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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철 신부의 전례 맛들이기
제1강 전례란 무엇인가?
전례의 사전적 의미는 '규정된 공식 예배'이다. 전례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 리투르기아(leiturgia)를 라틴어(Liturgia)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leiturgia는 léitos(백성에 대한, 백성과 관련된)와 érgon(일, 직무, 봉사)의 합성어로, 그 말 뜻대로 한다면 전례는 '백성을 위한 공공봉사'의 의미이다. 즉 초기 전례라는 단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백성을 위한 공공봉사를 드러낼 때 사용되었다.
구약성경 안에서 전례는 주로 경신예배에 관한 법을 설명하고 제정하는데 사용된 반면, 신약성경 안에서는 애덕행위와 여러 가지 예배행위를 드러내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전례는 초세기 교회에 들어 종교적인 의미가 강해지면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배행위를 일컫는 단어로 사용된다. 즉 주교나, 사제, 부제가 집전하는 각종 예배행위를 통 털어 전례라고 했다.
동방교회에서 전례(Liturgia)라는 단어를 줄곧 사용해왔지만 서방교회에서는 각 시기별로 전례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왔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후 전례(Liturgia)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19세기 전례부흥운동 이후 전례(Liturgia)가 정착·보편화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전례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7항은 전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 따라서 모든 전례의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의 할동임으로 탁월히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
제2강 전례의 본질
'전례'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7항의 내용을 통해 전례의 본질을 살펴보면
첫째,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례의 주체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례를 통해 복음선포와 성사 등의 사제직을 수행하신다는 이야기다.
둘째, 전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 실현된다. 즉 2천년 전 예수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이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바로 그 순간에 전례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셋째,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시키는 것이다.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이다. 미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1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신자들은 화답송으로 응답하고, 또다시 2독서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신자들이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으로 응답하는 형식이다. 또 복음 강론을 통해 하느님이 말씀하시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통해 응답하는 쌍방향적이고 양자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네째, 전례는 거룩한 표지를 통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인간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사용하는 말과 동작, 물질 등의 표지를 통해 구원업적을 드러낸다. 즉, 기도나 성가 등 인간의 언어를 통해, '빵 쪼갬' 같은 사제의 동작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드러내는 '빵'과 '포도주'등의 표지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전례에 임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잘 들어야 하고, 또 (사제의 동작이라던지 제대 위 성물 등과 같은 것을)잘 보아야 하며,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를)잘 말해야 한다.
제3강 전례의 범위와 종류
앞 시간에 살펴본 전례의 네 가지 본질 외에 전례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행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전례에 참여할 때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생각에 따라 다른 동작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통일성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인 교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잘 알고 행할 때, 올바르고 아름다운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전례와 신심행위의 구별은 선을 긋듯 딸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전례행위이다. 신심행위에 집착해 전례행이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신앙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전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것은 7성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잘 드러내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병자성사, 고해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의 7성사는 전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교부들은 전례가 곧 성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7성사 이외에 전례에는 준성사가 포함된다. 준성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한 7성사와는 달리 교회가 정한 것으로, 7성사를 효과적으로 받기 위한 것과 성사를 생활의 여러 분야에 적용시킨 것 들이 있다. 바로 성사를 모방해서 성사의 의미, 형식, 효과 등을 모방한 것으로 축성, 축복, 봉헌, 행렬 등이 이에 포함된다.
제4강 전례와 신심행위
준성사에 속하는 축성과 축복은 반드시구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뜻을 잘 모르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축성은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께 바쳐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며, 축복은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하느님의 은혜를 비는 행위를 말한다. 1년의 주기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과 성인·성녀를 기념하는 것을 전례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서는 이를 전례력이라고 한다.
시간전례는 교회의 구성원이 교회에서 정한 가장 중요한 시간에 함께 모여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들은 그것을 통해 성화되는 것으로, 예전에는 성무일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삼종기도는 평신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회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아침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저녁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낮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회상하기 위한 기도이다.
반면에 신심행위는 교회의 공적예배나 기도인 전례행위가 아닌 일부 거룩한 행위를 말하는 데 성시간,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신심행위는 전례행위를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례행위보다 신심행위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례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례행위와 신심행위의 구분은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성직자가 교황청에서 발행된 전례서에 따라 거행하는냐와, 교회공동체의 공적인 행위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제4강 전례와 신심행위
준성사에 속하는 축성과 축복은 반드시구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뜻을 잘 모르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축성은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께 바쳐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며, 축복은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하느님의 은혜를 비는 행위를 말한다. 1년의 주기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과 성인·성녀를 기념하는 것을 전례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서는 이를 전례력이라고 한다.
시간전례는 교회의 구성원이 교회에서 정한 가장 중요한 시간에 함께 모여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들은 그것을 통해 성화되는 것으로, 예전에는 성무일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삼종기도는 평신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회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아침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저녁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낮 삼종기도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회상하기 위한 기도이다.
반면에 신심행위는 교회의 공적예배나 기도인 전례행위가 아닌 일부 거룩한 행위를 말하는 데 성시간,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신심행위는 전례행위를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례행위보다 신심행위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례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례행위와 신심행위의 구분은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성직자가 교황청에서 발행된 전례서에 따라 거행하는냐와, 교회공동체의 공적인 행위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제5강 전례동작 1 - 서는 자세
전례는 교회의 정점이며 원천이다. 때문에 개신교의 유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 (Karl Barth)조차도 "전례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고 긴요한 것이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례는 교회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생할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례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삶과 활동과 조화를 이루며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야 한다. 전례의 목적인 인간의 성화와 하느님께 대한 공경은 구체적인 생활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전례생활이 형식, 예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례는 인간의 내적인 자세나 마음을 드러내는 동작이며 행위이다. 전례동작에는 몸의 행위뿐만 아니라 듣고 보는 것, 침묵까지도 포함된다. 전례동작은 나라와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례 안에서는 동작의 통일성이 요구된다. 전례동작 중 서는 자세는 존경을 드러내는 자세이다. 하느님을 대리해서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와 부제의 입당, 퇴장시, 복음을 봉독할 때 신자들은 존경의 표시로 서는 동작을 취한다. 서는 동작은 또 가장 보편적인 기도자세이다. 카타콤 벽화나 고대조각, 초세기 저서 등에 서도 ‘신자들이 서서 기도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니체아공의회에서는 서서 기도하는 부분을 법으로 정하기도 했다. 서는 동작은 부활과 기쁨의 자세이며, 깨어있음, 활동에 임하는 태세, 감사, 주님을 맞이함, 종말에 대한 희망의 자세를 드러내는 동작이기도 하다.
제6강 전례동작 2 - 무릎 꿇음, 앉음, 엎드림
전례동작 중 무릎을 꿇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표시이며, 상대방에게는 존경을 드러내는 자세이다. 무릎 꿇음은 또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지의 자세이며, 하느님께 도움을 간청하는 자세이다. 이런 이유에서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의 첫 구절을 바칠 때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바치며, 성 금요일 장엄기도 때도 간절한 원의의 표시로 무릎을 꿇는다.
전례동작 중 앉는 자세는 바른 몸가짐, 기대와 주의력의 집중을 나타낸다. 앉는 동작은 경청과 가르침의 자세이며, 주교는 서품식, 미사, 견진예식 때 가르침의 의미로 앉아서 훈화를 한다. 또 신자들은 복음을 제외한 성경을 낭독할 때, 사제나 부제의 강론 때 앉아서 경청한다.
엎드리는 동작은 무릎을 꿇는 동작과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최대한 강화시킨 의미를 갖는다. 가장 심회된 경배, 겸손, 속죄, 간청을 드러낼 때 엎드리는 동작을 취한다. 사제서품식 성인호칭 기도 때 수품자들은 엎드리는 동작을 취하며, 성 금요일 수난예식 때에도 주례자는 제대 앞에서 엎드리는 동작을 취한다.
제7강 전례동작 3 - 손·팔 동작, 안수, 행렬, 십자성호
손을 모으는 자세는 겸손과 경건함과 봉헌의 표시로, 다른 동작(축복, 안수 등)을 취하기위한 준비 자세이다. 손을 벌리는 동작은 전형적인 기도의 동작으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간청이 자세이다. 안수는 가장 오래된 예배동작으로 하느님의 영, 힘 또는 권한을 부여하는 표지로서 사용되며, 축성과 축복 등의 예식에 많이 사용되고, 특히 견진, 성품, 병자성사의 핵심동작이다.
행렬은 공동으로 의지, 소망을 표시하거나 증거하는 동작으로, 오늘날에는 성체행렬, 주님봉헌 축일의 빛의 행렬, 주님수난 성지주일의 입성 행렬, 미사 때의 입당, 복음서 봉독자가 등장할 때, 예물 봉헌시 행렬을 한다.
십자성호는 전례나 개인 기도의 시작과 끝, 하루일과나 각종활동의 시작과 끝에 널리쓰인다. 십자성호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가장 짤막하고 명료한 신앙행위이다.
전례복은 개인적인 특성을 버리고 교회의 공식 시종자로서 예식을 거행한다는 의미로 착용하며, 전례복에는 각 교회구성원들의 고유한 임무를 구별하는 의미도 있다.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제의는 부활대축일과 성모축일, 천사들의 축일 등에 착용 하고, 사랑과 피를 상징 하는 홍색제의는 주님수난 성지주일, 성 금요일, 순교자 축일 등에 착용한다. 또 녹색제의(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상징)는 주일, 연중시기에 착용하고, 자색제의 (통회와 보속을 상징)는 사순, 대림시기에 착용하게 된다. 요즘에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흑색제의는 장례미사, 연미사 때 착용한다. 장미색제의 (기쁨을 향한 휴식의 의미)는 일 년에 두 번, 대림 3주일, 사순 4주일에 착용하게 되며, 황금색제의는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때 착용하는데 백색, 홍색, 녹색제의를 입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제8강 미사의 명칭
미사의 명칭은 각 시대별로 중점을 두는 부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달리 표현되어왔는데 초기 사도시대에는 '빵 나눔'이라는 용어가 미사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또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로 '주님의 만찬'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사도시대의 미사의 명칭인 '빵 나눔'과 '주님의 만찬'에는 미사의 제사적 성격이 드러나지 않고 미사의 식사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2~3세기에는 교부들의 성체성사 신학을 반영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감사'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에우카리스띠아(Eucharistia)'와 '찬미기도'의 의미를 지닌 '에울로기아(Eulogia)'가 미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감사'와 '찬미기도'는 외적인 행동과 내적기도의 합일성을 강조한 명칭으로 미사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용어이다. 4세기 이후에는 제사적인 의미를 가진 '제사', '봉헌', '제물' 등의 명칭들이 미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미사의 제사적 의미를 거부한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교회는 제사적인 용어를 미사의 중요한 명칭으로 사용해왔다. 5세기 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사(Missa)'라는 명칭이 등장했는데, '미사(Missa)'는 '보냄', '파견'의 의미를 지닌 단어로 예비신자의 파견, 기도를 마칠 때, 성사를 거행하고 마칠 때, 신자들을 보낼 때 파견사로서 '미사(Missa)'라는 용어를 사용한데서 유래한다. 이렇듯 미사는 각 시대별로 중점을 두는 부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달리 표현되어왔는데 미사의 의미는 한 부분에만 집중해서 해석해서는 안 되며, 미사가 일치와 나눔의 의미, 제사적 의미, 파스카 잔치로서의 계약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미사를 이해할 때 우리 신앙생활의 활력이 될 수 있다.
제9강 미사의 기원
미사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이다. 유다인들의 '파스카만찬'과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미사'는 역사적인 사건(출애급 사건,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수난)들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등 그 의미나 구조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만찬'예식 순서를 살펴보면 예식 시작에 앞서 첫 술잔(포도주)을 각자 앞에 차리고 주례자는 감사와 축복기도를 바친다. 참가자들은 이에 응답하는 의미로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축복기도가 끝나면 모든 이가 잔을 들고 포도주를 마신다음 주례자는 손을 씻는다. 이어 주례자는 쓴 나물(이집트에서의 고통을 상징)과 채소(희망의 봄을 상징)를 소금물(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상징)에 적시고 축복기도 후 쓴 나물과 채소를 먹는다. 주례자는 본 예식의 시작을 상징하는 뜻에서 큰 빵을 둘로 쪼개며 '빵 나눔'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주례자는 두 번째 포도주잔을 채우고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어린소년이 누룩 없는 빵, 쓴 나물, 구운 양고기 등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주례자는 출애급의 내용이 담긴 '미드라쉬'를 낭독한 다음 질문에 대답한다. 주례자의 대답이 끝나면 참석자는 모두 첫 번째 알렐루야 시편을 노래한다. 주례자는 두 번째 잔을 축복하고 마신다음 식사를 한다. 식사 후 주례자는 세 번째 잔을 높이 들고 축복기도를 드린 후 모두가 잔을 마신다. 모두가 일어나서 두 번째 알렐루야 시편을 노래하고 마침기도를 바친다.
이와 같이 파스카 만찬은 출애급 사건을 기념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미래의 메시아구원을 기다리는 성대한 식사였다. 미사 역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로 완성된 인류구원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천상잔치를 기다라는 예식이다.
제10강 초기교회 성찬례의 의미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초기교회의 성찬례는 과거의 예수님의 사건(그리스도의 죽음)을 되새기는 축제(回想祭)였으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존을 의식하고 체험하는 축제(現存祭)이며, 주님이 오실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축제(希望祭)였다. 이러한 초기교회 성찬례의 의미는 오늘날 미사전례의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希望),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回想),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現存)"라는 환호에 잘 반영되었다
제10강 초기교회 성찬례의 의미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초기교회의 성찬례는 과거의 예수님의 사건(그리스도의 죽음)을 되새기는 축제(回想祭)였으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존을 의식하고 체험하는 축제(現存祭)이며, 주님이 오실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축제(希望祭)였다. 이러한 초기교회 성찬례의 의미는 오늘날 미사전례의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希望),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回想),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現存)"라는 환호에 잘 반영되었다.
제11강 새로운 미사전례의 특징
교회는 19세기 후반의 전례부흥운동의 영향으로 20세기 초부터 전례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런 배경하에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전례헌장'을 통해 전례개혁에 관한 원칙과 지침을 제시했는데, 새 원칙과 지침은 공동체의 능동적인 참여, 전례의 현대화와 토착화 등 공동체사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개혁지침을 토대로 1970년 개정된 미사전례서(바오로 6세 미사경본)이 출판되었다. 새 미사전례의 특징은 전례에 성경의 내용을 대폭 수용해 말씀전례를 미사의 중심으로 승격시켰으며, 교부들의 문헌, 동방교회의 양식 등 교회의 전례전승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또 현 시대의 지역과 단체, 민족들의 요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도와 동작, 성가, 도구, 복장 등을 현대화하고 토착화 할 수 있게 했으며, 예식의 일부분을 선택하거나 주례자 스스로 참회예식, 도입기도 등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했다. 새 미사전례는 성직자위주의 전례가 아닌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 공동체 전체의 예배를 강조하며,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제12강 시작예식 I 입당행렬, 입당노래
미사의 구조는 시작예식과 말씀전례, 성찬전례, 마침예식의 순의로 구성되어있다.
초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사에는 시작예식이 없었지만, 종교자유가 허락된 4세기이후 신자 수 증가와 집회장소의 변화로 입당행렬 등 시작예식이 형성되었고, 미사를 시작하는 부분으로서의 내용과 형식을 갖춘 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정 된 현행 미사전례부터이다. 새 미사전례에서는 시작부분에 행렬, 간청기도, 인사, 참회예식 등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었다.
시작예식은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로 구성되는데, 시작예식의 목적은 한데 모인 신자들의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합당하게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작예식의 기능은 한데 모인 신자들의 공동체적 의미를 촉진시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새 미사전례의 예규는 신자들의 현존을 강조하며 능동적인 참여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옛 신자들은 성당 입구에 설치 된 사각형의 아트리오(Atrio)에 손을 씻으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떨쳐버렸다. 같은 의미로 오늘날에는 성수대를 마련해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는다. 성수를 찍는 의미는 세례를 기억하며 욕심, 교만 등을 떨쳐버리고 미사를 거행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미사가 진정으로 공동체의 잔치가 되려면 그 주체인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하므로 신자들이 미리 와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미사의 첫 번째 예식으로 간주될 정도로 중요하다. 입당 때 사제와 봉사자들은 공동체 전체를 대표해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행렬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동참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입당행렬은 4세기 이전에는 없다가 궁중예식의 도입으로 일반화되었다. 6세기경 주교의 성대한 입당과 함께 주교를 환영하는 입당노래가 생겨났다. 행렬과 노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입당행렬과 입당노래는 모인 사람들이주님의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며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믿음과 기쁨의 표현이다.입당노래는 미사의 시작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날 미사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의 의미가 있다.
입당예식의 의미는 입당을 통해 미사가 시작되고, 입당노래를 통해 공동체의 첫 번째 일치 행위를 나타내며, 사제와 함께 마음으로 제단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제13강 시작예식 II 입당인사, 참회
사제와 봉사자들은 제단에 이르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존경의 표시로 인사를 하고 제단에 올라 제대에 친구를 하는데 우리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입맞춤(친구)이 아닌 인사(깊은 절)를 한다. 제대에 대한 인사(친구)는 미사의 제정자인 그리스도께 드리는 인사이자 공경의 예(禮)이다.
초기교회는 제대를 성찬의 식탁으로 대하다가 점차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기 시작해 4세기 말에는 제대에 인사하는 것(친구)이 기본적인 예식이 되었다. 축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좀 더 성대한 인사로 향을 사용하는데, 제대에 향을 드리는 의미는 그리스도께 대한 인사와 환영의 표시이다. 분향은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리는 공경과 기도의 표현으로 제대에 분향할 때 사제는 제대를 한 바퀴 돌면서 향을 드린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세례 때의 신앙을 다시 회상하기 위해 성호경을 그으며, 신자들은 신앙인으로 성찬례를 거행할 의향으로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성호경에 뒤따르는 교우들에 대한 인사는 하느님의 편에서 신자들에게 하는 축복의 인사이다. 교우들에 대한 인사는 3가지 양식이 있는데 모두가 모임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의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교우들에 대한 인사에 대한 답인 "또한 사제와 함께"라는 대답에는 성찬례를 집전하는 사제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있다는 신앙을 표현한다.
참회예식은 미사를 거행하기에 앞서 우리 안에 하느님을 거역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서로 용서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회개의 기도시간이다. 교회는 초세기 때부터 성찬례에 참석하기 위한 조건으로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한 다음 깨끗한 제사를 바칠 것을 권고하였다. 참회예식은 사제의 권고-침묵-공동고백-사제의사죄경 순으로 구성되어있다. 공동고백(3가지 형식)은 공동체가 죄를 함께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형식이다. 공동고백 제 3양식은 '자비송'과 연결되어 있어 이 양식을 사용하면 자비송을 바치지않는다. 또다른 참회예식인 성수예식은 9세기 경에 미사에 들어온 것으로 낮미사 직전에 하다가 현행 미사전례서에서는 주일미사중에 이 예식을 거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주일미사중에 성수예식을 권장하는 이유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다시 물로써 깨끗하게 되었음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4강 시작예식 III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
자비송(Kyrie)은 참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들의 환호이자 고백이다. 자비송은 태양신을 섬기던 고대 이교예식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이교관습이 5세 기 경 그리스도인들의 전례안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자비송의 세 번 반복되는 문구는 세 번 모두가 그리스도께 드리는 환호이다.
대영광송(Gloria)은 교회가 아버지와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드리는 찬미와 간청의 노래이다. 대영광송은 루카복음 2장 14절로 시작하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노래하는 앞 부분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 포함된 뒷 부분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대영광송은 교회축일에 공동체가 다함께 부르는 축제의 노래이기에 성가대뿐만이 아니라 신자공동체 전체가 함께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영광송의 본문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일어서서 바친다.
본기도는 주례자인 사제가 신자들의 기도를 모아서 바치는 교회의 공적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명칭이 '모음기도'의 뜻을 지닌 꼴렉따(Collecta)이다. 본기도 전에 사제가 "기도합시다"라고 권고하면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잠시 침묵하면서 자신들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의 간청을 드리며, 사제는 신자들을 대표해서 정식기도문을 바치고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본기도는 전례시기나 그날의 축일, 미사의 의미를 요약하여 담고 있어서 그날의 기도로도 간주되어 특히 주일과 축일에는 시간전례의 아침과 저녁기도로도 사용된다.
제15강 말씀 전례 I 성경의 선택, 독서 배분
말씀 전례는 성찬 전례와 더불어 미사의 골격을 이루는 두 요소 중 하나이다. 말씀 전례는 성경에서 취한 독서들과 그 뒤에 오는 노래로 구성되며 강론,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 등 그 중심적인 부분을 보충하는 요소로 구성된다. 말씀 전례의 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전례에서는 성경봉독이 중심이 된다.
말씀 전례는 그리스도 생애의 사건과 그 장면의 신비, 그 때 그 장소를 상기시킴으로써 기념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말씀 전례가 성찬 전례와 비중이 같아진 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이다. 말씀 전례의 구조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인간이 화답하는 대화적인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1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화답송을 바치며, 2독서(하느님 말씀) - 복음전 환호성(인간화답), 복음, 강론(하느님 말씀) -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인간화답)등의 구조로 구성되어있다. 말씀 전례는 신자들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발음, 띄어 읽기 등 기술적으로도 잘 준비되어야 한다. 때문에 말씀을 선포하는 봉사자들은 미사 전에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등 영적인 준비를 해야한다. 말씀을 듣는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순간 말씀하시는 이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며, 그 분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경청해야 한다. 말씀 전례에서 성경의 선택은 그리스도 생애의 한 사건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미리 모방한 것을 구약성경에서 택하는 형식이다. 교회는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개혁의 일환으로 신자들이 성경의 주요부분을 잘 알 수 있도록 배려해서 주일미사 독서배분을 3년 주기로 나누었다. 주일미사의 경우 복음은 가해에는 마태오, 나해에는 마르코, 다해에는 루카복음이 봉독되고, 연중시기가 아닌 대림과 사순, 부활 성탄 등 특별 시기에는 요한복음이 낭독된다. 마르코복음이 경우 짧아서 나해에는 요한복음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연중 평일 복음은 1년 내내 한 가지 복음이 봉독되고, 독서는 짝수, 홀수해로 나뉘어진다. 현 미사전례에서 1독서와 복음은 연결을 가지고 주제의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되어있다.
제16강 말씀 전례 II 화답송, 부속가, 복음 환호송, 복음
말씀전례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화답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하는데 있다. 화답송은 1독서의 내용과 관련되기 때문에 미사전례성경(독서집)에 있는 시편을 주로 사용한다. 초기에는 화답송을 독서대에서 불렀는데 7세기 이후 복음과 등급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제단 밑의 층계에서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서 '층계송'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오늘날에는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 안에 새기고 기도로써 화답한다는 본래의 의미를 살려 '화답송'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시편으로 이루어진 화답송은 노래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며, 노래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후렴은 노래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알렐루야'에 가락을 길게 늘리고, 가사를 붙인 것이 부속가(Sequentia, 세퀜치아)이다. 과거에는 부속가를 '알렐루야'다음에 서서 불렀으나, 지금은 앉아서 부른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개혁으로 현재에는 부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만 부속가를 바친다. 복음환호송(Alleluia)은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노래로 그 뜻은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이다. 알렐루야는 처음에는 화답송과 같이 독서 후 응답으로 들어왔으나 점차 복음을 준비하는 노래로 성격이 바뀌었고 동시에 성구(聖句)도 들어오게 되었다. 복음환호송(Alleluia)은 환호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반드시 서서 함께 노래해야한다. 복음환호송(Alleluia)은 사순시기를 제외한 모든 날에 부르며, 위령미사 때에는 과거에는 부르지 않았으나 현재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복음을 봉독할 때는 말씀의 형태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의미에서 일어서서 듣는다. 오늘날에는 복음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성대한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향을 피우거나 좌우에 초를 켜서 행렬을 하기도 한다. 사제는 복음 봉독 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와서 준비기도를 바친다. 복음 봉독 전 엄지로 작은 십자표를 긋는 의미는 하느님 말씀을 경건히 알아듣고(이마), 고백하고(입), 실천하겠다는(가슴)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제17강 말씀 전례 III 강론,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
강론은 독서와 복음을 통해 들은 말씀을 해설하며 현 생활에 적응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강론내용은 성경독서 또는 미사통상문이나 미사전례문의 본문에서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론은 개인의 사상이 아닌 하느님 복음 선포의 장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와 적당한 길이, 대중적 이해 등을 고려해서 준비해야한다. 강론은 전례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주일과 의무축일에는 강론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사순, 부활, 대림시기의 평일이나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축일에도 강론을 권하고 있다. 강론시간에는 타 종교인의 강연이나 강론형태를 띤 어떤 강의도 해서는 안된다. 강론은 원칙적으로 주례사제가 해야 하며, 공동 집전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나 부제에게 맡길 수 있지만 평신도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사제는 주례석이나 독서대 또는 다른 적절한 장소에서 강론하며, 제대는 피해야한다. 신앙고백은 신자들이 독서와 강론을 통해 들은 하느님말씀에 부응하도록 준비를 시키고 성찬 전례를 거행하기 직전에 신앙의 진리를 일깨워준다. 현행 미사에서는 사용하고 있는 신앙고백문은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사도신경 두 가지이다.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6세기 초 미사에 도입되었으며 로마미사 전례의 공식 신앙고백문이다. 사도신경은 서방의 세례 신앙고백문에서 발달했으며 11세기 초 로마미사에 도입되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문이라는 믿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편지향기도는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권장하는 의미로 전례 안에 복구되었다.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를 청하는 모든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 구체적이고 긴급한 필요를 위한 기도, 우리들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 등 지향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교회는 보편지향 기도의 숫자가 6개를 넘기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제18강 성찬 전례 I 예물준비, 감사기도
성찬전례는 감사전례이며 이 전례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사업을 기념하며 성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공동체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께 봉헌하는 전례이다. 성찬전례는 미사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로, 성찬전례의 기원은 최후만찬 때에 예수님께서 빵과 잔에 대해 하신 말씀과 행위이다. 성찬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감정, 찬미의 노래, 봉헌의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다.
종교자유(4세기) 이후 신자수의 증가로 예물봉헌예식이 다양해지고, 행렬도 길어지게 되면서 예물봉헌에 알맞은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제물은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며, 이 제물은 감사기도 중에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되어 봉헌된다. 예물 준비 예식은 예물봉헌 행렬, 예물봉헌 성가,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바치고 준비하는 일, 사제의 손 씻음, 예물기도 등으로 구성된다. 예물 봉헌 때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연의 혜택뿐만 아니라 우리의 노동과 희생, 인간적인 허약이나 부족한 점까지도 포함한 우리 자신 전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상징한다. 예물 준비 예식은 성찬의 식탁을 차리고 예물을 준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사기도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때 빵과 잔을 들고 바치신 감사와 찬양의 기도이다. 감사기도는 사제가 전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느님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이다.감사기도는 그 내용,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미사전례의 중심과 절정을 이루는 장엄한 기도이다. 감사기도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따르는 기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격을 따라 바치는 대사제의 기도이다. 감사기도의 요소에는 감사(대화와 감사송), 환호(거룩하시도다), 축성기원 성령청원기도, 성찬제정과 축성문, 기념환호(신앙의 신비여), 기념과 봉헌, 일치기원 성령청원기도, 전구, 마침영광송 등이 포함된다.
제19강 성찬 전례 II 감사기도의 구조와 내용
감사기도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을 그대로 따르는 기도로 예수님의 인격을 따라 바치는 대사제의 기도이다. 감사기도는 본성상 사제 홀로 바치도록 되어있고 신자들은 믿음 안에서 침묵을 지키며 감사기도에 규정되어 있는 개입을 통해 사제와 일치하여 기도를 바치게된다. 중요한 전례 순간마다 사제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모임 안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며, 사제는 신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주님의 현존의식을 높이고 마음을 다지고, 기도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미리 일깨워준다. 감사송의 서론 부분은 구원의 절대적 조건을 드러내고 본론은 감사의 이유와 동기인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설명하며 결론은 거의 변함없이 감사와 찬미의 마음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거룩하시도다'를 3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은 최상급을 의미하므로 더없이 거룩함을 나타낸다.
축성기원 성령청원기도는 제대에 놓인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과 되게 해달라고 성령께 청하는 기도로 축성기원 성령청원기도 때 안수는 하느님의 능력을 내려주는 표시이며 십자표시는 축성의 전형적인 표시이다. 성찬제정과 축성문은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이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서방교회에서는 '성찬제정과 축성문'에 중점을 두고 이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믿고, 동방교회에서는 축성기원 성령청원기도 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체를 거양하는 관습은 12세기에 생겨났는데 성체의 실체변화를 부정하는 신학자들에 맞서고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강한 현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됐다.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찬제정과 축성문'의 순간이며, 미사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 환호부분이다.
제20강 성찬 전례 III 감사기도, 영성체
감사기도 중 기념과 봉헌은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예식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듯이 우리도 교회의 봉헌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전구는 교황님과 주교, 사제, 모든 교회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부분이다. 마침영광송은 감사기도를 마무리하는 부분으로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드리는 장엄한 찬송의 기도이다. 마침영광 송 후 바치는 "아멘"은 믿음과 공동체 신앙의 표시로 가장 중요한 한호이다. 영성체의 명칭인 꼼무니오(Communio)는 공동참여, 함께 나눔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거나 함께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온전히 인격적으로 일치함을 의미한다.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죄의 용서를 청하는 준비와 형제, 자매들과 화해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는 합당한 준비를 해야한다. 영성체 예식은 준비예식(주님의 기도-빵 나눔)과 본 영성체예식(행렬, 영성체),감사예식(영성체 후 기도)의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님의 기도 전에 하느님 아버지께 용기와 효성,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고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럽게 바치자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 되어..."라는 권고의 기도문을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로 그 핵심주제는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바라는 사상이다. 주님의 기도 전반부는 감사기도를 요약하고 후반부는 직접 영성체를 준비시키는 내용이다. 봉성체 등 미사 없는 영성체의 경우 주님의 기도를 필수적으로 해야한다.
21강 성찬 전례 IV 영성체 예식, 본 영성체 예식
본격적인 영성체에 들어가기 전에 평화예식을 통해 교회는 자신과 인류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간청하며 신자들은 교회와 일치하고 서로의 사랑을 표시하게 된다. 평화의 인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의 인사이다. 빵을 나누는 동작은 미사의 명칭으로 불릴만큼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나누고 영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미사, 성체성사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빵을 섞음'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혼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상징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성체를 전후해 모두 함께 노래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공동의 찬미이고, 신앙일치의 증거이다. 성체를 영할 때 신자들이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은 성체를 받아 모시고 더욱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겠다는 결의의 표명, 신앙의 표명이므로 큰 소리로 똑똑하게 "아멘"이라고 대답해야 하며 생략해서는 안 된다.
22강 성찬 전례 V 영성체 횟수, 양형 영성체
하루에 한 번 이상 영성체를 하지 않는 것이 교회의 오래된 관습이요, 전통이지만 오늘날에는 미사에 온전히 참석하기만 하면 하루에 두 번까지 영성체를 할 수 있다. (교회법 917조)
영성체를 하는 방법에는 손 영성체와 입 영성체가 있는데 영성체의 본 형태는 손 영성체였다. 하지만 6세기경부터 입 영성체가 시작되었고, 9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입으로만 성체를영하게 되었다. 입으로 영성체를 하게 된 이유는 성체를 집으로 가져가 부당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과, 영성체 때 작은 빵을 사용하기 시작한 점과 성체에 대한 외경심을 강조한데서 찾을 수 있다. 1969년 교황청 경신성이 훈령을 통해 손 영성체를 부분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한국교회도 주교회의에서 손으로 성체를 영할 것을 규정했다.
올바른 영성체 방법은 먼저 성체 앞에서 깊숙이 절을 하고, 왼 손을 오른손 위에 포갠 채 성체를 받은 다음 옆으로 물러서 오른손으로 영하는 것이다.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 후에는 성호를 긋거나 절을 하는 동작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형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으로 초대교회는 미사 때 양형영성체를 행했다. 12세기 이후 성혈을 흘릴 위험성이 있다는 사목적인 문제로 성혈을 마시는 것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규정이 완화돼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서품미사, 수도자 서원미사, 세례미사 등에서 성사를 받거나 서원을 한 당사자는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미사전례서 총지침'에서는 양형 영성체에 대한 규정이 더욱 완화되어 교회는 사목적 어려움이 없는 경우에는 양형 영성체를 권고하고 있다.하지만 성체만을 영한다 할지라도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는 데는 아무런 결함이 없다.
제23강 공심제, 성체분배, 마침예식
공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합당하게 영하기 위해 일정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것이다. 초세기 교회에서는 공심제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었으나 3세기 테르뚤리아노 교부는 "영성체 전 일정시간 동안은 어떤 음식도 먹지 말아야한다"고 해서 공심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공심제는 1917년 교회법전을 통해 법제화 되었는데 이때 규정은 전날 자정부터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를 먹거나 마시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1953년 교황 비오12세는 이 규정을 완화 해 병자를 위한 예외규정을 도입했으며, 물은 언제든지 마실 수 있게 했다. 이후 1959년에는 '일반음식과 술은 영성체 전 세 시간 비 알코올음료, 물은 한 시간 전까지 허용'하도록 규정이 바뀌었고,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사제와 모든 신자들의 공심제를 한 시간 전으로 완화했다.또 1969년에는 병자, 노약자, 간병인 등 특정인들의 공심제 규정이 15분 전으로 단축됐다. 공심제의 기본 정신은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올바르게 준비를 하는 것이다.
초 세기부터 성체분배자는 주교와 사제였으며 2세기경 부제들도 성체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평신도 성체분배자가 임명되기 시작했는데 1969년 이후에는 여성에게도 성체분배권이 주어졌고, 1973년에는 각 교구장에게 평신도 성체분배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교회가 정한 정규적인 성체분배자는 주교,사제,부제이며 평신도는 예외적인 성체분배자이다. 성체분배자는 전례와 성체에 대한 기본 교리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건건한 신앙생활을 하고 윤리적, 도덕적 결함이 없어야 하며, 자주 미사에 참여해 영성체를 하는 등 성체신심이 돈독해야한다.
제24강 전례주년의 구조와 개념
전례주년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역사를 1년이라는 주기 안에서 기념하는 것으로, 이 전례주년을 시기, 달, 날짜 순으로 종합해 놓은 것이 바로 전례력이다. 전례주년은 부활(파스카)대축일과 성탄대축일 양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고, 축일은 전례 고유시기에 거행되는 축일(Temporale)과 성인들의 축일(Sanctorale)로 나뉘어져있는데 주님과 관련된 축일을 가장 우선하는 것이 전례주년의 근본정신이다.
전례력에서 한해의 시작은 대림 1주기부터 시작되며, 예수성탄대축일에서부터 주님세례축일 까지를 성탄시기라고 한다.
성탄시기 이후에는 연중시기가 시작되고, 재의수요일(2월 중순-3월 초)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부활대축일부터 성령강림 대축일까지를 부활시기라고 한다.
부활 시기가 끝나면 다시 연중시기가 시작되고, 연중 34주간인 그리스도왕대축일에 전례주기가 끝난다.
교회는 1년의 모든 날을 전례일로 간주해 미사와 시간전례(성무일도)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전례일은 보통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이지만 주일과 대축일은 전날 제1 저녁기도부터 시작된다.
축일에는 그리스도와 성인들과 관련된
제25강 축일의 등급
축일의 등급은 대축일, 축일, 기념(의무,자유)의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
대축일에는 주님에 관한 대축일과, 성인들에 관한 대축일, 지역대축일, 수도회 대축일이 있는데 그 중 주님의 대축일은 가장 우선시 되는 축일로 예수성탄, 주님승천, 주님수난과 파스카 성삼일 등이 이에 속한다. 사순시기와 부활시기의 모든 주일은 대축일의 등급에 속하며, 대림시기의 모든 주일은 대축일의 등급이자만 성탄시기의 모든 주일은 일반축일의 등급이다.
사순시기 재의 수요일, 성주간의 월~목요일, 부활 팔일 축제 내 모든 날들은 대축일등급에 속한다. 같은 대축일이라 할지라도 한날에 겹치게 되면 등급에 따라 선.후를 결정해지내게 되며, 지내지 못한 축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적당한 날을 다시 정해 지내야 한다.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모승천 대축일, 성 요셉 대축일 등이 성인들의 대축일에 속한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 순교자 대축일 같이 특정지역(우리나라)에서만 대축일로 지내는 대축일을 지역대축일이라고 한다.
연중 주일과 사순시기의 모든 평일은 주일과 동급의 축일로 지내지만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의 모든 평일은 축일의 등급은 아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마지막 한주(12월 17~24일)는 축일의 등급에 속한다. 교회에서 가장 큰(중요한) 축일은 부활 대축일이다.
성인들의 경우 4복음사가와 12사도만이 축일의 등급에 속하고 나머지 성인들은 기념의 등급에 속한다. 기념등급에는 보편교회가 의무적으로 기념하는 의무기념일과 선택적으로 성인들의 축일을 지낼 수 있는 자유기념일이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이 돌아가신 날을 축일로 정해 기념 하게 되며, 잘 알려진 성인의 경우가 의무기념일에 속한다. 대축일에는 초를 6개 사용하고 축일에는 4개, 기념등급에는 2개를 사용한다.
제26강 사순시기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초기교회 때부터 3주에서부터 40일까지 다양한 기간을 지내다가 현재는 재의 수요일 부터 시작 되는 40일간의 사순시기를 보낸다. 사순시기(40일)는 성서 상에서 구원의 의미를 상징한다. 초기교회에서는 옛 성삼일(성 금요일-부활)에서 역산해서 40일간의 준비기간(사순시기)을 지켰다가 4세기 말 로마에서는 3주간의 준비기간을 지켰다. 이후 준비기간을 지키는 사상이 엄격해지면서 사순시기(준비기간)도 늘어나게 되는데 주일을 빼고 옛 성삼일(성 금요일- 부활)전 까지 34일간의 준비기간을 지낸 적도 있다. 34일에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 이틀을 더해 36일의 준비기간을 지내기도 했다. 이 때 36일간의 준비기간은 1년의 11조를 지내는 의미가 있다. 이 36일에 4일을 더해 현재처럼 재의수요일부터 시작되는 40일간의 준비기간(사순)을 지내게 되었는데 40일이라는 기간의 상징적 의미는 속죄로서 우리생활을 혁신하기를 촉구하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장차 이루어질 큰 사건(부활)을 합당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순시기동안 신자들의 삶을 성화시키고 하느님께 다가서며 만날 수 있는 준비를 시킨다. 사순시기를 맞는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제, 자선행위 등의 외적인 준비와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묵상하며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내적인 준비를 한게 되며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른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전례주기 중에서도 가장 중한 의미를 지녀 '은총의 시기'로 불리기도 한다.
전례는 형식적인 것, 우리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생활을 기쁘게 채워주고 전례를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기쁨의 잔치이며 교회생활의 정점이며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