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12년 6월 4일 군량을 도와준 대상 가운데 강계(江界)의 과녀(寡女) 유 조이(劉召史)·최 조이(崔召史)는 송지렴(宋之廉)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서 각기 5꿰미[緡], 혹은 15꿰미의 돈을 가지고 와 군수(軍需)를 도왔는데, 송지렴의 무리가 그들을 가난한 과부라고 여겨 받지 않으니 울면서 굳이 청하여 기어이 주고서야 말았다고 합니다. 그는 시골의 가난하고 천한 여인으로서 역적은 모두가 처단해야 한다는 의리를 알고 있으니, 마땅히 이들을 가상하게 여기는 은전(恩典)이 있어야 합니다."
▶ ▶ 순조 16년 7월 19일 서책과 기물(器物)은 작은 배보다 갑절이나 더 되었습니다. 큰 배나 작은 배를 물론하고 그 제도가 기기 괴괴하며, 층이나 칸마다 보배로운 그릇과 이상한 물건이 있었고, 기타 이름을 알 수 없는 쇠와 나무 등의 물건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또 여인이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본 것은 단지 한 명뿐이었는데, 흰 베로 머리를 싸매고 붉은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순조 17년 7월 26일 경은 의용(儀容)이 개제(愷齊)하여 백료(百僚)의 긍식(矜式)이 될 만하고, 지조가 단아하여 퇴속(頹俗)을 면려할 만한 만큼 조사(朝士)와 여인(輿人)의 오랜 명망도 필시 성하였을 것이므로, 나는 즉위한 날부터 참으로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 순조 19년 10월 11일 세자가 위(位)를 바르게 하매 국인(國人)의 마음을 일찍이 매어 두었고 대혼(大婚)이 상서로이 정해지매 마땅히 내전(內殿)의 보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름 있는 문벌을 두루 가려 이에 훌륭한 여인을 구하였다. 아! 너 조씨(趙氏)는 용모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집안에는 공근(恭謹)을 전하였다. 유한(幽閑)한 덕성은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몸가짐과 말씨는 친히 간선(簡選)하는 날에 알맞았다. 남녀가 바르게 되어 하늘과 땅이 평이(平易)하고 간소하며, 경사(卿士)가 따르니 길한 날 좋은 때이다.
▶순조 27년 9월 9일 중궁전 옥책문에 이르기를 선왕께서 빈(嬪)으로 맞이하라고 명하셨으니 아름다운 풍도가 참으로 곧으시기 때문이고, 왕실에서 태모(太母)의 아름다움을 계승하시니, 아! 아름다운 명성이 멀리 미쳤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게을리하지 않고 순일(純一)한 덕을 지키시어, 땅의 도리를 빛내고 하늘의 아름다움을 맞이하셨습니다. 교화는 여인에게 두루 미쳐 이남(二南)170) 의 가송(歌頌)에 양양(洋洋)하고, 경사는 자손에게 뻗어 백세(百世)토록 자손이 면면(綿綿)할 것입니다
▶ ▶ 순조 29년 5월 18일 삼성 추국(三省推鞫)을 열어, 남편을 죽인 죄인인 재령군(載寧郡)의 김 여인(金女人) 골덕(㐔德)을 부대시(不待時)로 정법(正法)하였다
▶순조 29년 8월 15일 전라 감사(全羅監司) 조인영(趙寅永)이, 창평(昌平)의 여인(女人)이 한 태(胎)에서 네 남자 아이를 낳았다고 치달(馳達)하였다.
▶순조 32년 8월 9일 연안(延安)의 김(金)·신(申) 두 여인은 해주(海州)의 노상(路上)에서 갑자기 악당들이 뛰어나와 겁간(劫奸)하려 하자 죽기로 저항하고 듣지 않으니, 머리털을 거머쥐고 끌며 발로 차고 때려 마침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열행(烈行)은 작설(綽楔)063) 의 은전은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순조 34년 2월 9일 방금 전에 평안 감사 정원용(鄭元容)과 병사 신경(申絅)과 의주 부윤 김재삼(金在三)의 장계(狀啓)를 보니, ‘봉황성(鳳凰城)의 장수가 통지문과 국경을 넘은 여자 한 명을 압송하였기에 즉시 그를 문초해 보니, 본래 의주에서 구걸하던 여인으로서, 벙어리에다 어리석어 경계를 판단하지 못하였습니다. 때마침 강이 얼 때 잘못 저쪽 땅으로 들어갔던 것인데, 언어(言語)가 통하지 않아서 거주지와 신분에 대해 명확하게 공초를 받지 못했다’고 하였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