보존하고 촉진하려는 목적에서 일어난 운동으로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교리 수호에 집중한 운동"이라고 볼 때, 넓은 의미로서의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의 의의는 자유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고 교리 수호를 통한 복음 신앙의 보존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당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성경학원의 설립과 대중 언론 매체를 통한 복음 신앙의 대중적 확산을 추구한 면도 그 의의가 크지만, 그 보다 더욱 더 고유한 그 운동의 특성과 의의는 역시 다양한 성경대회 또는 사경회를 통해 복음 신앙의 근본적인 신조들을 계속해서 수호,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학문 연구와 변증을 통한 근본 교리들에 대한 수호는 12권의 『근본 교리들』(The Fundamentals)이라는 소책자를 1910-15년 사이에 출판 유포시키기에 이르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신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서 LA 지역 두 거부 Lyman과 Milton Stewart에 의해 재정적으로 지원 받아 이루어 진 보수 신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근본주의의 교리 수호적 신학운동으로서의 성격은 1920년대의 자유주의자들과의 교단 내 세력다툼을 통해 점차로 바뀌어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반 지성주의적, 분리주의적, 배타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1년 Carl McIntire를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연합체인 미국교회협의회(the American Council of Churches)를 결성하게 되고, 1948년에는 WCC에 반대하는 국제기독교협의회(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근본주의와는 다른 주류를 이루는 남 침례교는 비교적 일관되게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의 입장을 지켜갔으나, 북 침례교에서는 커다란 소용돌이를 겪고 1923년에 침례교 성서 연합을 결성하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1932년에 근본주의 침례교단의 창립을 이룬다. 침례교 내에서의 신 근본주의 운동은 1950년의 성서침례회의 창립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Jerry Falwell이 이끄는 정치적 행동 그룹인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결성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Harold J. Ockenga와 함께 신복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Carl Henry나 Harold Lindsell 같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초기 근본주의자들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주의의 근본 교리 조항들을 모두 수호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주의-근본주의 논쟁으로 인해 분리주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성을 띄게 된 근본주의에 대해 개혁하는 동시에 복음주의가 다시 한번 미국 문화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기를 바라며 이 운동을 추진해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의 신복음주의 운동은 어디까지나 앞서 기술한 광의의 복음주의 운동의 일환이며 또한 20세기 복음주의자들의 일 세대 중심세력으로서 이 운동의 정통성은 후에 Kenneth Kantzer, D. A. Carson, David F. Wells, Mark Noll 등의 이 세대 성경 중심의 보수적 복음주의자들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근본주의에 대해 보다 완전한 결별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세력이 섞여있었고 신복음주의 운동 내에 잠재해 있던 또 하나의 진보적 성격은 Fuller 신학교의 변천과 함께 표면화되게 되며, 근본주의자나 보수적 개혁주의자들에 의한 공격을 정당화시켜주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후에는 진보적 역사 해석자들에 의해 진보적 복음주의의 시발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B. 풀러신학교의 변천과 성경관 논쟁
신복음주의 운동의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서 보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로 향해 가는 시발점이 되는 사건은 E. J. Carnell의 Fuller 신학교 학장 취임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Ockenga는 보스턴에서 목회 하는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Fuller 신학교의 학장직을 그만두게 되는데 대신에 Carnell이 당시 교수들 사이에서 보다 유력한 Carl Henry를 제치고 스스로 자천하여 학장직에 오르게 된다. E. J. Carnell은 일종의 과도기적 인물(a transitional figure)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정통과 사랑을 함께 강조하는 양면성 때문이다. 또한 그의 성경관은 Warfield의 전통을 따르는 성경의 완전 무오설을 취하지 않고, Orr의 전통을 따르는 성경의 적극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만 무오설을 인정하는, 제한적 무오설과 가까운 중간 입장을 취한다. 제한적 무오설은 불오설(infallibility)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은 그것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에 한해서, 즉 신앙과 계시 등 구원에 관계된 부분에 한해서 무오하고 그 외의 역사, 과학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의 취임연설은 초기 Fuller 창립에 합세했던, Wilbur Smith, Harold Lindsell, Charles Woodbrige, Gleason Archer등 보수 세력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 후의 발전은 점점 분리를 향해 진행된다. Carl Henry는 1956년에 Christianity Today 잡지에 편집장을 맡기 위해 Fuller를 떠났고, 후에 강한 성경관의 소유자 Harold Lindsell도 그 뒤를 따랐다. 진보적인 젊은 교수들의 임용과 함께 Wilbur Smith와 Gleason Archer등은 그들과의 투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마침내 바르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풀러의 창설자 Charlse Fuller의 아들, Daniel Fuller가 1962년 12월 1일 새로운 신학과 학과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의 연설은 분명한 수정주의 성경관의 표명이었고 이는 William Lasor, George Ladd 등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것이 소위 그 유명한 "Black Saturday" 사건이다. Carnell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젊은 교수들은 수정된 성경관, 즉 제한적 무오설에 동의하게 된다. 1963년 David Hubbard가 새 학장이 되면서 Fuller는 완전히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간다. 보수적인 교수들은 일부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로 옮겨가게 되고 1967년에 Carnell도 그의 지병인 우울증으로 인한 약물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렇듯 풀러 신학교의 변천은 신복음주의 운동 내부에 있던 보다 진보적인 세력의 확장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세기 복음주의 내의 그러한 이질적인 세력들의 갈등은 특별히 성경관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의 성경관 논쟁은 근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대항해서 강경하게 취하게 된 완전 무오설의 성격과 그 위치를 밝혀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의 Harold Lindsell의 『성경에 관한 논쟁』(The Battle for the Bible)이라는 책과 그 책의 후속편 The Bible in Balance (1979)는 복음주의 내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하는 책으로서, 역사적 비평 연구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며 완전 무오설을 복음주의와 비복음주의로 가르는 척도로 사용한다. 그러나 Carl Henry 같은 경우 그 자신의 입장은 완전 무오설이면서도, 이 완전 무오설을 일종의 반동작용으로서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이 사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복음주의를 분리시키는 지혜롭지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그는 현대 복음주의 안에 성경의 무오성의 가르침에서 떠난 복음주의 내의 강한 조류에 대해 비판하면서, - Bernard Ramm, Daniel Fuller, George Eldon Ladd, Paul Jewett, Donald Bloesch, Dewey Beegle, G. C. Berkouwer, F. F. Bruce, Arthur Holmes, 와 Clark Pinnock등의 - 성경의 무오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의 원류인 James Orr의 제한적 무오설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지만 그의 기본 신학적 입장은 복음적이었다고 보면서 역사적 비평연구도 자유주의적 잘못된 전제를 제외하면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칼 헨리교수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향해 완전 무오설을 가지고 정통과 이단으로 나누는 정책보다는 복음주의자들이 연합해서 대 사회적, 대 문화적 사명을 감당할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성경관의 도전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대응은 1977년 국제 성경 무오성 심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를 조직해 1978년에 성경 무오성에 관한 시카고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Francis Schaeffer, James Boice, John Gerstner, Gleason Archer, Kenneth Kantzer, R. C. Sproul, J. I. Packer등 이 외의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 목회자, 신학자들이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진보적 세력의 더 큰 반동으로- 성경관 논쟁은 계속되고 80년대에는 해석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고조된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들로 더욱 더 복잡하게 발전되어 갔다. Jack Rogers와 Donald McKim은 그들의 공저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79)의 출판을 통하여 성경의 완전 무오설은 기독교의 전통적 성경관이라기 보다는 17세기 스콜라적 개신교 정통주의의 산물로서 프린스톤의 구학파에 의해 부활된 견해이며 자유주의와의 논쟁가운데 전통적인 견해처럼 오해되어졌다고 하며, 본래 전통적인 견해와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는 제한적 무오설의 견해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Trinity의 John Woodbridge는 Biblical Authority: A Critique of the Rogers/McKim Proposal (Grand Rapids: Zondervan, 1982)출판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논지로 역사적 기록들을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Clark Pinnock과 같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도 그들의 견해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러한 성경관 논쟁에 대해서 사회 복음주의와 변증법적 신학의 입장을 가지는 성공회 신학자, Gary Dorrien은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그에 의하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둘러싸고 그 견해 자체보다 그것을 정통성의 기준으로 삼는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의 전투적이고 배타적이며 독단적인 태도 때문에 갈라서게 된 것이며, 이러한 성경관 논쟁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두려움과 적대감을 드러내 주며, 복음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성경관 문제는 종교 개혁의 양대 원리 중 하나로서 복음주의의 근본 성격을 결정하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갈등이었다고 본다. 부분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반동적인 강경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논쟁은 본래 근본주의의 개혁을 부르짖을 때부터 함께 했던 이질적인 신학적 전제들을 가진 진보적 복음주의의 발전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C. 복음주의의 진보적 발전과 20세기 말기 상황
Fuller 신학교의 변천과 성경관 논쟁 이외에도 복음주의 내의 진보적 발전은 80년대에 시도되었던 자유주의자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성공회 자유주의 신학자 David L. Edwards와 복음주의 신학자 John Stott 사이에 여러 가지 주요 문제들을 놓고 대화한 책, Evangelical Essentials: A Liberal-Evangelical Dialogue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88)와 Clark Pinnock 과 Delwin Brown의 Theological Crossfire: An Evangelical/Liberal Dialogue (Grand Rapids: Zondervan, 1990)의 출판은 불과 이, 삼십 년 전 복음주의 신학의 초기의 논쟁적인(polemical) 성격과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책들을 통해 다시 한번 자유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은 전혀 다른 인식론적 틀에서 행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긴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의 보다 포용적이고 대화적인 태도는 많은 변화를 시사한다. 이 외에도 복음주의 내의 새로운 복음주의자들의 출현을 알리는 다양한 연구가 70년대와 80년대에 있었다. 특히 Richard Quebedeaux의 The Young Evangelicals (1974)나 The Worldly Evangelicals(1978), 또는 James Davison Hunter의 Evangelicalism: The Coming Generation (1987) 등이 주목할 만하며, 그 중에 Hunter는 현대주의적 신학이라고 여겨져 왔던 신학적 입장들을 취하면서도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내에 많이 생겨났고 그들은 소위 전통적인 이해로부터의 탈피와 자유를 주장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움직임은 은밀하고도 조용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간파했다. 이런 연구들보다 덜 자세하지만, 광범위하게 포괄적인 변화를 피력하고 있는 Robert Brow의 글 "Evangelical Megashift" Christianity Today, Feb 19 (1990)는 복음주의 신학의 커다란 변천을 실감나게 해준다. 그에 의하면, 복음주의 신학내의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각 부분들에 대해서 그러하다고 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해서 과거의 주권적인 왕이며 공의로운 심판자로서의 이해에서 보다 삼위일체적 사랑과 가족 관계적 따뜻함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또한 법정적 의의 개념과 함께 그리스도의 형벌 대속적 구속의 개념도 사라지고 오직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의 현현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교회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와 죄에 대한 심판, 지옥 등의 주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고 인간의 신앙의 결단과 마음이 중요하게 되고 무엇보다 보편 구원설적인 이해가 전면에 들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은 C. S. Lewis의 우화 소설들을 통해서 대중들의 생각 속에 저절로 유포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David F. Wells는 복음주의 신학 내에 스며드는 현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며 정체성의 희석화를 지적했으나 Clark Pinnock은 이러한 사상은 복음주의 전통 내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알미니안 신학의 발흥이라고 하며 이러한 알미니안 신학이 복음주의 신학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발 돋음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90년대에 들어서는 복음주의 신학의 진보적 형태와 보수적인 형태의 분리가 보다 뚜렷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도 정확히 이 분화라고 하기 보다는 다양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복음주의 내의 신학적 통일성의 부재는 공공연히 시인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정체성의 희미화는 신학 뿐 아니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전체적으로 맞이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복음주의 정체성의 희석화 현상은 복음주의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함께, 미국 기독교 주류의 복음주의로의 회귀 현상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는 미국의 복음주의의 부흥기(the Evangelical Renaissance)라고 불렸고, 타임지와 뉴스위크지 모두 1976년을 "복음주의의 해(The Year of Evangelicals)" 라고 썼다고 한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확장과 함께 너무나 넓고도 깊게 문화적 수용이 이루어져 교회들과 일반 신도들은 성경적인 독특성보다는 현대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많은 복음주의 분석가들은 말한다. 이러한 문화적 수용의 분위기는 자연히 신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준다. 신학적으로도 이제는 더 이상 자유주의와의 강한 대치 상태에 있지 않고, 그런 사조와 함께 신조들을 중심으로 한 공통의 통일성을 잃어가면서 일정한 중심이 없는 다양하고 잡다한 신학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가들도 더 이상 복음주의의 공통의 정의가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일치성은 허구라고 진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현 상태를 위기(crisis)라고 일컬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드높게 일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와 같은 20세기말의 복음주의의 위기의 모습은 근본주의의 편협한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문화를 향해 보다 열려진 자세로 복음을 수호하며 적용하려고 했던 복음주의 운동의 주변적 부작용이라고 평가된다. 이처럼 넓은 복음주의의 주변의 문화적 수용의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어째든 복음주의는 다시 한 번 미국의 괄목할 만한 세력으로 발 돋음 했고 그 중심에는 초창기부터 계속적으로 정체성 확립의 노력을 해왔던 일관성 있는 복음주의 신학적 노력이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언급을 안 했지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에서 채택된 로잔 언약을 펴내 복음주의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개혁 의지를 표명한 이후, 상기한 바처럼 성경관에 대한 도전에 대해 세계복음주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를 구성하고 성경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또한 80년대 말의 복음주의 정체성의 위기 의식이 드높았을 때 NAE와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이 공동으로 지원하여 Evangelical Affirmation Conference를 열어 Carl Henry와 Kenneth Kantzer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의 중심 신조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Evangelical Affirmations (Grand Rapids: Zondervan, 1990)를 펴냄으로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다. 2000년으로 접어드는 현재도 복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복음의 통일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해 가고 있다. 1998년에 두 명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제의에 의해 미국 복음주의의 중심이 되는 신학자들 및 지도자들은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표명하는 작업을 또 다시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복음주의 신학이 여태까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도전에 대해서 성경의 권위나 명제적 진리관을 세우는 데에만 주력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현재 후기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 그들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함께 통일된 이해를 표명할 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적 이해를 표명하려는 이 시도는 매우 뜻 깊은 것으로서 우리 모두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새 천년의 그들의 첫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복음을 보수하려는 세력이 다수를 이루는 미국의 기독교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기에 강하게 밀려드는 현대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의 강력한 대응과 그들의 기본 신조 아래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려는 복음주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겠다. 맥그라스가 보는 대로 현재 기독교의 힘의 발전소는 복음주의이며 앞으로 기독교의 미래도 복음주의가 얼마나 그 독특성과 정체성을 지키며 현재의 다양한 도전들을 극복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IV.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신학적 이탈과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문제 A. 진보적 또는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
필자는 앞서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의 초창기부터 함께 있어온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발전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간략한 개관과 함께 참된 복음주의의 중심 세력을 기본적으로 근본주의 운동의 연계성 가운데 있으면서도 보다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수용과 비판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세력으로 잡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Richard Quebedeaux의 분류에 따르면, 교파적 복음주의 (Establishment Evangelicalism) 즉 Carl Henry, Billy Graham, NAE, Wheaton College 그리고 초기의 Fuller 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이 세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누구인가? Gary Dorrien은 복음주의자들을 역사적으로 네 종류의 파라다임으로 구분했다. 첫째 파라다임은 "고전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재세례파들을 이에 포함시켰다. 둘째 파라다임은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면서 18세기 독일과 영국의 경건주의 운동들과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여기에 분류했다. 셋째 파라다임은 20세기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에서 비롯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는 복음주의가 이렇게 다원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다원주의에 잘 대응하지 못해왔다고 언급하면서, 넷째 파라다임이야말로 새롭게 기대를 걸어 볼만한 그룹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을 탈보수적 복음주의(postconservative evangelicalism) 또는 진보주의적 복음주의(progressive evangelicalism)라고 명명했다. 그에 의하면, 탈보수적 복음주의는 최근에 점점 복음주의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며 그들은 근본주의자들과 정도와 스타일에 있어서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종류의 신학자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여기에 속하는 자들을 William J. Abraham, Rodney Clapp, Stanley Grenz, Rebecca M. Groothuis, Henry H. Knight III, J. Richard Middleton, Nancy Murphy, Clark Pinnock, Miroslove Volf,와 Brian J. Walsh등이라고 했고 다른 곳에는 Roger Olson, David Dockery, Philip D. Kenneson, Mark McLeod, Steven J. Land 등을 더 첨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들의 성경관은 신정통주의와 수정주의적 견해인 제한적 무오설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복음주의의 명제적 계시관과 진리 상응설적인 실재론을 비판하면서 포스트모던 상대주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아 성경과 신학의 내러티브 성격을 강조하며, 구원의 의미와 범위도 상당히 넓게 포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사회 부정의와 여성 차별에 대한 개혁을 지향하며 그 중 몇 몇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부인하기도 하고 또한 지옥에 대한 이견을 펴기도 한다. B. 신학 방법론
Milard Erikson은 최근에 그의 The Evangelical Left: Encountering Postconservative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7) 라는 책에서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특별히 신학방법론, 성경관, 신론, 구원론과 관련하여 몇 몇 중요한 신학자들의 새로운 견해들을 소개 비판하고 있다. 첫째로 신학 방법론에 대해서는 Bernard Ramm, Clark Pinnock, Stanley Grenz와 James McClendon의 견해를 소개 비판하고 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전통적 신학방법론에 대해 비판적이나 Ramm의 경우 어떠한 특정한 대안이 없이 Barth의 신학방법론이 실제로 현대주의 도전에 가장 잘 대응한 모델로서 복음주의자들의 재평가를 호소할 뿐이라고 본다. Clark Pinnock 같은 경우 초기의 증거주의적 복음 변증의 입장에서 어떤 특별한 성령체험을 한 이후 신학이 점점 많이 변해 간 것을 볼 수 있는데, 신학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웨슬레주의의 신학에 있어서의 사중적 권위(the Wesleyan quadrilateral of authority), 즉 성경, 전통, 경험, 이성의 권위를 가르치면서도 이러한 전통에 충실하지 않고 내러티브 신학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는 복음주의 신학방법인 명제적 접근을 거부하고 신학은 기독교의 이야기를 추상화된 교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선포하고 탐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학은 실제의 사실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기 보다는 단지 이차적 차원(a second-level)의 노력이라고 했다. Staley Grenz도 Revisioning Evangelical Theology에서 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의하면서 후기 근본주의 복음주의자(post-fundamental evangelicals)들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논쟁에 그대로 영향을 받아서 신학에 대해 교리중심으로 이해하며 접근하는데, 본래 19세기 복음주의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복음주의였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19세기 복음주의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신학의 기본적 범주로 중요시 한다. 그는 Pinnock등과 함께 계시와 신학에 대한 명제적 접근을 부인하고 내러티브 신학을 할 것을 제의한다. 그는 George Lindbeck의 The Nature of the Doctrine에 나타난 기능주의적 교리관에 동의하면서 신학은 전통적인 방법대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요약이라기 보다 공동체의 신앙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고 했다. 에릭슨은 이들의 신학 방법론의 제의에 대해 명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내러티브에 대한 신학을 하자는 것인지 신학하는 형식 자체를 내러티브로 하자는 것인지 분명치 않으며, 정작 이들 자신도 신학방법론에 대한 논의인 메타 신학을 하고 있지 내러티브 신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내러티브 신학은 어떤 형식이 될지? 설교나 기존 성서신학과 어떻게 다를지? 또한 성경의 50%정도만이 내러티브라고 하는데 다른 쟝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등등의 문제들을 제기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들의 진리관은 실용주의적 기능주의 진리관으로서 키엘케고올에게서 기원하는 주관주의적 진리개념에 의존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진라관에 관한 에릭슨의 마지막 비판이 중요하다고 보며 오늘날 복음주의 내에 흘러 들어온 후기 자유주의자들의 실용적 기능주의적 진리관은(pragmatic functional truth) 무엇보다도 복음 진리의 실재성을 훼손하고, 신앙의 내용이 되는 교리들을 일종의 공동체의 규범들로 인식하면서 그것의 존재론적 진리성에 대해 간과하는 아주 본질적인 도전으로 인식한다. 이것은 서양의 지성계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이 하면서 야기되는 문제로서, 인식론에 있어서 파라다임 변화와 관계된다. 모더니즘의 객관적 진리에 대한 과학적 이성에 의한 방법적인 접근에 회의를 느낀 서구의 지성은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 인식론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아무도 객관적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모든 진리는 각각의 주체에 의해 규정되며 그 주체는 또한 역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동체의 역사성에 의해 한계 지워 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대주의 인식론은 진리를 더 이상 객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나 역사에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현재 복음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으로서 이러한 도전 앞에 참된 복음주의 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성경의 진리성을 실재적인 참으로 선포하고 증거 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복음주의 신학은 여러 가지 반성적 성찰을 통해, 모던적이지도 않고 포스트모던적이지도 않고 오직 성경적이기를 항상 추구해야 한다. C. 개방적 신론
탈보수주의적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특별히 전통적 신론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련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개방적 신론"(The open view of God) 또는 "창조적 사랑의 신론"(creative love theism), "자유의지 신론" (free will theism)이라고 부르는 신론을 주장한다. 여기에 속하는 인물들은 Clark Pinnock, Gregory Boyd, Stephen Franklin, Richard Rice, David Basinger 등으로서 상기한 바 Robert Brow가 "Evangelical Megashift"에서 기술한 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개념을 법정에서의 심판자와 피고인과 같은 이미지보다 가족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이해한다. 이러한 신론은 특별히 구원론과도 밀접히 연관되어서, 개방적 신론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구원의 범위에 대해 보편 구원설적인 경향을 가지는 포괄주의를 함께 주장한다. 개방적 신론은 전통적 유신론을 고정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신 개념만 강조하는 헬라적인 신론이라고 비판하면서, 보다 하나님의 내재성과 관계성의 측면을 크게 강조한 형태의 신론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나님의 예지(divine foreknowledge)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체험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새로운 사건들에 상관적이며 깊은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개방적 신 개념을 가르치는 자들은 전통적인 전능자 하나님의 개념과는 달리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 안에서 세상에 의해 한정 받도록 스스로 선택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체험도 세상과 함께 진보적이며, 발전적이며 개방적이라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랑의 속성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보면서 요일 4:8을 가장 중요한 구절로 삼고 이러한 하나님은 그의 사랑 안에서 세상 전체를 품으시고 세상과 함께 고통하고 미래를 창조적으로 헤쳐나가는 분이시라고 본다. 이들은 특별히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정에 대해 미리 아신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이상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상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Clark Pinnock은 이러한 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알미니안 전통에 늘 있어온 사상으로서 현재 지배적인 칼빈주의적 하나님 이해에 대한 반발로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평가하기를, 개방적 신론은 고전적 유신론과 과정 신학과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는 신 이해로서 성경에 충실하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나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성,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사상과 맞지 않는 성경의 가르침들에 대한 설명이 부적합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 사상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서로 상반적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전지성을 부인하는데, 성경은 분명 양쪽을 다 말하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 한쪽을 희생시켜서 적합한 균형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70년대 유행하던 신정통주의적 성서신학 운동(biblical-theological movement)이 가지고 있던 헬라적 사상과 히브리적 사고의 대비와 후자만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잘못된 도식을 전제한다. 더군다나 실천적인 영역에 있어서, 이 견해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인간의 미래를 주관하시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께 무엇 하러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아울러 종말론의 문제가 심각히 제기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녹의 경우 자신은 알미니안 전통의 회복을 부르짖지만 사실 그의 견해는 알미니안 전통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다. 적어도 복음적 알미니안 전통은 하나님의 예지를 부인하지 않았고, 특히 17세기의 알미니우스는 어거스틴의 하나님 인식 방법에 대한 논의를 그대로 따르면서, - 즉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아시는 초시간적인 하나님의 인식 방식 -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피녹이나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은 오히려 과정 신학, 또는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내러티브 신학 등 현대 문화의 영향이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개방적 신론의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을 제한하려 했다는 점으로서 Douglas F. Kelly가 비판한 바와 같이,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가장 유감스럽게 퇴보한 형태의 비정통(heterodox)적인 가르침이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이 가르쳐온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포괄과 종합을 무시하고, 전통적 신론을 무조건 왜곡시켜 제시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신학적 제의를 따를 것을 촉구한다. 더군다나 그들은 고전적 알미니안 전통에도 충실하지 않음을 Timothy George는 다음의 그의 주장에서 암시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전능성과 그의 주권적인 사랑은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로 상반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이해되어 왔고, 따라서 루터, 칼빈, 그리고 심지어 알미니우스도 결코 그것의 모순을 발견한 흔적이 없다. 결국 고전적 전통은 개방적 신론주의자들이 말하는 위협하는 하나님 이상의 좀더 포괄적이고, 풍부하고, 위대하면서 복합적인 신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Alister McGrath는 역으로 오히려 전통적인 신 이해 속에 고통 당하며 심지어는 십자가상에서 죽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간과하며 특별히 Charles Wesley의 찬송가에 나타난 풍부한 그런 개념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또한 웨슬레 신학에 대한 깊은 연구도 없이- 다른 어떤 것을 위해 그러한 복음주의 전통들을 송두리채 버리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D. 포괄주의 구원론
복음주의 내에서 이러한 특수한 신론보다 더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상은 포괄주의(inclusivism)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개방적 신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구원의 범위에 대해 보다 넓게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아니면 적어도 기독교의 구원의 배타성을 그리 강하게 선포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원주의의 영향으로서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구원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유일성까지 선포하는 것이 복음주의적 복음전파라고 할 수 있으며 포괄주의의 구원관은 분명 기독교의 복음을 현대의 다원주의와 타협해 변형시킨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본다. 그러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종교다원주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종국성은(finality) 인정하나 다른 종교 안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pre-messianic believer)들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대표도 역시 Clark Pinnock이며, John Sanders나 대부분의 개방적 신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영국의 C. S. Lewis 등도 포괄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괄주의가 현재 이렇듯 넓게 지지 받고 있는 주된 배경은 서양의 종교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드높아진 관심 때문일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 상대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는 다원주의의 기초와 뿌리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각각의 종교와 문화들을 상대화시킴으로서 서로 동등하면서도 각기 고유하고 다양한 현상들로 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종교도 유일한 진리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것과 더불어 제 3 세계에 대한 과거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각 종교와 문화간의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의 당위성을 인식하는 20세기 후기의 정치적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나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종교간의 평화공존의 당위성과 상호 존중을 인식하며 실천해야 하는 동시에 원리상 복음주의자라면 복음 진리의 배타성을 타협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록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인 구원론의 부분에까지도 수정을 감행하고 있다 할 지라도 말이다.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대표인 Clark Pinnock이 가르치는 포괄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학은 구원의 보편성과 포괄성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그것은 딤전 2:4절에나 요일 2:2에 나타난 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에 따라 그러한 것이며, 또한 기독교 밖의 수많은 사람들과 종교들에 대해서 무조건 모두 멸망 받는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정신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도 또한 모든 민족들 간에 역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수령자들이 될 수 있다. 이 견해는 다른 종교들도 인류 구원의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그 역할은 완전한 구원을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본다. Pinnock은 자신의 견해가 Karl Ranner처럼 다른 종교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강경한 포괄주의와는 달리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는 보다 온건한 양태적 포괄주의(modal inclusivism)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온건한 포괄주의를 표명한 카톨릭의 제 2차 바티간 공의회의 공식 입장에 대해 찬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주의의 견해가 현재 기독교 주류의 견해임을 명시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성령론적 접근(pneumatological approach)이라고 말하며 모든 민족들 간에 역사하는 성령의 비밀스러운 역사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무의식적 또는 숨은 신앙(implicit faith)을 가진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들이(pre-messianic believers)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곧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분리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엔 어디든지 항상 은혜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전의 신자(pre-messianic believers)들은 그리스도인(Christians)들과 구원 지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며, 전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uniqueness)의 개념을 종국성(finality)의 개념으로 바꾸어 이해한다. 이 견해는 더 나아가 무의식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점은 이생 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가능하다고 보는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postmortem encounter)에 대해 주장한다.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에 대해 베드로전서 3:17-19과 4:6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의 가르침을 가지고 뒷받침하면서, 전생에 그리스도를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나 아기 때 죽은 사람들 또는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두 번째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해석과 사상을 편다. 여기에서 Pinnock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유기 하시기로 예정했다는 이중 예정론으로서 이것은 본래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고 Augustine에 이르러 만들어진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예정은 오로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을 멸하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인간 자신의 종말에 대한 자유의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포괄주의의 견해에 대해서, 에릭슨은 역시 그들의 성경 구절들의 선택적 사용과 주입식의 해석(eisegesis)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피녹의 경우 낙관적인 해석 원리(a hermeneutic of optimism or hopefulness)로 일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반계시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하는 성경의 예들, 고넬료나 멜기세덱, 또는 아브라함 등의 경우도 피녹이나 샌더스 모두 그들의 주장을 읽어내는 방식의 애매한 주석을 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에 대해, 지옥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과정으로 이해되어 오는 것이 보통인데, 그리스도 이후 사람들의 죽음 이후의 개종 가능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필자가 보기에, 피녹의 낙관적인 포괄주의의 기본 공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가르침인데 그것과 하나님의 공의와의 관계가 잘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개념은 개방적 신론과 연결 지어 볼 때, 결국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만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의 의지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골고루 기회를 주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로서 현대 민주적 사고 방식를 하나님께 대입시킨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서 또 다시 개방적 신론이 가졌던 문제, 미래에 대해 제한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과연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까 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돌아온다.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성경에 약속된 영광의 종말론적인 왕국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희망 사항에 따라 투사된 하나님과 그리고 근거 불명의 낙관주의로 재조명된 구원론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E.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 또는 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sm)
영혼 멸절설 또는 조건적 불멸설은 새로운 이론은 아니나 현재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는 견해로서 여러 형태가 있지만, 한마디로 지옥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신자들의 종말은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며 신자들은 영생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르치는 자들로 John Stott, John Wenham, Michael Green, Stephen Travis, Philip Edgecumbe Huges등의 영국의 신학자들과 미국에서는 대표적으로 Clark Pinnock 과 Edward Fudge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르침들은 접어두고, 일단 그 기본 논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유한한 죄를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서 고문을 당하게 하신다는 전통적 사상자체가 어불성설의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즉 전통적 지옥론은 비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도 건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Pinnock은 성경이 말하는 불신자의 종말은 파멸(destruction)의 개념이 주요이지 영원한 형벌(eternal punishment)이 아니라는 것을 또 다시 성경의 여러 곳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불멸성(immortality)은 헬라적 사고에서 온 사상으로서 성경에서는 본래 인간을 유한한 존재로 기술하고 있으며 인간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가 없는 한 그 존재가 소멸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신학적으로 볼 때, 아무리 죄인이지만 영원한 불 못에 던져 놓고 끊임없이 고문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일 수가 없고 피에 굶주린 괴물이거나 Satan일 것이라고 말한다. John Stott는 Pinnock보다 약화된 어조로 이 이론을 주장하지만 그도 역시 지옥의 형벌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고문이라는 사상은 견딜 수 없는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에서도 불신자들의 운명에 대해 소멸의 개념으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견해는 조건적 불멸설과 다르다고 구분한다. 즉 후자에 의하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고 오직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자들에 한해서 불멸한다는 이론인데 반해, 존 스토트의 이론은 소멸설로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부활하지만 회개치 않는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소멸된다는 견해인 것이다. 다른 많은 신학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이 문제는 특별히 많은 부분이 성경 주석을 놓고 논의해야 한다. 또한 종말론적으로 고전 15:28; 요 12:32; 엡 1:10절 등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악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가 이루어지고 그의 보편적인 통치가 이루어졌을 때, 회개치 않은 자가 지옥에서 생존한다는 사상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그들의 논지는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존 스토트는 피녹이나 다른 진보적 복음주의자와는 달리 전통적 가르침과 해석에 대한 존중심과 복음주의의 일치에 대해 보다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잠정적이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복음주의 내의 심각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론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두 중요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임할 때 그것과 함께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악에 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악에 대한 심판조차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한 형태라고 믿고 그것이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 정하신 것이라면,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을 어느 피조물이 악하고 불의 하다고 말할 권리가 있는가? 더구나 성경의 너무나 많은 부분에 지옥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이 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사 66:24; 마 3:12; 막 9:43, 45; 눅 3:17)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사 66:24; 막 9:44, 46, 48)등의 표현으로 그 영속성을 말하고 있고, 그것의 표현들이 무서운 결박, 불, 고통, 슬픔, 이를 감 (사 33:14; 렘 17:4; 단 12:2; 막 18:8; 데후 1:9; 계 14:11; 19:3; 20:10) 등의 생생한 의식적인 상태에서의 고통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 이후에 오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심판과 형벌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쳤던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옥에 대해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럴 때 더욱 더 구원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열심히 붙들게 되며, 죽어 가는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더 긴박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악에 대한 심판과 지옥에 대한 가르침은 복음의 필수적인 전제로서 이 가르침이 제거되면 복음의 심각성이 사라지게 되고 더 이상 복음이 아니게 된다. 영원히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부터의 구원과 그냥 사라져 버리는 상태로부터의 구원은 그 심각성과 개념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견해의 부흥은 Robert Brow가 말했듯이,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의 죄나 심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현대적 상황을 말해준다고 보여진다. F.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지금까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주장되는 주요 신학적인 이탈들을 개관해 보았다. 이 외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격에 관한 논의, 즉 형벌 대속설에 대한 부인과 방어, 또한 칭의의 성격에 대한 논의 등 복음의 본질에 관한 더 심각한 내용들에 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주제들의 무게 때문에 여기서 다루질 못했다. 아무튼 진보적 복음주의자들 또는 탈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오는 많은 교리들로부터 이탈해 (후기)현대주의로부터 흘러들어는 사상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변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복음주의자라고 불리우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들 자신의 복음적 신앙 체험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배경과 신학의 장이 복음주의 사회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항상 복음주의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두는 것은 아마도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와 구별하려는 의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신학적 정의라고 본다.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따로 깊이 있는 연구와 성찰을 통해 제대로 밝혀야 하겠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20세기 복음주의의 신학 상황에서 대강의 정의를 해본다면, 초기의 신복음주의 운동 때부터 중심부에서 성경의 권위를 보수하고 근본주의의 5개조 교리 등을 포함하여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정통교리들을 존중하여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며 또한 내적으로는 잘못된 이해들을 비판해가면서, 오늘날의 상황에 새롭게 조명하려고 노력해 온 일관된 신학 운동(a consistent theological 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복음주의적인 면모는 항상 성경에 호소하며 성경에 입각한 신학을 세우려고 노력했었다는 점이며 또한 전통에 대한 개혁의 의지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반면에 그들은 현대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에 깊이 젖어 있어서 성경에 대한 균형 있는 주석을 해내지 못하고 신학방법론과 신론과 구원론 등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법과 교리들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통과의 연계성 속에서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균형 잃은 변질을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히 Clark Pinnock의 경우, 그의 기본 사안(agenda)은 이미 복음주의 신학을 주도하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알미니안 주의의 반발 및 주도권을 위한 항거인데, 그런 그의 사안으로 말미암아 어거스틴-칼빈의 전통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왜곡된 해석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해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밀라드 에릭슨도 개방적 신론을 다룰 때, 이들의 어조와 수사학에 있어서 학적이지 못하고 경멸적인 표현들, 왜곡시키는 표현들 그리고 논리적 비약 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Stanley Grenz의 경우 복음주의적 영성을 강조하면서 19세기 복음주의의 경건주의 전통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의 신학의 이해는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의 경험주의적 이해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고, 특별히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인식론적 파라다임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후기 자유주의의 신학 방법론(the postliberal approach)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탈은 복음주의의 고유한 신학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더구나 그들이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자처하고 있기에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V. 한국 복음주의 신학에의 적용 및 정체성 확립의 과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어떠한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통찰력들을 얻을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떠하며 어떠한 과제들이 있을까? 오늘날 한국에서 복음주의에 입각하여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의 물음이라고 본다. 이 물음에 대해 초창기부터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운동을 일으키고 이끌어온 한철하 박사는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신앙을 무너뜨리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복음신앙을 세우는 운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신앙을 거짓없이 믿고 살기에 힘쓰는 가운데, 복음신앙에서 이탈하여 나간 세계 속의 모든 배도적인 사상들에 반대하여 복음신앙을 세우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신으로 1972년부터 조종남 박사, 오병세 박사, 김의환 박사 등 네 사람이 주도적으로 함께 시작했다가 1981년 재조직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그 동안의 많은 일꾼들의 노력으로 현재 보수신학의 연합전선으로서 그 자리 매김을 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최근에 한박사는 기독교에는 중심진리가 있으며 그것은 복음 신앙을 통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중심진리에 대해 신학의 여러 분야에서 함께 조명 보자는 "신학 공관"이라는 새로운 제의를 하는데 이러한 제안은 참으로 현재 복음주의의 신학적 상황을 판단해 볼 때 적기의 제안이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평가되며,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기초를 공동으로 다져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박용규 교수의 『한국교회를 깨운 복음주의 운동』은 넓게 한국 교계 전반에 걸쳐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그 운동의 신학적인 위치를 근본주의와 토착화 운동 사이에 두고, 복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근본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착화 운동의 현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보수적인 신학의 기초 위에 보다 활발한 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에 대해 몇 가지 유익한 제의를 하는데, 그 첫째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진원지인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과정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것과 둘째는 복음주의 신학자들간의 다양한 신학적 배경으로 인한 통일성의 부재에 대해 언급하며 역사적 복음주의 신학의 기본 교리들에 동의함으로서 그 일치점을 찾을 것을 제의하고 있다. 셋째는 성경관에 있어서의 일치점을 찾아야 할 것을 말하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신앙 고백서가 미국의 시카고 선언이 표명하는 성경 무오설 보다 좀 더 느슨한 정의에 만족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이상의 제의는 필자도 느낀 바로서 대개는 깊이 동의하고 있으며 특별히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에 참석하면서 문제로 깊이 느꼈던 것은 신학적 일치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신앙 고백서가 있고 보수주의라는 커다란 울타리는 있지만 신학자들의 각 각의 교단 배경과 유학 배경 등 다양한 배경에서 습득한 다양한 방법론과 접근법을 통해 일정한 이슈들을 제 각각 풀어나가는 현재의 상태는 실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특성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참으로 분명치 않고 혼란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 신학이 서양의 카피 신학(copy theology)의 수준에 머물면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간다면 참으로 지금까지 땀흘려온 선배들의 노고가 헛되이 되고 말 것이다. 전 장에서 살펴본 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의 변천과 진보주의 신학자들의 이탈들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첫째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21세기로 접어드는 현 시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신학 도전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복음주의와 자유주의가 제 각기 다른 전통을 세우고 있기에 서로 더 이상 세력 다툼을 하는 대치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복음주의 내에 계속해서 스며드는 현대 또는 후기 현대의 사상적 영향이 있음을 분별해내고 그에 따른 변증을 계속해야 하는 지속적인 사명이 있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복음주의 전통과 사회 내에 있기를 원하면서 포스트모던 사상을 그대로 좇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복음주의 신학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그 동안 복음주의 신학은 외부로부터 오는 도전이 있을 때에 비로소 응답하면서 상대적인 정체성만을 찾아왔는지 모른다. 자유주의에 대한 복음주의, 근본주의에 대한 복음주의 등. 이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비로소 참으로 그 이름이 지닌 대로 성경의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동으로 규명해 보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현재 John Armstrong, D. A. Carson, Timothy George, David Neff, Thomas Oden, J. I. Packer, R. C. Sproul, John Woodbridge 등 15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마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적 경축(celebration)"의 초안을 작성해서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서명과 의견을 받으며 계속 연구 확장하면서 보다 큰 회합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일이 얼마만큼 호소력을 가지고 전 복음주의의 공동체의 노력을 한데 모아 많은 열매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에의 적용이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초창기부터 미국의 복음주의와의 연계성 속에서 그들의 변증적 성격을 그대로 가져와 자유주의라는 외부 세력에 대한 보수주의의 연합 전선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은 교단적 배타성이 강한 한국 교계 풍토 속에서도 범 교단적으로 함께 대외적으로 자유주의 또는 토착화 전통이라는 외부 대상에 대한 상대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상대적 정체성은 외부 도전이 약화되고 연합의 중심의 흐려질 때,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순복음주의 등 이질적인 다양한 신학 체계들의 내적인 대립 앞에 허무하게 무너질 위험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의 90년대 말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 복음주의자들의 신조들을 중심으로 한 통일성이 약화되면서 다양한 신학들의 춘추 전국 시대가 도래하게 된 상황-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도 곧 그러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본 논문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러한 다양한 상황 가운데도 복음주의 중심세력이 있다고 평가를 내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인데 벌써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안의 이질적인 집단의 분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보수성"이라는 어떤 외적 울타리로 그 명맥을 유지해 가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다원화되고 복음에 대한 도전도 그 성격이 다양하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회가 참으로 명실공히 한국 보수 신학의 맥을 이어가는 공동의 노력을 하는 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상대적 정체성에만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바야흐로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진정한 정체성 확립을 추구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의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진정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 모두가 풀어 가야할 숙제이고 앞으로 더 깊이 연구되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필자의 몇 가지 초보적인 생각을 간략히 피력하고 이 논문을 마치려고 한다. 첫째, 내적 통일성에 입각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공통된 특성과 기반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일정한 신학 방법론과 우리 나름대로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외국에서 따온 또는 각각의 교단 전통만을 고집하는 현행 상태가 계속될 때는 분열된 보수 교단의 모습을 또 다시 재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의 각자 나름대로의 신학들이 함께 모아져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내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공동의 노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고, 그 믿음은 단순한 낙관적인 희망사항의 투사가(an optimistic projection of wishful thinking)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통의 복음적 신앙 성격에 근거한다. 서울 신대 박명수 교수의 다음의 말은 참으로 동의할 만하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흐름은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 기독교는 해방신학이나 세속화신학 같은 극단적 자유주의도, 모든 것을 정통과 이단의 자로 재려고 하는 극단적 보수주의도 배격하는 온건한 보수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주의의 이름 아래 수많은 교파들이 모여서 연합 활동을 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일반 신자는 교역자보다 더욱 더 극단적 보수주의도, 극단적 자유주의도 배격하고, 순수하게 신앙 안에서 연합되기를 바란다. 박명수 교수가 관찰하고 있는 바와 비슷하게, 필자도 한국의 지역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공통의 복음적 신앙성격을 발견하곤 한다. 교파와 교단은 달라도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한국 복음주의 신앙의 공통성이 있음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신앙적으로는, 장로교라 할지라도, 강한 경건주의적 부흥운동의 성격을 지닌 형태로서 개인의 회심과 중생을 강조하는 비슷한 영성을 지녔다고 보여진다. 장로교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각 지역 교회들의 강단이나 일반 성도들의 신앙 성격은, 사실 19세기 말 Dwight Moody의 3차 부흥운동의 영향하에 대부분의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졌던 세대주의적 부흥주의(dispensational revivalism)와 흡사한 성격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찰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안에서도 느끼는데 한국, 독일, 화란, 영국, 미국 등 어디에서 신학을 했건 다양한 신학적 언어 뒤에는, 한국 교회에서 자라면서 습득한 신앙의 공통된 성격 때문에 토의 때나 질의 응답 시 서로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있음을 감지한다. 필자의 이러한 느낌과 관찰이 매우 애매하고 아직은 학적으로 규명되고 살펴지지 않았지만 바로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보는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규명 작업인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독자성과 독특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 복음주의적 신앙의 영성과 특성에 대한 명명과 개념화 작업을 먼저 공동으로 이루어가야 하며 그에 대한 깨달음에 입각해서 신학적 논의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는 여러 가지 접근과 방법이 있을 테지만 필자가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은 한국 교회사 속에서 규명해 내는 것이라고 본다. 즉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신앙 성격을 규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한국적 상황에서 변화되어 이루어져 오는지 등을 밝혀보는 것은 비단 교회사 전공자들에게 한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아울러 우리의 논의와 약간은 빗나가지만 한국 교회사 또는 신학사 읽기의 문제다. 현재 한국 교회사를 읽는 사관에도 일반 한국사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음을 본다. 소위 민족주의 사관이라 하여 복음은 선교사에 의해 전파된 것이 아닌 우리가 먼저 받아들였느니 하는 설은 편협한 민족성을 들어내는 건전한 사관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사대주의적 태도에 기인한 무비판적인 선교사관도 함께 근절해야 한다. 복음주의 신학의 나아갈 방향에 입각한 해석학적 시각에서의 한국 신학사 읽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은 각 교단 내 전통 세우기로부터 해서 현재의 복음주의 신학적 작업을 그러한 전통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의식을 수반한다. 교단 전통의 신학자의 계보가 세워져야 하고 그들의 신학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와의 연계성 찾기 작업으로부터 더 나아가 다른 신학적 전통과의 공통성 찾기 작업까지 다양하게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총신에서 박형용 박사 신학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졌던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Charles Hodge 신학의 재판이라는 비판과 함께 무시되었던 접근에서, 설사 많은 부분이 그러하다 할지라도 그의 창조성과 한국적인 독특성을 찾아내고 또한 오늘날 이어가야 할 부분에 대한 발굴 등 보다 뜻 깊은 한국 신학사 속의 인물로서 연구되어질 때 더욱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오늘날의 신학적 작업을 전통 속에 연계시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간의 보다 활발한 상호 교류라고 본다. 본 논문부터 해서 스스로 비판을 해보면 우리는 학문적으로 너무나 외국 학자들에게만 의존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의 학문의 업적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인용하면서 상호 존중의 분위기 가운데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대응할 것은 대응하며 보다 학문적인 교류다운 상호 교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학파의 형성이 안 되는 우리 나라의 학문 풍토는 신학적으로 항상 식민지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독특한 학풍과 또는 인격적인 서클을 이루며 스승과 제자로 연결되는 진정한 신학의 장과 전통이 없이는 진정한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다양한 져널리즘 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국내 신학자들의 교재는 그리 많지 않고 번역판만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열심히 연구하여 한국적이고도 복음주의적인 시각에서 교리들을 다루어 그야말로 신학다운 한국적 신학을 추구해 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의 IVP 시리즈처럼 한국의 조직신학자들도 서로의 영역을 나누어 공동으로 함께 교리들을 새로이 규명해 가는 작업을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다음으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박용규 교수는 성경관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필자는 여기에 숨어 있는 위험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미국 내 성경관 논쟁을 대강 살펴본 바대로, 성경 무오설과 진리 상응설 그리고 명제적 계시의 개념들이 얽혀져서 성경관에 대한 혼란한 신학적 논의들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이 재현해서는 안될 길이다. 그러한 논의들 배후에는 인식론적 출발점이 필요한 서구적 지성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읽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코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그토록 강경하게 주장하여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를 제 일의 으뜸원리로 놓아야 하는 그들의 상황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즉 성경 무오성의 교리의 기능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논쟁에서 보여주는 것은 인식론적 확실성을 보장해야 하는 서구적 불안이(a sort of the Cartesian anxiety) 보인다. 칸트 이후의 인식론적인 출발점이 신학의 모든 출발점으로 되어버린 현대주의의 영향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오하며 그것이 증거하고 있는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는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으며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최고의 권위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성경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이해를 위해 깊이 연구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오히려 성경에 대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논의는 공통의 해석적 방법론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가 되어져야 할 것 같다. 신약 분과나 구약 분과에서 역사적, 문헌적 연구를 통한 다양성에만 치중하지 말고, 성경의 통일성과 조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 신학적인 통찰들을 보여 주면 조직신학을 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조직신학 분과에서 복음주의 신학 방법론에 대한 독특성을 밝혀내 주면 성경 해석학의 방법론도 아울러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복음주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근본주의 논쟁을 통해 복음주의가 가지게 된 반동적인 성격의(reactionary tendency) 탈피이다. 이 점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나 진보적 복음주의자 모두에게 보이는 모습인데 하나의 조류나 주장에 대해서 반동적으로 반응해 다른 극단으로 치닫는 습성이다. 이러한 반동성은 비판적 사고의 결여이며 항상 분열을 조장한다. 한국 복음주의가 이질적인 신학 체계들과 전통들 사이의 긴장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며, 이들 사이의 내적 통일성을 추구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반동성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해야 된다고 본다. 특별히 한국인의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교계나 사회나 참으로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 사고의 결여로 많은 반동성을 보여 왔다. 우리는 역사의 상반 된 갈등 뒤에는 항상 그것을 극복해 가려는 종합을 향한 지향이 있음을 배웠다. 참된 종합이 요구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현 상황에서 상호 존중과 서로 다른 것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통해, 본래 복음주의의 본질인 역사적 복음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포괄성을 이루어 가야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칼빈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 알미니안적 웨슬레 주의자들과 그에게서 나온 오순절적 성령 은사파들은 서로 다른 모습들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다양성의 배후에 있는 공통성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반동성의 진자 운동에 말려들게 되어 소모적인 싸움과 분리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찢어진 보수교단의 모습을 복음주의라는 넓은 우산으로 덮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복음주의는 교파적인 관심이나 교단 정치체제적인 관심들이 복음에 대한 관심보다 앞서도록 허락하지 않는 주의이며;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가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가장 중심에 강조하면서 그 운동의 핵심과 본질을 나타낸다. 복음주의는 의도적으로 복음이라는 중심 주제 아래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놓는 원리이다." 이렇듯 순복음파 교도이든, 성결교도이든, 감리교도이든, 장로교도이든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하나의 복음 신앙 위에 함께 설 때, 하나님께서 복음주의 신학회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 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