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을 찾는다
대원5구 명등 도안
반장이 점심 시간에 도시락 먹은 후 나가지 말고 교실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2학년 형들의 명령이란다.
점심을 먹고난 후 2학년 형들이 여러차례 교실에 들어와서 태권도반, 유도반, 영어반, 등등 서클의 홍보를 하고 신청자들을 모집한다. 종교 써클인 기독교반, 천주교반, 홍보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불교반 홍보가 시작되어 나는 불교반에 약간의 관심을 보여서 질문을 한다.
종교반은 모임 장소가 외부에서 다른 학교와 함께 하는 모임이라는 말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청소년의 중요 관심사항인 질문을 한다. “ 여학생들도 있나요?” 오매나~ 있단다. 토요일 오후에 소재동에서 모임(법회)가 있단다.
“야~ 우리 한번 가볼까?” “그래~ 가보자.” 친구와 나는 불교반에 가입하기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시간과 장소 안내를 받는다.
다른 종교반에도 여학생들이 온다는데, 불교반에 관심을 더 갖은 것은 어머니가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한켠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와 동질감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토요일 학교를 파하고 소재동 허름한 건물에 친구와 함께 도착한다. 시작 시간이 되어 누추한 건물안에 들어가니 30여명 정도 되는 남녀학생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 있다. 친구와 나는 한쪽 구석에 않아서 두리번거리며 예쁜 여학생이 어디에 있는지 부지런히 눈을 돌린다.
법회가 시작된다. 목탁치는 학생의 목탁소리에 따라 합장하고 절하면서 노래를 한다. 삼귀의, 찬불가, 청법가 등이다. 우리는 엉거주춤 따라하면서 어색한 마음과 함께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한다. 청법가가 끝나고 모두 자리에 앉고, 중년의 아저씨가 설법을 한다고 칠판 앞에 선다. “이건 또 뭐~ 이런 거 하지?” 하면서 시쿤둥한 표정으로 그 아저씨를 바라본다.
그 아저씨가 법사라고 한다.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 설법을 한다. 연기설이라 한다. “어? 이게 뭐지?” 나는 점점 그 법사의 설법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아니~ 아주 과학적이잖아~ 논리가 정연해서 모순이 없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아주 간단한 이 논리에 모순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머무르자. “어? 불교가 이런거였어?” 나는 점점 설법에 심취되어 애초의 관심 사항이 여학생에서 불교교리로 변해버린다. 머릿속이 온통 불교교리에 대한 궁굼증으로 꽉차 버린다.
법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기 전에 다행이 주머니에 약간의 돈이 있어 곧바로 책방으로 향한다. 300쪽 정도 되는 <불교의 기초교리>를 산다.
집에 돌아온 나는 저녁을 먹고 사온 책을 읽는다.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그럴듯한 논리가 마음에 들고, 신비로운 생각마저 들면서 밤 늦게 까지 책을 다 읽는다. 사성제, 연기설, 삼법인 등등 경이로움 그 자체다. 부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흥분이 되어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고등학교 입학 전 외사촌 형에게서 빌려다 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철학책을 보면서 동서양 철학이 심오한 것 같기는 했는데,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의문이 있었는데, 불교 교리는 논리가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에 너무나 흥분이 되었다.
불교학생회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여학생은 관심 밖이었고, 오로지 설법시간이 기다려진다.
기회가 되는 대로 불교교리를 탐구하면서 불교학생회도 졸업을 하게 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을 하게 되고, 그 대학에 있는 불교학생회에 가입한다.
선후배들의 권유에 이끌려 봉익동에 있는 대각사를 가게 된다. 대각사에 들어가는 순간 마당부터 사람이 꽉 차서 지하에 있는 법당에 겨우 들어가게 된다.
설법 시간이 되어 법상쪽을 바라보는 순간, “어? 사람의 모습으로 저럴 수가 있을까? 에이 조명발이겠지~” 대학생다운 의심을 한다.
법회가 끝나고 우리 일행과 함께 처음 온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그리고 설법하신 그 스님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아~ 조명발이 아니었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사람이 수행을 통하여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구나. 아 광덕스님~
군대 군법당에 가면서 월간 불광 권두언를 보면서 매월 불광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군법당을 매주 찾는다.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이 꿈틀댄다. 가슴이 쿵쾅 거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보살과 함께 대각사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일요일 지금의 석촌동 불광사를 찾아왔으나, 보살만 불광사를 다니게 된다. 아이들이 어린이 법회에도 참여하게 되고~
시간이 10년 정도 흐르고, 일요법회에 나와서 큰스님 법문을 듣는 호강을 누리게 된다. 큰스님은 변함없이 밝은 광채를 내고 계시고, 법문은 대중들을 매료시킨다.
99년 2월 큰스님 열반 소식에 망연자실하고, 큰스님 공덕비 건립행사에 다녀오면서 법회사회도 보고 하면서 10여년이 또 흐르고, 무리를 일으키게 될 스님이 못마땅해서 불광사를 떠나고~
옛 도반으로부터 무리를 일으킨 스님이 쫒겨났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다시 돌아온 불광~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스님이 일반인보다 더 계율을 안지키는 것 같다. 거짓말을 너무 잘 한다>
<**이 왕인거 같다>
<***이 공양주? 마누라지~>
<조계종이 없어져야 한다>
<시끄러워서 불광사 나가기 싫다>
<박홍우가 그만 두면 정상화된다>
<스님에게 그러면 안된다.>
<전기료를 내면서 절을 사용해라>
<보광당 사용허가 받고 사용해라>
<박홍우가 절을 차지하려고 한다>
<보광당 폐쇄>
<혜담 스님 거처에서 유튜브 법회 녹화>
<용역동원 법회방해>
<핸드 스피커 사용 큰 소음으로 법회 방해>
<코로나 방역 핑계로 출입 봉쇄>
<재정 투명화>
지난 4년여 동안 불광에서 있었던 사건과 사욕에 사로잡힌 이들의 말을 포함한 무성했던 여러 말들이다.
보광당에서 법회를 못보게 되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방송시설을 사용할 수 없어 다른 공간을 법회장소로 사용하려면 새로운 방송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법회를 볼 수 없어 유튜브로 법회를 보게 하기 위해 소수인원이 법회 녹화도 해야 한다.
부랴부랴 휴대용 조그만 엠프를 구입해서 공양간에서 법회를 보고, 대웅전, 현관, 현관 앞, 혜담스님 거처에서 법회를 이어간다. 어려움이 있으면 이를 극복할 힘이 생기는지 우리 구법회 거사가 방송장비를 취급해 주고, 유튜브 방송용 녹화 방송도 해주어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법회를 이어간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불광 정상화.
4년여를 이렇게 불광 정상화를 위해서 온갖 불편을 감수하는 것인지 문득 반문할 때도 있다.
일반적인 바램이 무엇일까?
나만이 아닌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이, 우선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리라. 활동하기 편한 사회적 인프라, 정의로운 사회, 올바른 가르침이 있는 사회를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이 공유하기를 바랄 것이며, 후손들에게도 그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사회적 인프라와 정의로운 사회는 국가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지만 올바른 가르침은 국가가 책임지기에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뒤따른다.
올바른 가르침,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가르치는 광덕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넓게 공유되어야 하고 후손들에게 반듯이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팔아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스님들로 가득 찬 우리나라 불교의 현실을 이번 불광 사태를 통하여 너무나 분명하게 보게 된다.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이 사회에 넓게 공유하기 위해서는 불광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불광정상화의 기준은 사찰의 재정투명화, 청정한 스님 지키기이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불광법회 회칙을 스님과 재가자가 함께 잘 지키는 것이다.
<밝은 얼굴 표정들로 가득찬 불광>
<큰스님의 약속이 잘 지켜지는 불광>
<언제나 즐거운 불광>
<아이들과 함께 와서 즐겁게 법회 보고 가는 불광>
<청장년이 넘쳐나는 불광>
<자꾸만 가고 싶은 불광>
이런 불광은 반듯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