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보고와 반공의 섬 백령도
꿈속의 고향 모습은 옛집, 옛 산천초목 그대로인데 어느덧 70대 후반 노년으로 들어선 내 나이는 점점 쇠퇴해가는 기억력 때문일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백령도에 대한 애향심이랄까? 이런 것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지금은 부모님, 형제자매 등이 대부분 돌아가셔서 그런지 고향을 찾는 일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내 고향 백령도는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북녘땅의 장산곶이 바로 지근거리에 닿을 듯 보인다. 백령도는 남한의 서해 최북단의 땅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이 더 가깝다. 백령도는 천연의 비경과 맑은 공기, 고운 자갈들로 유명하다. 그래서 주요 관광지로는 사곶 천연비행장을 비롯하여 두무진, 콩돌해안 등이 있다. 사곶 천연비행장은 50년대에는 임시 활주로로 사용하던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비행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백령도의 자연환경
우리 백령도는 1960년대 이후 간척지를 많이 조성하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다. 주요 농작물로는 쌀과 보리, 콩과 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연평도와 함께 서해안의 주요 어장인데 군내(郡內)에서 어획량이 가장 많고 수산물 저장 시설, 급유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나 접적지역(接敵地域)에 해당하여 어로 활동에 제약이 크다. 까나리와 멸치, 홍어, 가자미 등이 어획되고 전복과 해삼, 굴, 홍합, 미역 등이 채취된다.
우리 집은 섬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연화2리라는 어업생산이 가장 활발한 대표적인 마을로 백령도 내 1개 면, 14개 리 중 가장 부유한 동네였던 것 같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산 넘고 물 건너 새벽밥을 먹고 다녔다. 추운 겨울에는 눈이 너무 쌓이고 추워서 동급생 한 명은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초등학교가 4곳 있었다. 진촌초등학교, 북포초등학교, 남포초등학교, 사곳초등학교 그리고 후에 두무진 분교가 생겼다. 백령도 지도 중앙쯤에 백령중농업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실업고등학교로 바뀌었다.
환경 파괴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는 요즘, 백령도는 청정 환경으로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린다. 백령도는 훼손되지 않은 환경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섬이라고 본다. 천혜의 자연과 비경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여러 천연기념물들과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백령도’라는 이름처럼 새들의 천국이기까지 한 백령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더없이 깨끗하고 청정한 땅이다.
백령도와 반공의식
백령도는 북한과 최접적(最接敵) 지역이기 때문에 전체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철저한 반공사상으로 뭉쳐 있다. 백령도민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반공을 국시로 알고 교육을 받는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여고생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교련 수업을 강도 높게 받았다. 전쟁이 나면 우리 모두가 군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아니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떻게 보면 전 군민의 민방위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곳이다. “백령도나 연평도 등에서 사는 것만으로 애국”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백령도와 해병대, 그리고 결혼
최전방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해병대가 주둔하여 섬 전체가 커다란 해병대 군영(軍營)과 같았다. 해병대는 백령도 주민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입출항할 때 허가권이 있었기 때문에 섬에 사는 아가씨들에게는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남편 배일환은 그 당시 백령도에 근무하던 해병대 군인이었다. 태권도 사범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체격과 원리원칙의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인 그가 다정하게 다가오니 나는 마음이 흔들려 덜컥 결혼을 하였다. 짧은 결혼생활을 뒤로하고 독일과 중동 등으로 태권도 사범으로 해외로 훌쩍 떠난 그가 지금도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남편은 지금은 월남전에 참전하여 치명적 관통상을 입고도 살아난 보훈 대상자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모든 면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결혼 후 태어난 아들과 두 딸도 장성하여 큰딸은 인천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상담 활동을 하고 있으며, 둘째 딸은 미국 육군 소속 군무원으로 근무하며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모범 시민 표창을 받을 정도로 바르게 살고 있다. 아들 역시 인천에서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맡은바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3남매는 내 고향 백령도의 맑은 정기와 강인한 풍토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반가운 소식
백령도의 약점이라면 불편한 교통 사정이다. 불편한 교통은 병원이 부족한 현실을 낳게 하고 섬 주민들이 정착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약하게 만든다. 어찌 되었거나 옛날에는 인천항에서 3일이 걸려야 연락선이 왔는데 지금은 1일 24시간에서 14시간, 12시간, 8시간으로 줄더니 이제는 4시간 정도로 줄었다. 시대의 흐름과 발전 속에서 비행기 한번 못 타고 육지 땅 한번 발 디뎌보지 못한 선조들에겐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백령도 솔개지구에 공항 건설이 추진되어 본격적인 하늘길이 열린다고 한다. 인천시가 그동안의 주민 숙원을 들어 백령도에 공항을 건설하는데 2027년에 완공목표라고 한다. 공항이 완공되면 육지에서 백령도 간의 거리는 1시간 거리로 가까워진다. 배로 4~5시간이 걸리고 걸핏하면 기상 악화로 배편이 끊겨 고립되기 일쑤인 백령도 주민 만여 명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80인승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1,200m짜리 활주로가 1개 있는 소형 공항이지만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하늘길이 열리면 다시 한번 고향을 찾아볼 것이라 다짐해 본다.
고향에 기여하고 싶다
학교 다닐 때 조기, 홍어, 까나리 등 어자원은 엄청 많이 풍요로워서 덕분에 섬 구석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난 분명히 고향이 배출한 인재인데 고향을 위해서 한 일이 없다. 고향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고 하는데 말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인천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선도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고향 백령도를 동행한 적이 있었다. 예상은 하였지만, 옛날 그대로의 모습과 흔적은 없고 시가지나 마을의 조그만 건물들은 모두 현대식으로 변했다. 그래도 메밀 냉면이나 짠지떡 같은 향토음식이나 백령도 고유의 토속적인 정서들은 그대로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남아있는 후배들이 고향의 인재가 되어 지켜주고, 보듬고 살아가고 있으니 또한 흡족한 마음이다.
나와 백령중학교 10회 동창인 심국신 시인은 ‘백령도 바람’이라는 시를 지어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었다.
백령도 바람 소리
임도 없는 바다 위에
금조개는 그려도
백령도 바람은 그릴 수 없네
바위 향해 기도하는 임의 모습 그려도
백령도 마음은 그릴 수 없네
세찬 바람 잠 깨우는
빛나는 백령도엔
바람 소리만 들릴 뿐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구나
내 마음 깊은 곳을 적시는
백령도의 바람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