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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私를 버리고 公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
흔히 故박대통령을 폄하해야만 자기들의 체면이 유지되는 줄만 아는 자들은 박대통령을 일컬어 "기회주의자"였다고 말한다.
세상의 어느 기회주의자가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소신을 관철시키든가? 또,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며 일신의 안락을 노리는 기회주의자가 있을 수 있는가?
박정희, 그는 약관 23살의 나이에,
일제 군국주의가 극에 달한 싯점, 무력 탄압과 중국/만주지방의 득세로 인해 쇠약해진 우리 독립군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목숨을 담보로 적의 군관학교로 진학, 만군장교로 웅지를 펴서 독립 후 이 나라를 위해 적의 병법을 배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역을 하겠다는 각오로 "호랑이 소굴에 뛰어들었다"
해방후 중도좌파였던 건준의 여운형계를 주목했던 박정희가 건준의 해체와 함께, 남로당에 연루 되기도 했으나 목숨이 경각에 걸린 순간에도 의연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그 엄했던 반공의 시기에도 별 탈 없이 목숨을 건지게 된다.
5.16군사혁명을 일으킬 당시, "목숨을 걸고, 정치/경제적으로 후진했던 이 나라에서 창궐했던 용공영세중립주의자 내지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에 위기를 느껴 거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일생은 "내 한 목숨 기꺼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것을 누차 강조한 데서 기회주의자는 커녕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영웅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그의 말대로 대통령 재임 중에 심복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겠다는 초지일관된 모습으로 일생을 바친 분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그가 진정으로 친일(親日)해서 출세할 마음이 있었다면, 만주까지 갈 필요도 없이 국내에서 일제에 빌붙어 출세를 노려 법관, 관리, 경찰 등에 투신해서 일제의 권력에 아부하며
일신의 안락을 꾀하며, 보다 편하게 출세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주라는 타국으로 간 것이나. 국내에서 핍박받는 민족에게 군림하며 출세를 할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절대로 그가 친일분자가 아니었음을 간단히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군인이 되어 적을 알고, 독립 후에 올 해방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군인이 되겠다는 신념에서 만주국 군관학교의 길을 택한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그는 5천년 민족 역사에서 굶주림을 해결한 유일한 지도자 였다.
우리는 먹고 살만해 진 후, 해방후 자유당 민주당정권을 거치는 기간의 우리 수준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이 불과 80달러 전후였다는 점을 쉽게 망각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 그가 서거한 1979년경에는 국민소득은 22배 증가한 1800달러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또,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전개된 개간, 간척, 종자개량, 농기구 기계화, 심경, 농지개량 등의 정책에 힘입어 외국의 원조와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부족식량을 충당했던 사정이 '식량의 자급자족'의 꿈을 실현하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정치적소신과 치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한 역사적 사실은 이를 잘 모르는 신세대에게 진실을 정확하게 알려 박 대통령의 위업을 제대로 인식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3. 중화학공업의 육성은 오늘날 우리경제의 생명줄이 되었다.
1974년과 1978에 겪었던 두 차례의 유류파동은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치닫게 되며, 막대한 외자유치로 치명적인 위기를 맞게되는 우리 경제였으나 과감한 뱃팅으로 더욱 투자를 활성화 시켜 경제를 성공시킴으로써 특출한 국가지도자의 능력과 선견지명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4. 자주국방의 기반을 조성했다.
익히 잘알려진 대로 우리의 중화학공업체제는 위기시 방위물자생산, 평시에는 산업기계 생산이라는 저비용 고효율적, 자본의 낭비없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들 관련업체가 별 대과없이 크게 성장발전하고 있고, 함정, 전투기, 총포, 군복, 개인장구 등 군수산업의 수출 및 자족에 이르는 길을 앞 당기기 위해 노력한 박대통령의 '자주국방'의지는 세계 유수의 선진국형 산업기반을 이 나라에 구축한 그의 선견지명에 기인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5. 민족정신을 크게 함양시켰다.
경제개발과 병행된 무역입국, 시장개방 등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문화의 폐해를 대비해서 이 나라의 문화유산, 유적에 대한 재정비 작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산역사를 후손에게 전승하는 지혜를 시의적절하게 발휘하여 자손만대에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6. "하면된다"는 의식개혁의 성공
해방후 그리고 동족간 상쟁을 야기한 이 나라에서는 - 조선인은 뭘 해도 안 된다. - 조선인은 매질을 해야 말을 듣는다. - 빽없으면 출세도 못한다는 등 그야말로 패배주의적 의식이 팽배했던 나라에서 "하면된다"는 그의 독려에 힘입어 전 분야에서 우리 그리고 나의 능력을 스스로 믿게되고 이것이 시너지 역할을 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고 세계를 뛰며 우리의 입지를 넓혀 가게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인력수급의 원할을 위한 '교육정책'의 혁신으로 이공계가 대우 받는 풍조를 조성하여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지적, 기술적 자원을 마련하는 토대를 일구었다.
7. 청렴결백했다.
그의 사후에 밝혀진 여러 사실들, - 퇴임 후 영남대 총장으로 가기 위해 마련된 그의 후일 대비책이란 점에서 유신헌법이 종신집권 헌법이란 말을 무색하게 한 사례나, - 그의 독재적 민주유보가 우리사회의 특성(좌우 이념갈등 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례 등)에 비추어 서구민주사회 만큼의 민주화와 후발경제발전국의 우리식 경제성장책의 병행이 가능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위한 민주유보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또, 당시에는 국민적 심판과 지지를 받았던 것이며,
세계 유수의 독재자들이 치부, 재산도피 등을 한 것과 비교할 때 그의 청렴함은 그의 지엽적 과를 충분히 아우르고 남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양심적이고, 잘 할 것으로 기대했던 이 나라 후임정치인들의 부패와 비리 비도덕성, 국론 분열을 감안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더욱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재삼 확인하게 되고,
위에 열거한 외에도 여러가지 그의 위대함을 입증할 수 있는 사례는 매우 많이 있을 것이지만, 생각나는 것만 간단히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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