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방 창섭 입니다 Aaron Bang으로 불리기도 했고 CSB로 작곡도 합니다 공부는 못하는 편이였고 50대 중반인 지금에서 평가한다면 인생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생활 했고 군 제대후 바로 미국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제가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Yaphank 는 제 가 가장 오래 지낸 곳의 지명 입니다 이작은 마을의 거주한국인은 한가정 정도이고 저희가 나올때 다른 한가정이 이주 하셔서 아마 지금도 한가정 정도라 사료됩니다
저는 협성 신학 종교음악과에 1회로 입학했고 졸업 사진은 찍었으나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사경고 3회로 제적 당했습니다 즉 고졸이죠 군 제대후 재입학을 원했으나 거절 당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혼자 만의 관심 분야를 조금씩 완성해 나가려 했습니다
미리 고백하고 설명 하지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진실된 사람이 아니였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편법을 사용 하기도 했었고
2023년의 도덕적 기준에서 본다면 많이 부족한 삶을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부터의 이야기는 진리가 아님니다
과정이고 신앙의 성장이고 나의 최선의 노력이고 양심의 소리 입니다
노래를 잘 못하는 저같은 사람은 찬양을 부르면 안되나요?
노래 실력이 월등한 사람들만 성가대해야 하나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만 예배시간에 불러야 하나요?
지금 예배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예배라 생각 하시나요?
그럼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생각 하면 할 수록 함정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요?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예수님 승천후 제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모임을 가지며 시작된 집회가 예수님의 성만찬의 명령을 수행하며 우리의 예배가 시작 되었다' 까지가 너무 힘들었어요
천주교는 이단이다 30년전 우리교회에서는 지금의 깻잎논쟁 같이 흔한 이야기 거리였고 실제로 중고등부 선생님들 중에서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분도 계셨어요
이당시 "할렐루야","알렐루야" 나"찬양","찬미" "하나님","하느님"등의 용어 사용이 두 계파간의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구분 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1991년 입대해서 1994년 제대후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맨인블랙의 숨겨진 우주선이 있는 N Y Flushing Medow Park 입구에 있었던 순복음교회를 지휘하다가 그만두고 퀸스 중앙 감리교회라는 미감리교단의 한국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당시 일하면서 야간 커뮤니티칼리지 랭귀지 스쿨을 다니고 있었는데 졸음 운전을 경험했고 일 학교 지휘중 하나를 그만 두어야 할 상황으로 몰렸다 생각 했는데 이때 부터 지휘를 때려치는 못됫 습관이 생겼죠 이때 왜 나는 이렇게 생각 했을까 그냥 기도하면서 견딜 힘과 지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나중에 하기도 했죠(지금은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 하심 이라 생각하기는 함)
다시 돌아가서 나중에 다시 언급 되어지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참후 퀸스 중앙 감리교회에서 만난 류홍장 목사님 이란 분과 한 비건 식당에서의 대화로 나는 종교 개혁 이전의 캐톨릭 음악으로의 접근에 마음을 정리하는 계기가 됨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서울에서 열린 세계 감리교 회의에서 천주교와 감리교는 서로 같은 하나님을 믿는것에 동의하며 앞으로 화합에 노력 하겠다는 내용으로 나의 심적 부담이 무지에서 온 것이고 좀더 공부하며 살겠다는 다짐 뭐 이런것이죠
그래서 넌 지금 무엇을 하고싶냐 물으시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우리 옛날엔 어떤 음악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렸을지 한번 재현해보고 싶어요"
다음 글에서는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물론 결론은 리마예전 일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