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레츠 관계망으로 돈없이도 살아볼 수 있을지 실험해 보아요
박경숙의 지역화폐 사용기
2014년 12월 8일
과천에서 지역화폐를 통해 공동체가 재미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지난 7월부터 말로만 무성했던 지역화폐를 순천레츠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됐다. 매일매일 생겨나는 업무로 인해 무슨 일이 추진되는지도 모르던 중 실무를 담당한 김인아 씨의 전화를 받고 처음 열리는 장터에 참여했다. 장터에 나가면서 문득 최근 나에게 생긴 놀라운 '필사 습관'을 품목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책이 잘 안 읽어져 공책에 베껴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정말로 재미난 경험이었다. 책을 준 사람에게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이 생겨 은혜를 갚고 싶을 정도로 그 책의 내용이 아주 깊이있게 다가왔다. 그 습관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약간 애석하기도 하고 다소 장난끼어린 마음으로 '습관'을 지역화폐로 내놓기로 했다. 보통 습관이 아니기때문에 지역화폐 3만두루를 받을까 생각하며 순간 끼득끼득 기분이 좋아졌다. 또 뭐가 있을까 싶어 집안을 둘러보니 냉장고에 먹지않고 한달째 자리를 지키는 복분자가 있었고, 엄마가 미나리 나물을 무쳐서 준것으로 입맛을 돋을 찬으로 술도 한잔 내놓기로 했다. 며칠 전 아는 언니가 보이차를 줬는데 언제 이걸 먹을까 싶어 차에 싣고 다니고 있었다. 암튼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 앞에 내놓으면 제법 먹을거리가 될만한 것을 들고 지역화폐장터가 열리는 순천광장신문사 사무실로 갔다.
사람들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곶감에 귤, 커피포트, 차내리는 도구, 책, 치약, 비누, 소화제, 등 벼라별 것들이 나온다. 물론 아무것도 들지않고 아무 생각없이 빈손으로 구경삼아 온 사람도 있다.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약간 눈치가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물건을 소개하고 장터가 열렸다. 거래는 돈이 오가지 않는다. 모두 가상화폐로 거래한다. 나에게 필요한지 잠시 생각하고 바로 구매한다. 물건을 사면서 기분이 겁나게 좋다. 그다지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일단 공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통장내역에는 마이너스가 붙는다. 마이너스는 뭔가 나에게 필요치 않은 것이 생기면 그것을 나누면 된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사도 가벼운 마음이 들고 나에게는 별로 필요없는 것이 타인에게는 귀하게 맞이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게 좋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우리들 사이에 뭔가 새로운 사건이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지 않을수 없다.
어제는 아버지가 벽에 거는 시계가 필요하다고 해서 살까 하다가 순천레츠 카페에 올려봤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집에 하나 남아 도는 시계가 있노라"고. 다음날 집에 있는 책이 널브러져 있어서 책을 정리하기위해 책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장을 구한다"는 글도 카페에 올려봤다. 어.머.나. 세. 상. 에. 몇 시간 만에 "책장이 있노라"고 문자가 왔다. 그리고 책장을 만드는 재주를 가진 최재훈 씨가 함께 만들어 보자고 책장의 높이와 넓이를 묻는다. 아~갑자기 내가 천국에 입성한 기분이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며 순간 행복도 최고가 됐다. 지역화폐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매일 매일 재미난 사건을 만들어줄지는 미처 몰랐다.
앞으로는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란다. 물론 돈이 들어가는 것은 현금을 내놓고 나머지는 두루로 해결한다. 이것은 무슨 즐거움을 줄란지 모르겠지만 암튼 흥미진진한 세계에 진입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놀다보면 나는 언젠가 돈을 벌지않아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어찌어찌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