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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음을 깨우치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백두대간 [1] 지리산권 천왕봉~ 중재〉
◆ 산행요약
◐ 산행 목표 : 백두대간 지리산권(지리산 천왕봉 ~중재)
◐ 산행 기간 : 2008. 3. 20 ~ 09. 9. 17
◐ 산행 횟수 : 총 7 회
◐ 산행 거리 : 총 112.5 km / 대간 거리 82.1 km
◐ 참여 회원 : 연 인원 275 명
◐ 산행 시간 : 총 45.1 시간
◐ 산행 주관 : 중앙산악회
◆ 산행지도
◆ 산행일정
산행 권역 | 산행 회차 | 산행 일자 | 산행구간 | 산행거리(km) | 참여 인원 | 산행 시간 | 비고 | ||
기점 - 종점 | 중요 산명 | 전체 구간 | 대간 구간 | ||||||
지리 산권 | 1 | 2008 03.20 | 천왕봉-장터목 | 천왕봉 | 12.0 | 1.6 | 43 | 7.0 | 시작 |
37 | 09.17 | 세석-장터목 | 연화봉 | 16.5 | 3.3 | 46 | 7.3 | ||
6 | 06.05 | 성삼재-세석 | 지리산 종주 | 29.3 | 23.3 | 25 | 12.0 | 무박 | |
4 | 05.01 | 성삼제-주촌리 | 만복대 | 13.9 | 13.9 | 40 | 4.5 | ||
2 | 04.30 | 주촌리-통안재 | 고남산 | 15.0 | 14.2 | 42 | 5.0 | ||
3 | 04.17 | 통안재-복성이재 | 지리산 휴게소 | 14.0 | 14.0 | 40 | 5.0 | ||
5 | 05.15 | 복성이재-중재 | 봉화산 | 11.8 | 11.8 | 39 | 4.3 | ||
합 계 | 7 일 | 112.5 | 82.1 | 275 | 45.1 |
■ 백두대간 제1일 지리산 天王峰
〈지리산권 천왕봉~장터목〉
◑ 백두대간 종주 발대식 / 시작은 반이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 산행 개요
◐ 산행 일자 : 2008년 3월 20일
◐ 산행 지역 : 경남 산청
◐ 산행 지명 : 天王峰 (1,915.4m)
◐ 산행 구간 : 중산리→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 → 중산리
◐ 산행 거리 : 12 km (1,6 km)
◐ 산행 시간 : 7시간
◐ 참여 회원 : 43명
◐ 산행 회비 : 25,000원
◆ 산행 지도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인 이완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죽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으로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지리산(智異山 1,915.4 m)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1967 년 12월 29일) 지정된 지리산국립공원(智異山國立公園)은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 군, 15개 읍, 면에 걸쳐 있는 곳으로 그 면적이 440.517㎢에 이른 다. 이는 계룡산국립공원의 7배이고 여의도 면적의 52배 정도로 20개 국립공원 가운데서 육지면적으로는 가장 넓다. 천왕봉(天王峰 : 1,915.4 m)을 비롯하여 제석봉(帝釋峰 : 1,806m), 반야봉(盤若峰 : 1,732m), 노고단(老姑壇 : 1,507m) 등 10여 개의 고산준봉이 줄지어 있고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르는 주능선의 거리가 25.5㎞로 60리가 넘고 지리산의 둘레는 320㎞로서 800리나 된다.
천왕봉에서 발원되어 흐르는 물로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칠선계곡을 비롯하여 뱀사골계곡, 대원사계곡 등 수없이 많은 계곡과 불일(佛日) 폭포, 구룡(九龍) 폭포, 용추(龍湫) 폭포 등 뛰어난 자연경관은 명산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으며, 화엄사(華嚴寺), 쌍계사(雙磎寺), 연곡사(燕谷寺), 대원사(大源寺), 실상사(實相寺)등의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와 문화 재는 이곳이 한국 불교의 산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리산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터를 제공해 주는 생명의 산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에서 훨훨 일어난 거대한 산 괴이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시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이다. 지리산은 거대하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엄천강, 횡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 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 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연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반야봉 낙조, 세석의 철쭉, 벽소령 달밤,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연하봉 설경, 불일폭포, 칠선계곡, 섬진강의 맑은 물로 대표되는 지리산 10경을 들먹이지 않고도, 한때 지리산에 350여 군데나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산으로 충분하다.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 없는 산이다.
국가적인 대제사가 거행되던 노고단 -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리산은 신라 때부터 남악(南岳)으로 불리며 매년 봄, 가을이면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장소였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신으로 모시던 곳이 바로 노고단이며 노고단(老姑壇)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노고단이나 남악사가 아닌 천왕봉에서 고려시조인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모시는 것으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은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중지되었다가 현재까지도 남악사 약수제 등으로 남아있다.
삼한시대 달궁계곡 일원은 삼한시대 마한의 왕조가 망명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 27년(서기 9년)에 마한왕조가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34년(서기 16년) 마한의 옛 장수 주근을 토벌한 이야기가 나오고, 신라 탈해왕 5년(서기 61년) 마한의 장수 맹소가 항복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또한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3세기 후반 마한세력이 중국과 교류했다고 나오고, 4세기에는 마한의 일부세력이 서해안에 진출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로 보아 부족국가 마한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달궁마을에 쫓겨와 궁전을 짓고 살았다는 마한의 부족국가가 바로 이들 무리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반란의 산 - 지리산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빨치산과 반란군일 것이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한 달 이상 노고단의 외국인 별장촌은 반란군 김지회의 근거지였다. 반란군이 물러가고 난 후 국군 토벌대가 다시 들어와 이곳이 또다시 빨치산 거점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태워 버렸다. 노고단고원이 황폐해진 직접적인 이유이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노고단 산장 서측에는 흉물스러운 별장촌의 잔해가 남아있고, 외국인 별장촌은 노고단 남쪽 왕시루봉 기슭으로 옮겨져 다시 세워졌다. 6,25 이후 빨치산 잔당들은 또다시 지리산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국군 토벌대의 무차별 포격, 방화로 이어지고 만다. 피아골 산장터에서 한 트럭분 이상의 인골(빨치산의 것으로 추정)이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토벌작전이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에 불과하다. 1952년 빨치산 대몰살의 현장이었던 대성골, 거림골, 빗점골, 의신부락등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오늘날까지도 대성골의 숨은 골짜기에서 인골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당시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죄 없는 양민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로 남아있다.
지리산은 빨치산 토벌대의 무자비한 토벌과 이를 빌미로 한 산악도로의 건설로 이중의 아픔을 겪어왔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빨치산에 한번 덴 권력자들은 지리산의 서북능선을 주능선과 뚝 떼어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노고단 턱밑을 깎아 건설한 성삼재 861번 지방도로가 그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능선마저 반으로 갈라놓으려는 모략이 벽소령 관광도로포장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다행히 벽소령은 포장되지 않고 남아있게 되었다. 서북능선은 만복대 아래서 정령치도로에 잘려 지리산의 섬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에서 훨훨 일어난 거대한 산 괴이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시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이다. 지리산은 거대하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엄천강, 횡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 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 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연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반야봉 낙조, 세석의 철쭉, 벽소령 달밤,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연하봉 설경, 불일폭포, 칠선계곡, 섬진강의 맑은 물로 대표되는 지리산 10경을 들먹이지 않고도, 한때 지리산에 350여 군데나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산으로 충분하다.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 없는 산이다.
국가적인 대제사가 거행되던 노고단 -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리산은 신라 때부터 남악(南岳)으로 불리며 매년 봄, 가을이면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장소였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신으로 모시던 곳이 바로 노고단이며 노고단(老姑壇)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노고단이나 남악사가 아닌 천왕봉에서 고려시조인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모시는 것으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은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중지되었다가 현재까지도 남악사 약수제 등으로 남아있다.
삼한시대 달궁계곡 일원은 삼한시대 마한의 왕조가 망명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 27년(서기 9년)에 마한왕조가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34년(서기 16년) 마한의 옛 장수 주근을 토벌한 이야기가 나오고, 신라 탈해왕 5년(서기 61년) 마한의 장수 맹소가 항복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또한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3세기 후반 마한세력이 중국과 교류했다고 나오고, 4세기에는 마한의 일부세력이 서해안에 진출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로 보아 부족국가 마한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달궁마을에 쫓겨와 궁전을 짓고 살았다는 마한의 부족국가가 바로 이들 무리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설 - 김명수의 '지리산'중에서].
◐ 法界寺 三層石塔(보물 제473호)
천왕봉 동쪽 기슭에 있는 법계사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1444m)에 있는 절로 보물인 법계사 3층 석탑이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르는 마지막 관문은 통천문(通天門)이다. 천연암굴로 되어 있어 사다리를 타고야 올라갈 수 있는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 뱀사골의 단풍 >
◆ 산행 후기
▶ 오늘은 백두대간 종주 첫날이다. 산행 버스의 좌석을 모두 채우고 자리가 부족하여 세 사람의 산우가 간이 좌석 신세를 면치 못하는 성황 리에 상상의 날개 속에 그리던 영봉 지리산 천왕봉을 하룻길로 오른다.
▶ 봄이 저만치 달려오는 청명한 날씨도 우리들의 백두대간 첫 산행을 축복하여 준다.
▶ 40년을 한결 같이 산과 살아온 베테랑 선배들도 어제 입문한 초보 등산객도 눈에 보이는 정상을 두고 가뿐 쉼을 몰아가며 옮겨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 지난여름 북 알프스 산행 때 야리가다케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인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등정하던 기억이 돼 살아난다. 그러나 단련된 체력과 무언의 격려로 한마음이 된 산우들은 고난의 장정을 이겨 내고 모두들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올라 백두대간의 첫걸음을 감격으로 맞으며 전도 양양한 내일을 기약해 본다.
▶ 아!!! 천왕봉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길에 거칠 것 없이 시원한 一 望 無 際,
산과 산 강과 바다와 육지가 오로지 발아래 조아리는 가슴 벅찬 환희,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천을 만나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준 神에게 감사드린다.
▶ 다만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하여 짧은 해우 끝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다음 산행 때 다시 찾을 장터목산장을 돌아 또다시 바윗돌 바닥과 철제 계단 출렁다리를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종아리에 의지하여 하산을 해야만 했다.
◆ 산행 사진
<고난의 산행을 끝내고 마주 잡은 찬이슬 잔>
☞ 해설은 다음백과 사진은 http://cafe.daum.net/jungang4050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