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 세검정도(謙齋鄭敾筆洗劒亭圖)
겸재 정선 /‘해인사도’
송파나루 / 김윤겸(金允謙, 1711년~1775년)
금강산 만폭동 진주담 / 김윤겸(金允謙, 1711년~1775년) 좌우로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 사람에게 부치거나 불을 일으킬 때 사용한다. 크게 접었다 폈다 하는 접부채(쥘부채)와 평평한 둥글부채(방구부채)로 나뉜다. 일본어에서 쥘부채는 센스(扇子 せんす) 혹은 오오기(おうぎ), 둥글부채는 우치와(うちわ 団扇)라 하여 아예 형태소가 딴판이다. 둥글부채는 고대 중국에서 선(扇)이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접부채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에서 만들어져 11세기 중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갔다는 주장과 일본에서 6~9세기 사이에 만들어져 고려를 매개로 해 원나라에까지 퍼져나갔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발명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고려 발명설은 송나라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에 고려사신이 접부채를 썼었다는 기록(11세기)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11세기 고려에 접부채가 존재했다는 근거는 되어도 고려에서 발명했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또한 일본 기록을 못믿는다 하여도 중국의 역사서인 송사에도 일본 승려가 송나라 조정에 접부채를 바쳤다는 앞선 기록(988년)이 있다. 각종 기록을 배제하더라도 유물로써 가장 오래된 접부채가 일본에 있으며(877년 제작), 헤이안시대 접부채 양식의 변화(소재,디자인,부채살 갯수 변화 등)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접부채 유물이 있다.
이렇게 각종 기록과 유물로써 쉽게 입증되기에 해외에선 접부채를 일본에서 발명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조차 접부채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라고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접부채 자체의 제작기법은 조선이 제일 발달했는데, 이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대나무의 자생지가 북방한계선에 위치해 대나무가 무르지 않고 단단한 덕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서는 전주와 나주에서 만든 부채가 질이 좋다는 기록이 있다. 한손으로 쥐는 작은 부채의 경우, 유럽권에는 15~16세기쯤 중국으로부터 소개되었다. 주로 쥘부채가 쓰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기능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나 의식용으로도 널리 쓰였으며,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여 그 형태와 종류, 장식 등이 매우 다양하다. 과거에는 신분별로 사용할 수 있는 부채가 달랐다. 별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벡실로이드'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부채 겸 깃발의 역할을 했다. 예전에 글 좀 쓰거나 그림 좀 그린다 하는 선비들은 부채에 글이나 그림을 써놓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유명하신 분이 몇자 적어두거나 그림 좀 그려놓으면 가격이 무시무시하게 뛰었다고 한다.[3] 특히 젊고 유명한 사람이 그리거나 쓰면 젊은 여자들이 천금을 들여서라도 사려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경문을 적어놓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장식을 더하고, 그렇게 치장된 부채 자체가 장식으로 걸리기도 한다. 현대에도 전통 서화뿐만 아니라 캘리그래피로도 손글씨와 간단한 그림을 넣어 장식용이나 선물용 등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몇몇 필방들에서는 서화용품들과 함께 부채를 판매하기도 한다.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는 부채추는 향주머니나 약주머니 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철선이라는 철제로 된 부채도 있었다. 이건 바람을 일으키기보다는 호신용 무구다. 제대로 후려치면 쇠몽둥이. 일본에서는 크게 만들어 군대 표식으로도 썼다. 일본에서는 비살상 공격 무기로 쓰인다(…) 만담의 일종으로, 누군가가 바보짓(보케)을 하면 부채로 뒤통수(다른 부위는 안된다)를 때리며 화내는 식(츳코미). 이때 쓰는 부채는 하리센이라고 한다. 또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쥘부채를 펼때마다 각종 문구가 나오는 깨알같은 개그도 나온다. 이걸 이용해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여럿이 우아하게 춤을 추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영미권에서 fan dance는 큰 부채로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스트립 댄스와 비슷한 걸 생각한다. 또한 판소리에서는 접부채가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부채가 빠진 판소리는 소리가 아닐 정도로 소리꾼은 소리를 할 때 부채를 다양하게 이용한다. 소리꾼은 이 부채를 폈다, 접었다, 쳤다 등등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만능의 무대장치로도 이용한다. 예를 들면 심봉사의 지팡이도 되었다가, 춘향이한테 얼굴 안보여주려고 가리는 이도령의 얼굴 가리개도 되었다가, 흥부가 박을 켤때 톱도 되었다가, 놀부 마누라 밥주걱도 되었다가... 완창 할 때 중간에 너무 힘들면 부채 쫙 펴서 부채를 부치며 한숨 쉬어가는 눙을 치기도 한다. 서양 사극에서는 귀부인들이 이걸 들고 등장하는 모습이 클리셰다. 부채를 부친다던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등이 대표적. 중세시대에는 귀족 여성이 외간남자와 함부로 대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채를 가지고 하는 행동에 의미를 담아 대화하던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참고로 유럽의 경우 기후 특성상 지중해성 기후인 남유럽을 제외하면 여름철 기후가 한국과 중국, 일본처럼 덥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아 남성보다 여성들의 엑세사리의 일부로 분류되었다. 참고로 부채는 부치면 부칠수록 더워진다. 물론 당장은 시원할진 몰라도 부채를 부치면서 손목이나 팔을 좌우로 휘젓는 왕복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점점 더 더워진다. 사실 이건 손에 맞지 않는 부채를 써서 그렇다. 제대로 된 부채를 부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합죽선이라든가... 때문에 플러그만 꽂아주면 알아서 쌩쌩 돌아가므로 언제든 제값을 하는 선풍기와는 달리, 수동으로 열심히 부쳐야만 하는 부채는 날씨에 따라 성능이 왔다갔다 한다. 공기마저 뜨거운 한여름에는 아무리 휘저어 봤자 더운 바람만 일으킬 뿐이라서 점점 더 더워지기만 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쯤이나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조금만 부쳐도 굉장히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90년대 교육만화나 어린이 프로에선 전기절약의 교훈을 알려주려고 정말이지 엄청나게 빨아줬다. 아이들이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면 선생님이 전기절약을 이야기하며 더 시원한게 있다며 부채를 주는 패턴인데, 이런 것에 흡수를 잘하는 당시 어린 독자(시청자)들도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불이 있는 곳에 부채질을 하면 산소가 공급되어 불이 더욱 거세지므로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말이 생겼고, 그 후로 부채질은 어떤 사건이 더욱 커지도록 조장하는 것을 나타내는 관용구가 되었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煽る(부채질하다)라는 동사(특히 인터넷에서)가 선동(煽動), 부추김을 의미하고 있다. 사실 선동이란 단어 자체가 부채 선 자에 움직일 동 자를 쓴다. 창작물에서는 좀 지위가 높다거나 책략에 능한 사람들이 꼭 이걸 펴서 입가를 가리고 있다. "오~호호"라는 식으로 웃을 때나, 반대로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때 이걸 펴서 입을 가리면 싱크로율이 아주 만점. 쌍팔년도 개그중엔 싸구려 부채는 부채를 고정하고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서 써야 한다는 개그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해서 절대 시원해지진 않지만... 원래 지독한 구두쇠가 부채를 흔들면 조금씩 부채가 닳는데 그게 아까워서 여름에 더울 때 저렇게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