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가모니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고 있었다
석가는 생로병사를 알고자 도의 길을 걸어 천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기록하였으나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
‘하시야소래 ( 何時耶蘇來 )
오도무유지등야 ( 吾道無油之燈也’ )
언제든 예수가 오면
내가 가르친 교육은 기름 없는 등이다.
예수는 오백 년 뒤에 오셨고 이후 불교가 있어도 기름 없는 등인 것이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나니
Jesus is the Answer.
2.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결정적인 차이점
*성경과 불경에 매우 비슷한 사건이 나온다
<성경 누가복음 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불경>
석가모니에게 독자를 잃은 과부가 와서 살려달라고 하소연하자, 석가모니는 그 여자에게 동네에 내려가서 한 번도 죽음을 겪지 않은 집에서 쌀 한 줌을 얻어서 미음을 쑤어서 아들에게 먹이면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여자는 크게 기뻐하면서 동네를 뒤졌지만 한 번도 죽음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어깨가 처져서 돌아온 그 여자에게 석가모니는 위로하면서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법,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하면서 위로했다. 이에 여자는 크게 깨달음을 얻어서 내려갔다. 불교는 매우 철학적이고, 얼핏 심오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3대째 불교 스님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개종하게 된 김성화목사님의 간증 중에서)
<결론>
독자를 잃은 과부의 이야기가 성경과 불경에 나온다. 불교에서는 죄의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였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불교에서는 죽음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만약 석가모니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나는 석가모니는 구세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독자를 잃은 과부는 절망 속에서 심히 슬퍼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시더니 덜컥 독자를 살려놓지 않으셨는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다. 이것은 말로만 전하는 심리적인 위로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예수님은 생명이요 부활이시다. 예수님만이 구세주이시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