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불안한 순간들
1974년 12월 24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1. 아들아, 이 성탄 전야를 나와 함께 지내어라. 그 밖의 것은 다 잊어버려라. 오늘은 다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2. 나의 ‘정배’가 유숙(留宿)을 청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했던 ‘그날 밤’. 그 걱정스럽고 괴로운 불안의 순간들을 나와 함께 되살려 보아라.
3. 고통과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막 탄생하실 내 아들 예수님을 생각해서 온 것이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거절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거절이었으니 말이다.
4. 그날 그분은 여러 번 내 성심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 같았다. 당신 탄생의 순간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동정녀인 내가 어머니로서 예수님을 온 인류에게 ‘주어야’ 했던 것이다.
5. 그러나 인류는 그분을 모셔 들일 자리가 없었으니, 문이 닫힐 때마다 사랑과 고통 속에서 - 그 고통 속에서 - 내 아들 예수님을 낳기 위해 점점 더 열리고 있었던 내 마음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는 것이었다.
6. 그분을 맞이한 것은 동굴의 가난 및 그 굴속에 있었던 소 한 마리와 우리가 그날 타고 왔던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내뿜는 온기뿐이었다.
7. 아들아, 성탄 전야의 이 시간을 네가 나와 함께 되살려 보면, 내 아들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을 끌어당긴 것이 다만 ‘너의 가난’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티 없는 내 성심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제가 되도록 한 것이 바로 그분께서 네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8. 너의 가난이 너를 언제나 다만 아기로 있게 해 주리라. 재물, 집착, 생각, 감정의 ‘완전한 가난’이다. 가난해진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바로 그러한 무(無)를 소유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바로 그 무이고, 또 그것만이 그 기쁨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9. 사랑하는 사제들아, 너희도 그와 같이 모두 가난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아기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이다.
10. 그렇게 되면 내가 늘 손잡고 너희를 이끌어 줄 수 있고, 너희도 유순하게 따라오게 될 것이다. 또 내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리니, 다른 어떤 말이나 사상으로도 너희가 충만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더욱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말과 생각은 오로지 내 아들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이다. 그러니 ‘복음’ 말씀 전체가 너희에게 얼마나 명확하게 이해되겠느냐! 내 아들의 복음만이 너희의 유일한 빛이 될 것이며, 암흑이 들이닥친 교회에서 너희가 복음의 완전한 빛을 주게 될 것이다.
12. 너희는 다른 어떤 애정으로도 풍요해지지 않으리라. ‘나의 사랑’, 이 어머니의 사랑만이 너희 유일의 사랑일 뿐이다. 어머니인 내가 너희를 이끌어 내 아들 예수님을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겠고, 그분 없이는 더 이상 살 수도 없을 정도로 만들어 주겠다. 그분께 대한 사랑이 바로 너희의 삶 자체가 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 안에서 참으로 다시 사실 수 있을 것이다!
13.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의 가난, 겸손, 순종이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14. 세상이 너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언제나 이 엄마 마음이 너희의 집과 피난처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