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8월 19일(금) 12Mile
JMT일정 시작점에서...
차에서 그대로 눈을 붙이고 새벽 6시에 일어났다. office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줄을 설 수 있었다. Office가 오픈되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족히 15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Walk-in permit의 경우 Yosemit visiter Center와 이곳 Tuolumne Meadows Welcom Center 그리고 Mammoth Lake Welcome Center 등 몇 군데에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 현장에서 줄을 서야 하고 한정된 숫자만 받을 수 있어 경쟁이 심하다. 그러나 이곳 Tuolumne이 비교적 받기가 쉬운 곳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permit을 받아 산행을 시작하는 듯 했다. 아직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탓에 소통이 다소 어려웠다. 박신희 회장님이 모든 설명을 잘 해 주었기에 퍼밋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깐 차분한 시간을 가졌다. 함께 왔던 트래커가 먼저 길을 떠났다. 서로 겹치지 않기 위해 내가 30분 늦게 출발하였다. 이렇게 해서 JMT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Tuolumne meadow를 출발하면 이런 물과 평지길을 계속 걷습니다.
짐을 완전히 정리하고 8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나무들 사이로 쭉 뻗은 등산로가 나를 반기는 듯했다. 날씨도 맑았다. 그러나 어느새 햇볕은 뜨거워졌고 반소매를 입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물론 요세미티 공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풀코스를 모두 걷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트래커가 투알루민에서 부터 시작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여기가 나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후에 투알루민에서 부터 요세밋까지는 따로 계획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처음 초입에 들어서니 계속 평지 길이었다. 오늘 하루는 아마도 이 평지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 평지 길을 걸으면서 JMT가 이 정도의 길이라면 할 만 하겠네 하는 생각을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 이런 평지 길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해 질 녘부터 만나게 될 JMT의 면모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2시간 정도를 계속 걸었다. 11마일 정도 평지 길로 걷게 되는 이곳이 바로 Lyell Canyon이다. 물가를 따라 계속 걷게 되는데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트래커 만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물가에 나와 있는 이들도 많았다. 투알루민은 yosemite에서 가깝고 차에서 접속이 바로 되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종종 트레일에 들어서서 진행을 하고 물가에서 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JMT를 다니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2시간여를 또 계속 걸어 점심을 먹을 자리를 찾았다. 햇볕이 뜨거웠기에 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물은 풍부하지만 정수기를 사용해야 했다. 물론 음식을 만들때는 바로 계곡의 물을 사용해도 된다. 하지만 수병에 담은 물은 정수를 해야 한다. 점심은 아침에 남은 것을 싸서 가져온 것으로 간단히 먹었다. 한 잔의 커피 끓어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분위기를 잡아보았다. 그러나 왠지 모를 외로움이 밀려왔다. 혼자서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한다. 그래서인지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출발하니 2시였다.
30여 분 진행을 하였는데 길이 질퍽하고 물이 산쪽에 흘러 내리고 있는 곳을 만났다. 앞을 내다보니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옆으로 조금 진행해 보니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행히 앞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질퍽거리는 길을 건너 사람들에게 트레일이 맞는지 물었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계속 진행하였다. JMT는 길이 잘 나 있어서 잊어버릴 염려는 없다. 그런데 올해에 눈이 많아 와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다 보니 생각지 않는 어려움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50여 분을 걸었다. 그리고 10여 분 잠깐 휴식했다. 먼 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가야 할 곳인 것 같다. 무엇이라 분명히 표현할 수 없는 여러 마음이 밀려든다.
3시에 다시 길을 시작했다. 10여 분을 갔을까 풀숲 사이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있는 뱀이었다.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녀석도 놀랐는지 머리를 들었다. 순간 마음에 정적이 흐르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모양과 색깔의 뱀, 발디 마운틴에서 회색빛의 방울뱀을 만나 적이 있었다. 한국의 뱀과는 크기가 달랐다. 무서웠다. 가만히 그냥 지나가 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더니 들었던 머리를 내리고 서서히 사라져 주었다. 뱀을 만나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뱀이 놀라서 머리를 들었어도 가만히 일단은 있어야 한다. 마주친 뱀은 색깔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고, 침착하게 가만히 기다렸다. 이렇게 수초의 시간이 흘렀고 뱀은 머리를 내렸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식겁했던 마음에 호흡이 돌아오고 차분해졌다. 와... 조심해야겠구나... 풀숲을 진행할 때는 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평지 길에 다소 마음을 놓았던 것 같다. 다시 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란 가슴이었는지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한 5분간 휴식을 하며 심호흡을 크게 해보았다. 이렇게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4시가 넘었고 평지 길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다. 앞에 보이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긴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세요. 물 속에 제법 큼직한 고기들이 많습니다. 낚시 퍼밋을 받아 JMT를 횡단하며 식량을 대용할 수 도 있습니다.
이제 캠프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 평지 마지막 길에 다다르니 텐트를 쳤던 흔적이 있는 곳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처음 JMT에 들어서서 맞는 밤이기에 왠지 모르게 혼자라는 것이 부담되었다. 그래서 좀 더 진행해 보기로 했다. 오르막길에 올라서야 했다. 1시간여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트래커들의 텐트가 몇 동 보였다. 물이 가까이 있었고 텐트를 칠만한 곳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 지도를 펼쳐보니 좀 더 올라가면 Lake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올라서면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오늘은 여기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왠지모를 첫날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에 있었던 것 같다. 배낭을 내리고 자리를 찾았다. 아래쪽에는 백인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위쪽에는 백인 남자 혼자 있는 팀이 있었다. 그리고 세 명의 백인도 팀이 되어 텐트를 구축하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일을 했다. 텐트는 바닥이 없는 셀터 형태의 텐트를 사용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바닥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바닥에 그냥 은박지 돗자리를 깔고 스펀지 매트를 그 위에 폈다. 텐트 안에 공간이 충분했기에 편안한 마음이었지만 혼자라서 그랬는지 왠지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식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인지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미숫가루에 꿀 가루를 넣고 믹서한 후 마시고 간단히 정리하였다.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첫날이라 긴장감은 있었지만 평지 길을 걸을 때는 그렇게까지 피곤한 줄 몰랐다. 그러나 마지막 한 시간여의 오르막길에서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산은 거짓이 없다. 걸으면 가게 되고 멈추면 가지 못하게 된다. 눈은 멀리 보면서 언제 가나 하는 생각을 주지만 묵묵히 발이 걸어주면 가야할 곳에 다다르게 된다. 게으른 눈이 아니라 묵묵한 발을 가져야 한다. 걸으면 가게 되고 땀 흘린 만큼 가게 된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내일의 기약은 없다. 그러나 내일의 계획은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계획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계획은 세우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된다. 묵묵히 이루어 가야 한다. 묵묵히 걸을 때 이룰 수 있다. 계획은 성취가 되고 결과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해 본다. 계획은 있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묵묵히 그 계획을 위해 걸어가련다.
일찍 자고 싶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야 겠다. 아침은 든든히 먹고 출발해야겠다. 수통이 하나여서 불편하다. 항상 캠프를 위해서는 대용량 접이식 물통을 가지고 다니는데 이번에 이것을 가져오지 못했다.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했지만 항상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계획도 마찬가지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부족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부족함 때문에 멈출 수는 없다. 대용품을 만들고 찾아 극복해야 한다.
곰이 안 왔으면 좋겠다. 냄새가 없는 음식은 텐트 안에 두어도 된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법들을 알려 주어 어떤 것이 맞는지를 모르겠다. 어쨌든 첫날을 지내봐야 알 것 같다. 곰통(Bear Can)에 음식물을 넣고 텐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음식물은 비닐봉지로 꼭꼭 싸서 침낭 안에 넣었다. 후에 알고 보니 텐트 안에 그리고 침낭 안에 음식물을 보관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리 비닐봉지로 잘 밀봉을 해도 후각이 워낙 뛰어난 곰이 냄새를 맡고 텐트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침낭 안에 음식물이 있다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5일 정도를 지냈는데 곰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첫날의 피곤함 때문에 아름다웠을 별 빛도 보지 못하고 그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실려오는 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른체 그저 피곤함과 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하룻밤이 지나갔다. 첫 날의 경험이 새롭다.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 그러나 가봐야겠다. 가보면 알겠지. 침착하게 진행해보자.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