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교회 60~70년대 시절
박병수 장로
화재를 막아주신 하나님
60년대 겨울철에는 화목 난로로 겨울을 지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난로를 피우고 교회를 따듯하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유 난로를 구입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몰라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 난로를 피울 때, 경유 연소가 잘 안되어 그름이 어찌나 많이 나는지 횐 옷을 입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 연소가 되어 난로가 달구어 지면 기름을 줄여야 하는데, 타임을 놓치면 기름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난로가 서서히 달구어졌다. 그러면 난로가 감당 못하게 시뻘겋게 되고 연통도 불덩어리가 되어 처마 밑으로 연결된 연통으로 불이 나왔다. 모두가 겁이 나서 조마조마 하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지켜 주신 거라 믿습니다. 불이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하죠.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퇴계원 교회입니다. 송권 목사님이 나오시던 시절(1967년~1973년)이었습니다.
신바람 나던 교회 수리 공사
교회 건물이 오래되었고, 천장을 석회를 섞어 미장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곧 떨어지기 직전이라, 모두가 불안한 가운데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가 오면 기와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얼룩이 지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라 모금도 힘들고 그래서 교우들과 청년들이 손수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전도사는 지금은 돌아가신 강학복 전도사(1972년~1973년)였습니다. 강 전도사는 삼육대학에서 전기를 배워 그 방면에 소질이 있어서 전기공사를 했습니다. 천장을 뜯어냈는데 묵은 먼지로 온 몸을 뒤덮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검정 먼지와 씨름하였습니다. 기와장이 오래되어 모두 걷어내고 새로 기와를 올리는 일도 우리 청년들이 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를 사랑하여 그 일이 신바람 나도록 재미있었습니다.
우물파기
지금은 상수도지만, 60~70년대에는 우물이나 펌프였습니다. 교회 사택 마당에 우물을 파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 청소년(우홍정, 손기판, 박병수) 시절로, 조인영 전도사(1975년~1976년)가 얼마의 자금을 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약 7~8미터 깊이의 우물을 파는데, 작은 바위와 딱딱한 땅을 파고 물이 나올 때까지 파는 작업은 그 당시에는 큰 고역이었습니다. 다 파고 나서 파이프 넣고 펌프를 설치하였습니다. 지금이야 돈만 주면 기계로 쉽게 파지만, 그때는 노동력으로 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연약하던 교회가 오늘날 큰 교회로 성장하여 60주년을 맞이하다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삼총사의 침례
퇴계원하면 왕숙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그 물로 밥을 해 먹고 물장구치며 눈뜨고 잠수하던 왕숙천이었습니다. 침례 장소로 그 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습니다. 64년 10월 17일, 조금 물이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었지만, 우리 삼총사는 임병의 목사님으로부터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누가 찍어 주었는지 모르나 나의 침례 사진이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그 왕숙천에 청년들이 야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사진도 빛바랜 사진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퇴계원교회에 관련한 나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교적 30번, 공릉동교회)
사진 넣기- 1964, 1966, 1974
왕숙천에서 침례식, 2) 삼총사, 3) 첫째교회 예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