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유혹하다
평소에 동양, 특히 중국 중심의 처세술을 읽기 좋아하는 필자는 가끔 합리적 사유가 지배하는 빈틈없는 서구의 전략적 관점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며칠 전 다시 꺼내든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로버트 그린은 현대사회의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남녀관계 등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동인과 권력관계를 정립하는 수단은 강력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 심리적인 기술인 유혹이라고 본다. 그가 유혹을‘기술’이라는 표현까지 하며 말하고픈 요지는 아마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 게임'이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 듯하다. 이러한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는 유혹의 유형을 크게 성적인 유혹과 경영ㆍ처세적인 유혹, 그리고 정치적인 유혹으로 나누고, 이 3가지 유혹의 유형에 부합하는 유혹자들의 성공한 전략과 이와 관련한 사상가들의 유혹에 관한 개념들을 풀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유혹자들, 즉 카사노바, 마릴린 먼로, 클레오파트라, 존 F. 케네디 등의 기록과 행적을 바탕으로 아이디어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내용의 함의는 사랑과 권력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깊은 의미를 두거나, 혹은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생은 단순한 것 같다. 타고난 종족보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이며 배우자를 찾고 짝짓기에 나선다. 일거리를 찾고, 가정을 꾸며 자신의 아성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 나타나는 적대적인 상호갈등과 위계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남들보다 우위에서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욕과 명예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욕망은 죽기 전까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집요하게 지배한다. 이러한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유전인자를 후대에게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다가 죽는것이 인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 않은가? 사랑과 권력은 쟁취하여야 하는 것이다. 유혹이라는 전략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다.
로버트 그린이 말하는‘성적인 유혹’은 말 그대로 남녀간의 유혹을 말한다. 저자는 카사노바와 마릴린 먼로의 예를 들며, 사랑이란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룬 고도의 심리전으로 얻어지는 결과라고 하였다.‘경영ㆍ처세적인 유혹’은 기업의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 그리고 개개인의 홍보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협상과 설득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개념인 유혹을 경영과 처세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인 유혹’은 정치가들이 대중을 사로잡을 때에 뛰어난 정책 제시보다는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뛰어난 유혹의 기술, 즉 심리적인 방법을 구사하여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뛰어난 웅변술로 정치력을 발휘한 나폴레옹과 루즈벨트 대통령, 겸손한 처신으로 2인자의 자리를 잘 지킨 중국의 매력적인 정치가 주은래 등은 대표적인 유혹자들이다. 이처럼 정치가들조차 유혹의 기술을 구사했다는 점은 유혹이 권력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며, 어떤 정치 캠페인도 유혹을 배제하고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유혹자가 될것인가? 아님 유혹자의 희생자가 될것인가 생각하니 아무래도 유혹자가 되는게 좋을 것 같다. 단, 정말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유혹자가 나타난다면 필자는 기꺼이 유혹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으리라. 그가 팜므 파탈이면 더욱 좋고, 인간적인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세련된 경영인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고 보니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유혹자는 현실적인 통합형 정치적 감각과 신뢰심을 구비한, 그러면서도 때 묻지 않은 겸손한 사람인 것 같다. 허걱! 필자의 욕심이 너무 크다. 유혹의 기술! 일독을 권한다.
(김우/경기일보 천자춘추: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