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세와 함께한 10일 안선모 “이번에 들어온 아이 중에…….” 식탁에 앉자마자 엄마는 또 난민 이야기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빠가 그런 나를 보고 눈을 깜짝했다. 엄마 눈치 채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엄마가 하는 일이 난민 가정 도와주는 봉사활동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우리 식구끼리 있을 때는 우리 식구에게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나에게 더욱더. “따세라는 남자아이가 있는데.” 따세라면 나도 아는 아이다. 얼마 전에 우리 반으로 전학 온 미얀마 난민 아이다. 다른 기관에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다가 일반 학교로 들어왔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애와 눈 한번 마친 적이 없다. “걔네 엄마가 눈 수술을 하게 됐어. 그래서…….” 걔네 엄마가 수술한 게 나하고 뭔 상관이 있다고? 아니 우리 집과 뭔 상관이 있는 거지? 엄마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나는 잽싸게 비집고 들어갔다. “엄마, 이번 생일 때 닌자고 디젤넛트 사주면 안 돼요?”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엄마가 내 말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 아이가 열흘 동안 공중에 붕 떴어요. 아빠가 엄마를 돌봐주러 가야 해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혼자 지낼 수 있을까?” 아빠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자 엄마가 응원군을 얻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우리 열이랑 똑같은 나이, 이제 겨우 열한 살이라고요.” 나는 다시 치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좀 크게 말했다. “엄마, 이번 생일선물은 무조건 닌자고 디젤넛트예요!” 그러자 엄마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어쩜 그렇게 비싼 걸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할 수 있니?” 그 다음 얘기는 들어보나마나 뻔하다. 이 지구상에는 생일선물은커녕 생일날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먹는 아이가 수두룩하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한 걸 모르고 자라 앞으로 큰일이다 등등. “아, 알았어요. 오늘부터 열심히 집안일 도울 테니 사주세요.”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해서 용돈을 받았다. 물론 한 달 동안 열심히 해도 만원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에구, 생일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어떻게 10만원을 모으지?’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아빠가 싱긋 웃더니 말했다. “따세라는 아이를 우리 집에서 열흘 동안 묵게 하는 건 어때? 우리 열이에게 따세를 도와주는 중대한 임무를 주는 거지. 그러면 따세는 따뜻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우리 열이는 그 대가로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꿩먹고 알 먹고 아니겠어?” 아빠의 말에 엄마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쩜 당신 그렇게 멋진 제안을! 역시 내가 시집은 잘 왔다니까.” 그렇게 해서 따세가 우리 집에 열흘 동안 머물게 되었다. 따세가 10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묵게 된 첫날, 바로 일요일 저녁이었다. 따세는 우리 식구를 보자, ‘내 이름은 ‘따세’입니다.’ 하면서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였다. 따세의 뜻이 열, 십이라는 것이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따세가 10월 10일 날 태어나 따세의 엄마아빠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따세? 뭘 딴다고? 사과 딸 거야, 호박 딸 거야?” 내 유머에 따세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었다.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따세가 웃었으니까. “내 이름은 나 열, ‘열’도 10이라는 뜻이야.” 그러면서 나는 따세에게 오른손을 번쩍 들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처음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만 보던 따세가 얼른 오른손을 올려 내 오른손과 맞부딪쳤다. 짝! 소리가 났다. “앞으로 실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따세엣.” 따세는 우리 가족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더니 또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펴 보였다. “그러니까 따세 말은 10일 동안 신세를 지겠다는 얘기야. 엣은 미얀마어로 일, 데이(day)라는 뜻이거든.” 엄마는 그동안 미얀마 난민들과 지내더니 언어가 많이 늘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는 눈 딱 감고 열흘만 참기로 했다. 둘째 날, 따세와 함께 등교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따세가 전학 왔을 때부터 관심 1도 없던 애가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10일만 지나면 내 손안에 들어올 닌자고 디젤넛트만 생각하기로 했다. 무한궤도 바퀴가 장착되어 있고 앞에는 가시가 박힌 범퍼가 있는 차량, 드래곤 헌터들의 활약을 도와줄 멋진 디젤넛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 기분이었다. “얘들아, 나 이번 생일 때 닌자고 디젤넛트 생길 것 같아.” “정말? 그거 엄청 비싼데.” 내 말에 수찬이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열아, 부럽다 부러워. 지금 갖고 있는 피규어도 대단한데 디젤넛트까지!” 두 번째 반응한 것은 반장 태건이었다. 태건이는 공부벌레라서 피규어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반장이 반응을 보이니까 다른 아이들이 덩달아 반응을 하였다. “우리 반 최고 인기맨은 역시 나 열이야.” 아이들의 말에 어깨가 쑥쑥 올라갔다. “악, 벌레다!” 그때였다. 교실 뒤편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앞에 모여 있던 아이들도 무슨 일인가 하여 다가갔다. 쓰레기통 옆에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가 나타나자 반 아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이리 저리 도망쳤다. “야, 겁쟁이 남자 아이들 그렇게 도망만 치면 어떡해?” 부반장 하린이의 말에 남자아이들이 합세하여 외쳤다. “겁쟁이이긴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면 너희들이 잡아보든지!”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따세가 조용히 다가가더니 아무렇지 않게 벌레를 손으로 잡았다. “죽여, 죽여!” “밟아, 밟아!”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안 돼! 벌레도 생명 있어.” 따세는 밖으로 나가 화단 속에 벌레를 놓아주었다. “역시 따세, 철학적인 아이라니까.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를 믿으니까 살생을 하지 않는 거야.” “맞아, 맞아!” “벌레 잡는 남자도 멋있지만 벌레 놓아주는 남자는 더 멋있다.” 여자아이들이 따세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세상에, 벌레 한 마리 잡아 놓아주었다고 따세는 갑자기 우리 반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가 되었다. 언제는 못 먹어서 삐쩍 마르고 얼굴도 새까매서 매력 꽝이라고 수군대던 아이들이었다. 3일째 되는 날, 따세는 달리기로 아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키도 제일 작고 멸치처럼 삐쩍 마른 아이가 마치 번개처럼 달려나갔다. 키 크고 다리 긴 계주 선수 영민이를 제치고 달려나가는 따세를 보고 아이들이 입을 쩍 벌렸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달리기를 잘 해?” 여자아이들이 몰려와 묻자, 따세가 머리만 긁적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내가 나섰다. “그건 난민이기 때문이야. 난민은 늘 쫓기고 도망쳐야 하니까.”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4일째 되는 날, 신나는 4교시가 되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다. 모처럼 공기가 맑아 하늘이 파랗고 바람도 선들선들 불어 연날리기 참 좋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연을 날리고 연싸움을 하고 신나게 놀았다. “앗, 연이 나뭇가지에 걸렸어.” 부반장 하린이가 발을 동동거렸다. 하린이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였고, 하린이가 만든 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하린이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다. 내가 꼭 꺼내줄 거야. 나는 있는 폼 없는 폼 잡고 나무를 발로 세게 찼다. 하지만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긴 막대기를 이용해 연을 꺼내보려 했다. 하지만 막대기가 너무 짧았다. 연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약 올리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따세가 다가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결심한 듯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무 위로 성큼성큼 기어올랐다. 맨 꼭대기에 다다른 따세가 연을 조심조심 떼어냈다. “와! 따세 만세!” 여자아이들은 그런 따세를 보고 손뼉을 치고 팔짝팔짝 뛰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연예인이 따로 없었다. 하린이는 따세가 건네준 연을 받아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따세.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따세는 그밖에도 잘 하는 게 많았다. 물구나무서기도 잘 했고, 축구도 잘 했다. 또 잘 웃었다. 웃을 때는 커다란 눈도 따라 웃었다. 더듬더듬 말하지만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했고, 친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도 알았다. “생긴 것도 별로고 키도 작고, 멸치처럼 삐쩍 말라가지고 얼굴은 연탄처럼 새까맣고. 공부는 더더더더 별로인 따세는 왜 인기가 많은 걸까?” 수찬이가 내 옆에 와서 따세가 부럽다는 듯 물었다. “그건 따세가 난민이기 때문이지. 어려운 사람에게는 당연히 관심을 줘야 하는 거니까.” “그나저나 너, 따세 매니저 노릇 하느라 힘들겠다.” “뭐라고? 내가 따세 매니저라고?” “그래, 너 따세가 가는 곳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잖아.” “그건…….” 아이고, 답답해라. 엄마와 한 약속을 아이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도 없고. 5일째 되는 날, 목요일이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하여 설렜다. 피규어 자랑할 생각에 어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얘들아, 내 방으로 가자. 내가 그동안 모은 피규어 보여줄게.”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만 다른 방을 기웃기웃했다. “따세 방은 어디야? 따세 방이 궁금하다.” 그동안 내가 모은 피규어를 마음껏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아이들은 피규어는 쳐다보지도 않고 따세랑 놀고 싶어 했다. 사실 따세 방은 볼 게 아무것도 없다. 작은 방에 달랑 침대 하나밖에 없으니까. 창고로 쓰던 방을 따세를 위해 침대를 하나 들여놨으니까. 그런데도 아이들은 따세 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이들은 좁은 방에 끼어 앉아 따세가 그린 그림들을 들춰보며 열광했다. 따세는 내가 버린 쓰지 않는 몽당 색연필을 가지고 어쩜 그렇게 멋진 그림들을 그린 것인지. 나는 입이 뿌루퉁 나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6일째 되는 날, 나는 따세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따세는 내 눈치를 조금 보았지만 여전히 활짝 웃었고 여전히 인기맨이었다. 7일째 되는 날, 토요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외식하는 날이었다. “따세는 고기 잘 못 먹으니까 한정식집 가자.” “에이, 난 한정식 음식은 심심하고 따분해서 싫은데.” “이번 한 번만인데 뭐.” 싫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 열, 오늘 하루만 양보할 수 있지?” 그렇게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한정식집에 갔다. 엄마·아빠는 나오는 음식마다 따세에게 설명하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따세, 이건 잡채라는 거야.” “예, 미얀마 음식 ‘카우 싸이접’하고 비슷해요. 근데 한국 음식 잡채가 훨 맛있어요.” 따세의 ‘훨 맛있어요.’라는 말에 엄마·아빠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따세,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 “아직 멀었어요. 더 노력해야죠.” 그 말에 엄마, 아빠가 기특하다는 듯 따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세, 이건 샐러드인데 주로 채소로 만들었으니까 입맛에 맞을 거야.” “예,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분도 어서 드세요.” 엄마, 아빠는 따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웃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먹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다. 어, 이건 뭐지? 뭔가 주연과 조연이 바뀐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집의 주연은 늘 나였다. 나 때문에 웃었던 엄마 아빠가 따세가 하는 말 때문에 웃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먹는 것에 신경을 썼던 엄마, 아빠가 온통 따세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소외감에 말없이 음식을 집어넣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다. 언제부터 따세가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아무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열이야, 색연필 좀 빌려줄 수 있어?” 따세가 내 방으로 왔을 때 나는 화가 나서 낮게 중얼거렸다. “가, 가버려!” 내 말에 따세가 눈을 끔벅거렸다. 내 말을 알아들었다. 따세의 눈이 슬프게 보였다. “나, 못가! 나 공부하고 싶어.” 따세의 슬픈 눈을 외면하고 나는 또 중얼거렸다. “쳇, 난민 주제에…….” 8일째 되는 날, 일요일 낮이었다. 엄마는 봉사활동 하러, 아빠는 친구들과 등산하러 갔다. 집안에는 따세와 나 둘 뿐이었다. 따세는 운동도 좋아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어찌나 그림을 그려대는지 색연필이 몽당해질 정도였다. 따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나도 모르게 따세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따세가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두 손을 비비기도 하였다. 또 몸을 덜덜 떨면서 ‘헬프 미, 헬프 미’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따세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봉사활동을 마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따세를 꼭 껴안아 주었다. 따세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따세, 아이들에게 네 이야기를 해주렴. 그러면 어쩌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지도 몰라.”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따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9일째 되는 날, 월요일이었다. 선생님이 따세에게 웃으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따세는 스케치북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예요. 첫 번째 그림은 엄마, 아빠의 고향 모습이에요. 산이 있고 호수가 있어요.” 따세가 힘들게 설명을 마치자 아이들은 따세가 그린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따세를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따세를 닮은 어린아이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쳤고 남자 어른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여자아이들과 여자 어른들은 활짝 웃으며 꽃을 따고 있었다. 두 번째 그림부터 따세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따세가 설명하지 않아도 반 아이들은 그림만 보고서도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림은 총을 든 군인들이 몰려오자, 따세를 닮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산 넘고 물을 건너 국경 근처에 도착해 캠프에 모여 살았다. 세 번째 그림은 따세가 태어나는 장면이었다. 따세는 엄마·아빠와 함께 있어서 행복해 보였다. 네 번째 그림은 따세가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다섯 번째 그림이 나오자 반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질렀다. 따세가 커다란 새를 타고 고향으로 날아가는 그림이었다. 따세가 그린 따세의 나라는 환상적이었고 평화로웠다. “나의 이야기 끝입니다. 나는 공부 많이 하고 언젠가 고향으로 갈 겁니다.” “따세, 넌 할 수 있어!” 반 아이들의 말에 따세의 얼굴이 빨개졌다. 따세의 얼굴이 빨개지는데 왜 나도 덩달아 얼굴이 빨개지는 거지? 10일째 되는 날, 아침 식탁에서 엄마가 말했다. “따세는 이제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갈 거야.” 갑자기 가슴이 쿵덕 내려앉았다. “왜?” “열아, 따세는 이제 난민 아니야. 정착민이 되었어. 우리 정부에서 작지만 편안히 쉴 곳을 마련해 주었어. 그래서 그 근처 학교에 다니게 된 거야.” “이렇게 갑자기?” “응, 그렇게 됐어.” 나는 와앙~ 하늘이 무너질 듯 울음을 터뜨렸다. 따세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따세와 함께 있었던 10일 동안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따세를 좋아했다는 거다. ========================= ■동화 부문 수상소감■ ‘함께’ 어울려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지난해, 미얀마 카렌족 난민 학생들이 전학을 왔어요. 2017년, 태국 난민캠프에서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온 아이들이었죠. 1학년의 절반을 공립다문화학교에서 보내고 2학년이 되어 우리 교실로 들어온 아이는 할 수 있는 한국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눈만 끔벅끔벅, 고개만 끄덕끄덕. 잔뜩 겁에 질린 두 눈, 작은 체구,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면서 전혀 다른 환경에 던져진 이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가장 급한 것은 언어였기 때문에 많은 시간 한국어를 가르쳤고,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아이는 성실하게 잘 따라와 3학년으로 올라갔고 지금은 거의 한국아이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말을 잘 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 따세는 낯선 곳에서 다시 낯선 곳으로 길을 떠나야만했던 미얀마 난민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이 땅의 따세들이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멋진 대한민국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죠. 인종과 종교를 넘어 ‘함께’ 어울려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꿈꾸면서 말이죠. 보면 볼수록 부족한 글, 쓰면 쓸수록 어려운 동화 -그래서 잔뜩 기죽어 있던 저에게 ‘우수작품상’이라는 거대한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용기가 불끈불끈 솟아났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더욱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안선모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동화 「대싸리의 꿈」으로 월간 <아동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성을 쌓는 아이』, 『교실로 돌아온 유령』, 『우당탕탕 2학년 3반』 등이 있으며 해강아동문학상(신인상),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신나게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