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14
브릭스(BRICS)는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의 머리글자를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브릭스는 2018년 기준, 인구 31.6억명(세계 인구의 41.6%), 세계 GDP 비중 32.6%, 세계 무역 20%, 외환보유액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동맹으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브릭스 경제 규모는 2000년 당시만 해도 세계 GDP의 8% 수준이었으나 2018년 32.6%로 급성장했다.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 짐 오닐(Jim O’Neil)은 이들이 2050년에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집단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설을 발표했다.
13개국 추가 참여한 브릭스 정상회의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를 확대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선 독자 경제권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가 이번 2022년 브릭스 정상회의이다.
시진핑이 주도한 2022년 베이징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가 지난 6월 23~25일 3일간에 걸쳐 개최됐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기존 5개국 이외에 브릭스에 동조하는 13개국이 추가로 참여했다. 13개 국가는 다음과 같았다. 이란, 아르헨티나, 알제리, 이집트,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세네갈,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피지, 말레이시아, 태국.
이 중 이란과 아르헨티나는 이미 브릭스 합류를 위해 가입 신청을 완료한 상태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튀르키예(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도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모두 브릭스에 동참할 경우 브릭스 인구와 경제 규모는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브릭스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에 맞서 가장 강력한 경제동맹체로 재탄생되는 모양새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이자 중동의 강자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브릭스 회의에 참석해 이목을 끌고 있다. 과거 미국의 맹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왕정의 인권 침해 문제, 즉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대한 책임 문제를 제기하면서 양국 관계에 틈이 벌어졌다. 사우디가 미국에 등을 돌리고 브릭스에 참여할 경우 향후 미국의 중동 정책과 에너지 정책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바이든이 자존심을 굽히고 급히 찾아간 이유이다. 바이든은 지난 7월 15일 사우디를 직접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관계 복원 및 원유 증산 등 소기의 방문 목적을 달성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6월 23~25일 열린 베이징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기존 회원국 외에 13개국이 추가로 참여했다. / 뉴시스
인도의 양다리 외교도 변수
인도의 양다리 외교도 변수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 회원국이자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도 참여해 중국 견제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동시에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서방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 원유를 싼 가격에 대량 수입해 이익을 취하고 있다. 동시에 무기의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정책을 고수하는 나라이다. 이번에도 브릭스와 서방 세계 사이에서 철저하게 실리 외교를 추구해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 참가하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도 이번 브릭스 플러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들도 미국과 브릭스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지향하며 양다리를 걸치는 국가들이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이전부터 중국 관영 매체들이 미국에 맞서 “브릭스 국제결제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한 가운데, 푸틴 역시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브릭스의 자급자족 독자 경제권 추진을 제의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브릭스 국제결제시스템과 기축통화’를 만들자고 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의기투합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루블화가 퇴출되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미국을 겨냥해 “세계경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국제 금융·화폐 시스템의 주도적 지위를 이용하는 자의적 제재는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재앙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며 브릭스 회원국 간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구축 추진에 동조했다. 이로써 지난 6월 23일 발표된 브릭스 정상들의 ‘베이징 선언문’에서 회원국 중앙은행들의 지급 결제 부문 협력 강화와 금융 분야에서 정보보안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브릭스의 독자적인 경제권 형성과 금융시스템 통합을 위해서는 단일결제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의 구축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브릭스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상이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구축은 단기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화무역결제망에 참여 유도 가능성
막대한 비용과 시간 소요, 브릭스 회원국 간 입장 차이, 유로존 결제시스템 통합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구축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회원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상업은행들로 하여금 중국의 위안화무역결제망(CIPS)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은행들이 자국의 루블화 결제 시스템 ‘SPFS’ 이외에 중국의 국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인 ‘CIPS’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두 결제 시스템은 미국이 2012년 이란을 스위프트 시스템에서 차단시키자, 이에 놀란 러시아(2014년)와 중국(2015년)이 잇달아 만들어 독자적으로 사용하며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인도 역시 러시아와의 석유 무역에서 위안화를 기준통화로 하는 인·러 결제 메커니즘을 사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2015년 출범 당시 CIPS 참여 기관은 중국은행 11곳과 도이체방크, HSBC, BNP파리바 등 외국은행 8곳이었다. 현재 참여 기관은 103개 국가의 1280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거래 건수와 금액은 각각 약 334만건, 90조위안에 이른다.
이와 관련 러시아 대외경제은행(VEB)의 세르게이 스토르차크 수석은 “브릭스 회원국은 독자적인 국제 금융시스템 설립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그것이 중국 화폐에 기초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화폐를 사용할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CIPS 시스템에 인민은행의 디지털위안화를 연동시켜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은행 디지털위안화는 은행 계좌 없이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법정화폐는 은행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서만 유통된다. 반면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보유한 돈을 전자지갑을 통해 서로 거래하거나 개인이 민간은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중앙은행에 예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제 및 송금 과정이 단순해지고 거래 비용이 절감되어 금융 효율이 높아진다.
중국 인민은행 디지털위안화는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도 휴대폰끼리 ‘부딪치기’ 기능만으로도 결제와 거래가 가능하다. 때문에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의 정식 발행에 가장 근접한 중국이 브릭스 회원국 모두에서 통용될 수 있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개발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CIPS는 이번 브릭스 합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세를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세계의 루블화 제재는 그다지 소용이 없음이 드러났다. 전쟁 초기에는 루블화가 급락했으나 이후 서서히 강세로 돌아섰다.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루블화 수요가 탄탄하다는 증거이다.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디지털루블 도입도 가속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0년 10월 중앙은행 주도로 디지털루블 계획을 공개했다. 디지털루블이 상용화되면 카드 결제와 유사하게 디지털 지갑을 통해 루블로 해외에서 결제가 가능하게 된다.
▲ 러시아가 2014년 크름반도 병합 이후 비자와 마스터카드 서비스가 중단되자 자체 개발한 미르 카드. / rt.com
비자·마스터카드 대체하는 러시아 ‘미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비자·마스터카드 서비스도 중단됐다.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여 러시아는 자체 개발한 소액결제 시스템 ‘미르(Mir)’를 운영 중이다.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이후 2014년 4월 비자와 마스터카드 서비스가 일시 중단된 것을 계기로 러시아는 이듬해 12월 미르 카드 발급을 시작했다. 2021년 12월 기준 미르 카드 점유율은 32.3%다.
2020년 말 기준 러시아에는 대략 1억9700만개의 마스터카드 또는 비자카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카드는 러시아의 지불 처리를 위해 미국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 러시아 중앙은행이 감독하는 자체 개발 시스템인 NSPK(National Payment Card System)를 사용했다. 미르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5년 출시 이후 1억개 이상의 미르 카드가 발행되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 지역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직후 러시아 은행들과 제휴한 중국의 유니온페이 카드 수요가 급증했다. 2022년 초 기준 유니온페이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국가는 약 180개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내에서는 95% 이상의 매장에서 유니온페이 사용이 가능하며 90% 이상의 ATM에서 현금 인출이 가능하다. 터키와 인도도 최근 몇 년 동안에 자국 은행들의 비자카드·마스터카드 이용 차단을 위해 자체 네트워크 구축을 시작했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를 계기로 세계 주요 기축통화의 분권화와 다양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홍익희 /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