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 울려 퍼지는 언덕, 대구 청라언덕
글과 사진 / 송일봉(여행작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는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인 성당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인 계산동성당이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인 이 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다. 1984년 5월 5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방문해서 기도를 올린 성당이기도 하다.
계산동성당에서 마주보이는 언덕에는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립된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있고, 그 옆에는 좁고 가파른 계단길이 있다. 이 계단길이 바로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90계단길(3.1만세운동길)’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교회지도자와 학생들이 주축이 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이동하던 숲길이 지금의 ‘90계단길’이다.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계단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옛 건축물 사진과 함께 담쟁이덩굴이 자라고 있다. ‘청라(靑蘿)’는 말 그대로 ‘푸른 담쟁이덩굴’을 의미한다. 계단길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새로 지은 대구제일교회가 보이고, 왼쪽을 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청라언덕입니다’라고 쓰여진 표지판도 보인다. 청라언덕은 달성공원 동쪽에 있다 해서 ‘동산(東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이름도 바로 이 ‘동산’에서 따왔다.
가곡 ‘동무생각’의 발상지
청라언덕은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박태준(1900~1986년)이 작곡하고,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은상(1903~1982년)이 작사한 ‘동무생각(思友)’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대구에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박태준은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마산의 청년시인인 이은상을 만난다. 그리고 박태준은 우연한 기회에 계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신명여학교(현 신명고등학교)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은상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시를 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시에다 박태준은 곡을 붙인다. 이때가 1922년. 박태준의 나이 22세 때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은 탄생되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은상과 박태준은 1957년에 신명여학교의 교가 개정작업에 참여한다. 둘이서 만든 신명여학교 교가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박태준은 가곡 외에도 기러기(1920년), 오빠 생각(1925년), 새 나라의 어린이(1945년) 등을 비롯한 많은 동요를 작곡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구로야마 즈미아끼(玄山濟明)’로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음악단체인 ‘조선음악가협회’의 이사로 활동했던 작곡가 현제명도 대구 계성학교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 집 앞, 고향생각, 나물 캐는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은 곡을 많이 만들었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냉담하다. 청라언덕에 현제명노래비를 세우려던 계획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친일행적이 발목을 잡아 취소되었다. 현재 대구제일교회 앞마당에는 ‘현제명나무’로 이름 붙여진 이팝나무(수령 200년 추정)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친일파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1960~1970년대 무렵.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남학생들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가곡 ‘그 집 앞’ 가사를 많이 인용했었다고 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건축물 3동
청라언덕에는 눈길을 끄는 서양식 건축물 3동이 있다. 각각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사 챔니스 주택, 선교사 블레어 주택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사택)들은 모두 100년이 넘은 것들이다. 이들 건축물들이 건립된 1906~1910년 무렵은 대구 일대에서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다.
현재 선교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스윗즈 주택은 1910년 무렵에 건립되었다. 1907년 대구읍성이 철거될 당시에 나온 안산암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붉은 벽돌로 벽을 쌓았다. 지붕은 기와를 올린 한옥형태이며, 창에는 소박한 스테인드글래스로 한껏 멋을 냈다. 건물 옆에는 대구의 원조 사과나무 후계목(수령 약 70년)과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이 있다.
의료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챔니스 주택에서는 1800년대와 1900년대의 다양한 동서양 의료기기를 전시하고 있으며, 교육역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선교사 블레어 주택에서는 민속사료와 옛날 교과서를 비롯한 교육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두 주택 사이에는 2009년에 세운 ‘동무생각 노래비’가 있다.
근처 명소,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청라언덕 근처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있다. 가수 김광석의 음악을 주제로 조성된 이 골목길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길이 약 350m의 이 벽화골목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2010년에 조성되었다.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명지대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노래를 불렀다. ‘메아리’,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등에서 활동했고 1989년에 첫 솔로음반을 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음반을 발표했지만 아쉽게도 1996년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히트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나의 노래,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등병의 편지 등이 있다.
▲찾아가는 길 : 구마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서대구나들목→청라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