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계북면 월현리에 소재한 백주교님 피난굴 가는길 예초작업을 하였습니다.
작년에 여러 형제님들께서 포크레인으로 길을 다져놓았던 피난굴 가는 길의 웃자란 풀들을 천천히 예초하면서 올라가 봅니다.
두분이서 앞서 예초를 하고 그 뒤를 애령분과장님이 낫과 톱을 가지고 양 옆의 잔가지들과 제법 큰 나뭇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작년 10월에 신자분들과 함께 방문하고 나서 한번쯤 다시 가 봐야지 했었는데 그마저도 뜻대로 안되어 아쉬운 찰나에 함께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신자들이 망을 보았다던 아랫굴에 도착하여 밧줄을 잡고 가파란 산길을 조금 더 올라 백주교님 피난굴에 도착하여 보니 작년의 어르신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함께 하셨던 기도묵상회 어르신들께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시면서 힘들지 않냐고 여쭙는 저의 물음에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못올것 같아서 따라나선다는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손수 나무 사이를 밧줄로 연결하여 가파른 산길을 오를수 있도록 지지줄을 메었다는 이야기들을 하시면서 당신들께서 이제 살아 있지 않으시면 여기도 기억속에서 사라질것 같다는 우려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그때 내려오면서 자주 찾아 봐야지 다짐했었는데 뜻대로 하지 못한 죄송함마져 들었습니다.
피난굴에 올라 잠시 땀을 식히며 나눈 대화도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에 있는 순례지를 관리하고 다듬어 신자들이 자주 찾아보고 관심을 가질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까 라는 열띤 대화도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얼마전 숲정이에 익산 여산성지 순례길이 소개되었던 것이 생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숲정이에는 여산 지역의 순례길이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성채골 공소터도 나와 있었는데 그 공소터 바로 옆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소가 있어 자주 찾아보고는 하는데 덩그러니 종탑만 있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교구 또는 본당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마침 숲정이에 소개가 되어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 피난굴도 다른 순례지와 연계하여 순례길을 만들고 그 중간에 우리 본당이 구심점이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한번 해 봅니다.
친교분과장님과 시설분과장님과 애령분과장님이 함께 한 이날의 예초 작업은 오후 2시 쯤 시작하여 하산할때 시간을 보니 저녁 6시가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예초 작업을 시작할때는 구름이 잔뜩 끼고 전날 내린 비로 무척 후덥하여 땀이 비오듯 하였는데 하산할때는 맑은 하늘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이렇듯 백주교님 피난굴을 방문할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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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블랑 요한 주교 연혁❱
한국 이름 : 백 규삼(Marie-Jean-Gustave Blanc)
1844년 5월 6일 출생
1890년 2월 21일 사망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66년 12월 22일 서품
1876년 5월 10일 : 블랑(Blanc, 백규삼), 드게트(Deguette, 최동진) 신부중국에서 조선으로 잠입
1878년 6월 : 리텔 주교로부터 부주교로 임명되어 리텔 주교의 직무를 대행
1882년 2월 4일 ~ 1890년 2월 : 명동성당 초대 본당 신부
1883년 7월 8일 : 나가사키에서 프티쟝(Petti Jean) 주교로부터 주교로 서품됨
1884년 6월 20일 : 리텔 주교가 서거하자 제7대 조선 교구장에 취임함
1884년 8월 「백주교 요간」사목 교서 발표
1885년 12월 : 대구 본당 신설을 명함
1887년 5월 : 명동성당 부지를 매입함
1888년 9월 : 「백주교 윤음」사목 교서 발표
1890년 2월 21일 :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