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_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야. 잘 생각해봐.
살면서 네가 얻은 것은 네가 잃은 것들로 이룬 거니까.
_ 어느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제법 몰입해서 본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를 빌려보자면, 살면서 얻은 모든 것은 우리가 잃은 것으로 이룬 거란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뒹굴거릴 자유를, 차 한 잔의 여유를, 극단적으로는 건강과 양질의 수면까지.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얻고, 또 잃으며 살아가지 않는가. 구별이 어려울만큼 서로를 빼닮은 자매에게 결혼은 전혀 다른 시간의 궤적을 남겼다. 그 간극이 너무도 실감 나서 읽는 내내 입안 한 구석이 씁쓸할 정도로. 안진진의 어머니는 자신의하나뿐인 자매를 조금은 미워했고, 또 사랑했다. 그러나,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해보였던 이모 역시 자신의 자매를 부러워했다는 점에서 삶의 모순이 시작된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이모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얻은 것이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는 말이 화려한 외면 뒤 가려진 내면에, 저마다의 아쉬움에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옷을 입고 앉아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린 10대를 지나 새로이 마주한 20대 초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바뀐 앞 자리는 묘한 설렘과 압박을 동시에 선사한다. 20대라면 응당 해보아야 한다는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지나가듯 툭 던진 한 마디가 모여 바다를 이룬다. 그야말로 충고의 홍수다. 충고의 총합이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곤란할 때도 있지만.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말. 그 속에서 나는 오랜 미련을 발견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충고는 저마다의 미련을 닮아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털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죽는 날까지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김장우와 나영규, 각각 안진진의 아버지와 이모부를 연상시키는 두 남성에 대해 이모는 어떤 평을 내릴지, 어떤 남성을 배우자로 추천할지,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답변이 궁금해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여졌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이모의 결핍을 마주하고도, 되려 나영규의 ’무덤 같은 평온‘을 택한 안진진. 여러모로 이모부를 연상시키는 나영규를 고른 안진진의 모습에서 삶의 또 다른 모순을 마주한다. 그래, 어쩌면 안진진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소의 귀를 가진 모양이다. 그럼에도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게 있듯 불행과 행운은 종이 한 장 차이이기에 안진진의 모순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모순이 행운에 가깝기를 바래본다.
때로 불행과 행운의 얼굴은 같고, 우리는 그 둘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에.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 불청객처럼.
행운이라고 친절하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때로 불행과 행운의 얼굴은 같고
나는 여전히 그 둘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너는 내게 어떤 얼굴로 온 것인가.
행운인가, 불행인가 그 무엇도 아닌가.
_ 어느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첫댓글 '충고의 홍수'라는 가영이의 표현에 흠칫 경탄하면서 공감했어요. <모순> 속 "이십대의 젋음에는 온갖 것이 다 사랑의 묘약일 수 있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떠오르네요. 저도 아직 잘 모르지만 어떤 경험에 있어 선택지가 많고 다양할수록 충고의 총합이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럴수록 저마다 삶의 이야기가 다르기에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충고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내려 경험을 했을 때 나만의 이야기도 그려진다는 점에서 경험이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십대는 설렘과 압박을 모두 선사하는 모순적인 시간대이지만, 이는 삼십대, 사십대에도 적용되기에 초조해 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우선시 되어야겠다는 것이 최근 들어 제 생각입니다:)
구별할 수 없는 얼굴로 오는 불행과 행운.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굳이 구분 해야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드네요. 무엇이든 그저 그냥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무엇이든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모는... 김장우를 추천할 것 같아요...^^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야 라는 말이 참 와 닿네요 무슨일을 할 때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예요 포기한것들 때문에 내가 이룰 수 있는 무언가들이 있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