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택추천 0조회 023.06.08 18:52댓글 0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옛날엔 화장실은 완전 푸세식이었다. 세월 좋은 지금에 와서야 점잖게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뒷간으로 통했다. 생각만 해도 똥냄새 풀풀 풍기는 뒷간은 늘 본채와 멀찍이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다른 집들은 싸립문 옆이나 반대편 담장에 위치해 있었는데 우리 집 뒷간은 유별나게도 싸립문 밖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어 사용하기가 불편했다. 뒷간을 갈 땐 무서웠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초로 세우고 난 후 일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똥 눌 때는 더 불편했다. 늘 똥물로 가득차 있어 똥 한덩이만 떨어져도 똥물이 튀어 올라 엉덩이를 번쩍 치켜들어야 했다. 동작이 잽싼 사람들은 그 위기를 모면했지만 동작이 느리면 쏜살같이 튀어 오르는 똥물의 세례를 막지는 못했다.
이 순간에 여자들은 어떻게 할까. 그 중에서도 며느리들이라면 이 다급한 순간을 어떻게 피할까. 뒷간에서 혼자 볼 일을 보지만 얌전하고 조신한 며느리들은 똥물이 튀어 올라도 궁둥이를 번쩍 쳐들기가 몹시 민망했을 것이다. 잘못하면 똥물이 며느리 엉덩이에 튀어 올라 엉망이 될 것이고 똥물을 닦느라 오만 인상을 다 찌푸릴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연한 화장지라도 있다면 속 시원히 잘 닦이겠지만 두꺼운 공책의 낱장이나 볏집으로 어떻게 잘 닦이길 바라겠는가.
게다가 그것들조차 다 떨어졌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닐 것이다. 멀찍이 떨어진 뒷간에서 큰소리를 친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뒤를 닦지 않고 나간다는 것도 찝찝해 우왕좌왕 하다가 “아이고 어째, 내 밑닥개. 내 밑닥개” 하고 울먹였을지도 모른다.
허황된 것 같지만 이런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며느리밑씻개”란 꽃 이름이 생각났다. 많고 많은 꽃 이름 중에서도 왜 하필 며느리 밑씻개란 이름을 붙였을까. 원래 꽃이름은 예쁘고 꽃향기 물씬 풍기는 그런 이름이라야 하는데 듣기에도 거북한 며느리 밑씻개란 이름을 붙인 것이 궁금했다. 그렇지만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개 그 꽃의 모양이나 빛깔, 향기 등 꽃의 특징을 보고 이름을 달지만 어떤 꽃들은 황당한 일로 이름이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이름 붙은 며느리밑씻개다. 며느리 밑씻개의 줄기엔 갈고리 같은 까실까실한 가시가 매달려 있다. 이 가시가 말썽을 피울 줄은 누가 알았을까.
어느 날 한창 밭을 매던 시어머니가 밭고랑에 앉아 뒤를 보게 되었던 모양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밭일을 하다 갑자기 뒤가 마려우면 말끔히 해결하기도 드문 경우가 많다. 밭고랑에 소복이 난 풀을 한줌 뜯거나 넓적한 잎을 포개 닦기도 하는데 아마 이 시어머니도 밭고랑 풀을 한줌 뜯어 해결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뒤를 닦으려고 하니 뭔가 따끔한 것이 맨살을 긁어대었다. 놀란 시어머니는 “이왕이면 며느리 똥 눌 때나 걸려들 일이지 왜 하필이면 이 때야” 했단다.
며느리를 들먹거리는 것을 보면 아마 고부간의 갈등이 대단했던가 보다. 시어머니가 그러면 시아버지라도 며느리 등을 톡톡 두드리며 용기를 돋아줘야 하는데 시아버지도 시어머니 못지 않았나 보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뒷간에 갈 때마다 까실한 가시가 달린 풀로 뒤를 닦으라고 윽박을 질렀을까. 요즘에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칫밥 먹는 세상이 되었지만 30년 전만 해도 며느리는 늘 얄궂은 시어머니들의 구박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서 유독 며느리란 이름을 붙인 풀이 슬픈 사연을 띠게 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며느리배꼽만 해도 그렇다. 얌전하고 조신한 며느리 배꼽을 언제 보았다고 배꼽을 물고 늘어질까. 밥이 익었나 먼저 밥맛을 보려다 시어미에게 맞아 죽은 전설을 담고 있는 며느리밥풀꽃도 애틋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당시 시어머니로부터 학대당하는 며느리의 삶이 들어있는 것 같아 더욱 슬프고 구성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