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몇 명의 개싸움
어지간한 영화팬이라면 ‘어둠속의 댄서’를 보았을 것이다. 도그빌은 바로 이 영화를 만든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이다. 늘 그러하듯 그의 영화는 많은 논란을 가져온다. 이 영화도 별반 다를바 없다.
영화의 배경은 로키산맥 인근의 한 마을이다. 미국의 대공황기때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성에 대한 접근을 그린 영화이다.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흥미있는 소재를 미리 알린다.
일단 니콜 키드만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작품성이 보장된다는 예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가 연극적인 세트에서 진행되는 무대영화라는 점이 이채롭다. 영화는 희게 색칠된 선으로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과 도로를 표시한 최소한의 무대장치위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별로 좋지 않은 정보인데 이야기가 장장 세 시간에 걸쳐서 전개되는 지루한 영화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로키 산맥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 마을 도그빌은 마을이름도 묘하다. 이곳에는 기독교적 도덕관으로 무장한 보수적인 색채를 띈 10여 명의 주민이 평온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도망자 신분의 여인이 숨어든다. 작가 지망생인 톰은 그레이스가 갱단에 쫓기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마을 회의를 소집하여 그레이스를 은신시키고 여러 가지로 도와준다. 처음에는 마을주민들도 이 이방인을 경계하다가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는 쓸모 많은 그레이스의 노동력과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2주동안 그레이스의 행동을 지켜본 뒤 열심히 일하는 그레이스를 보고 공동체의 임시 일원으로 인정하고 숨겨주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안되 그레이스를 찾는 벽보가 나붙고, 현상금까지 걸리면서 사람들은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레이스를 신고한다고 협박하면서 그녀를 착취하고 성적으로 능욕한다. 결국은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압권은 단연 톰이다. 처음부터 그레이스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위로해주던 톰은 결국에는 앞장서서 그녀를 신고하고 팔아넘기는 장본인이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와 도그빌 주민들과의 관계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주시하게 만든다.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공동체에 편입된 이방인, 그 여인의 희생과 수난, 그리고 표출되는 변화무쌍한 다양한 인간성,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극적인 반전은 시청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통쾌하고, 그러나 뒤끝이 깔끔하지 않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예상 못하는 결말을 보기 위해서라도 3시간쯤은 견뎌야한다고 생각한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칸에서 ‘도그빌’을 보던 유럽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즐거워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그빌의 초반 설정이 미국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묘사한 줄 알았는데 실은 미국적 사고방식과 그 위선을 통쾌하게 반전시키는 장치가 정교하게 설치되었음을 나중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하나!
그레이스가 마을 사람들이 주는 온갖 수모를 마치 순교자가 그러하듯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 들이는데 과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하고 궁금하였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힘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아닐까 한다. 그 힘은 그레이스가 원하면 언제든지 정의의 사자로 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힘없는 정의는 굴종이요 힘있는 폭력은 정의이다.
‘까불면 너희들은 언제든지 개처럼 죽을수 있어’라는 든든한 심리적 배경이 있으니 그레이스의 수난성 겸손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힘이 있어도 겸손의 모양조차 갖추지 못하는 우리를 생각한다면 나는 이쯤에서 입을 다물어야겠다.
나중에 차 안에서 그녀가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원천을 짐작할 수 있는 듯하다. 극단적인 선택의 갈래에서 그레이스는 “인간들은 본디 나약하니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관용의 입장을 취한다. 반면에 갱단의 두목인 아버지는 “잘못된 행동에는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을 내세워 대립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도그빌이라는 마을이름답게, 개를 먼저 본보기로 죽여 벽에 매달아놓자고 제의한다. 나중에 그레이스는 그래봤자 그들은 겁만 집어먹을 뿐 실제로 마을이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결국은 모두가 학살당하는 극단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와중에 그레이스가 갖는 마을 주민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인 관점을 ‘오만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아버지는 비교적 지성적으로 보이니 이것을 보고 나는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론으로 들어간다. 영화가 주는 교훈은 개를 장작으로 두들겨 패듯이 극명하다. 그리고 분명하다. 그러나 그 뒤끝은 개운하지 않고 씁쓸하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내면이 3시간동안 희롱당하듯 파헤쳐진 느낌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