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유화는 언젠가 배워보고싶은것 중 하나였고 유화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 가끔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부러워하다가 잊혀저가는줄 알았다.
우연하게 교회에 유화클래쓰가 있는걸 알자 배우는 중간이었지만 허락을 받아내고 들어갔다. 교회에서 하는 문화교실에서 젊은 선생님이 유화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고 내 또래의 나이든 분들도 와서 배우고 젊은 엄마들도 배우러왔다. 선생님은 자신이 계속 공부를 하는 주부면서 엄마이기도 하고 계속 미술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재능봉사하며 가르치고 있었다.
연필스케치를 몇달간 먼저 배우고 드디어 유화를 배우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들을 물어 구비하기 시작했다. 물품구비조차 쉽지 않은것이 도무지 구름잡듯이 어떤걸 구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러이러한게 좋다고 하셨지만 너무 모르니 애매한 생각이 들었는데 초보에게 알맞게 찍어서 이걸 사라고 할때야 구매를 할수 있었다. 얼마나 살건 많은지. 제일 좋은건 아니지만 학습용에 적합하다는 winsor & newton을 아마존으로 주문하니 왔고 붓들도 선생님이 이거라고 하는대로 주문해서 왔다. 붓은 크고 작은 것도 있고 짧고 긴 것도 있다. 끝이 일자로 된것도 있고 굴리듯 둥글게 짤린것도 있다. 셑트로 팔기 망정이지 왜 이런게 필요한지도 모르며 하나하나 사려면 힘들뻔 했다 싶었다. 이젤은 테이블위에 세우기 위해 작은 걸로 쉽게 샀고 나무로 된 빠렛트를 가져온 사람도 있더라는 말에 종이로 된 스케치북 모양의 빠렛트가 있는것도 알게 됐다. 한장씩 뜯어쓰고 버린다 했다. 빠렛트들고 멋지게 그림 그리는 내 영상은 지우기로 했다.거기다 켄바스, 겟소 thinner등 끝이 없을것 같은 목록을 다 체크하고 드디어 다 샀나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대체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초년생의 두려움과 설렘을 느끼며 가야하는 첫날이 닥아왔는데 예전에는 못 들어본 grand parents day라는게 있어 유치원생이 된 손주녀석의 학교에 가야했고 유화 클래쓰엔 양해를 구하고 늦게 도착했다.
고흐의 명화중에 하나씩 골라서 그리는걸로 시작하게 되어 있어서 나는 뱅글뱅글 꼬불꼬불한 고흐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고흐답지 않고 그중 자연스러워보이는 알몬드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그림을 택해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놓았다. 다른 사람들 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캔버스를 쓰기로 했다. Grand parents Day 에 같이 갔다가 나를 데려다주게 되어버린 남편이 들어다줬기에 망정이지 얼마나 보따리 보따리 들고 들어갈게 많은지.
유화 클래스는 이미 시작되어 모두 펼쳐놓고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늦었어도 테이블에 비닐을 덮고 유화 물감도 꺼내고 붓도 꺼내고 살림살이들을 늘어놓는데 옆에서 유화를 배운지 오래인 경험많은 집사님이 오셔서 캔버스 뒤에 물 스푸레이를 했냐고 했다. 그제서야 아차 spray bottle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잊어버렸구나 싶었다. Spray bottle을 빌려서 켄바스 뒤에 물을 spray했다. 그렇게 해서 말리면 켄바스가 더 팽팽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오래진 않아도 켄바스가 마르도록 기다렸고 마른 다음에 또 그 집사님의 도움으로 갯소를 개어 캔바스에 바르고 그게 또 말라야해서 바깥 바람에 내다 말리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 다른 사람들은 끝낼 채비들을 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절절 매다가 괜히 펼쳐놓았던 이삿짐같은 내 유화 살림살이들을 다시 챙겨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됐다. 그 외에도 마르지 않은 캔바스가 행여 어디에 부딪쳐 더러워질세라 뒤 트렁크에 혼자 눕게 하고 다른 짐들은 뒤좌석에 놓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몇번 해본것처럼 다른 캔바스뒤에 물 스푸레이를 하고 마른 다음 갯소 칠을 하고 한쪽 식탁에 주욱 늘어놓고 말리고 마른 캔바스에 번질세라 염려해서 하얀 색연필로 그림 스케치를 대강 하고 배경색들을 골라 칠하고 다음 클래스에 가져가고 또 "무엇 무엇 안 가져왔어요?"소리도 들으면서 그다음 시간에 너무 잘 챙겨서 너무 많이 가져가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유화짐 싸는 요령도 생겨 차에까지 들어다 실어주며 남편이 "이게 다야?" 하는 소리도 듣게 됐다.
새로운 session을 시작하며 선생님이 설문지를 돌려 물어보는중에 유화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목적은 없고 그냥 내가 즐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 나이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을까. 늙었다고 비관해 하는 말이 아니고 아무 다른 욕심없이 그냥 즐길수 있는게 참 좋다. 며칠전 아이들이 갑자기 우리집에 모이게 됐었다. 좀 멀리 사는 아들가족이 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나머지 아들딸 식구가 다 오겠다고 해서 짜장면을 해먹이며 내가 그린 유화들을 보여 슬쩍 자랑을 했다. 물론 감탄들을 하며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을 해준다. "다 그리기도 전에 잘했다고 칭찬하면 어떡해요?"하고 웃지만 못했다고 하는것보단 즐겁다.
나는 그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다 싶은 재미있는 얼굴표정들도 있고 특히 낙엽색깔이 얼마나 찬란하고 화려한지 화폭에 담아 잡아두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이루 크고 아름다운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히 다 그려낼수 없겠지만 어설프고 조그마한 흉내로도 나는 참 즐겁다. 그래서 유화 초년병은 참 고맙다.
첫댓글 배움에 증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글도 잘 쓰시고 이제 유화까지 즐기시니 부럽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멋져요.
유화를 배우시는 선생님의 노년이 너무 멋져요.
하얀 백지위에 그림을 담고 글도 담으시며 행복한 노년을 즐기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