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성막의 설계자이신 하나님
1. 성막의 설계는 하나님이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출35;4-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5;9)
성막의 구조, 1.바깥뜰, 2.성소, 3. 지성소 그리고 출입문과 울타리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 강림 하셔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며,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처소를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모세에게 각 구조의 모양과 규격, 재료를 일일이 알려 주시며 임재의 공간을 설계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어떤 형태의 예배를 받으셨고 그 예배의 중심이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성막은 크게 바깥 뜰, 성소, 지정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성막은 가로 100규빗 세로 50규빗의 직사각형(直四角形) 모양으로 동서(東西)로 길게 되어 있습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동쪽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데 성막의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출입문을 통과하면 바깥뜰에 들어서고 그 마당에는 번제단과 물두멍 있습니다.
물두멍을 통과하면 성소에 들어갑니다. 성소에는 오른 쪽에 “진설병” (떡상)이 있고 왼쪽에는 금 촛대가 있고 휘장 쪽으로 “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이 있습니다. 휘장을 넘어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습니다.
속죄소는 언약(言約)궤의 뚜껑입니다. 이곳에서 천사의 두 날개를 펼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언약궤의 뚜껑을 “시은소”(施恩所)”라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이곳에 임재(臨齋)하심을 상징했습니다.
성막의 구조(構造) 성막(聖幕)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설계 하신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의 예배의 중심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모세를 부르시고 백성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오라 하게하고 그것을 받아 산에서 보이신 양식대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출25;40) 성막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설계하신대로 모세를 통해서 지어졌습니다. 이 땅위에서 성막만큼 완전하게 지어진 건물은 없습니다. 건물이 지어진 후로 다시 손을 보거나 재료를 빼거나 첨가해서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전한 건물은 오직 광야에 세워진 성막뿐입니다. 그 건물은 하나님께서 모형과 형태와 그 건물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까지도 모두 하늘에서 세밀하게 작성되어 모세에게 맡겨졌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 백성을 위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을 받은 때는 출애굽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시내 산에서 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막 을 세밀하게 설계하셨는데 심지어는 성막 지을 재료들과 규격까지 지시하셨습니다. 성막의 모든 부분들은 예언이며 구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모형적인 의의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신령(神靈)한 방법으로 설계된 이 건물보다 더 완전하게 구속(救贖)의 계획을 가르치고 더 풍부하게 성경적인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설계를 통해서 그 부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특성(特性)과 사역(使役)에 관한 내용을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아들이신 예수님의 포괄적(包括的)이며 가장 세밀하고 자세한 계시와 구약 전체의 내용에 존재하고 있는 구원 계획을 성막(聖幕)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8;5)
이 성막은 이미 하늘에 존재했던 것으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그대로 재현(再現)된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성막에 거하시며 백성들을 만나시고 어떻게 살고 행하실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성막은 참 형상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이 성막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이며 그림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인간(人間)을 만나시며 그리스도 안에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서로 만나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8;1-2)
이 성막을 통해서 하늘의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이 성막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사람들이 보기에 볼품없는 작은 건물(建物) 이 건물은 외부에서 보면 별로 위엄도 없고 더군다나 볼품이 없는 겉모양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적인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하지 않는 초라한 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성막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 성막이 지니고 있는 지극히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운 내부의 놀라움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진귀함을 보려면 성막의 동편에 위치한 출입문을 통해서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내부인 성소(聖所)와 지성(至聖)소에 들어가서 성막 곧 하나님의 집의 가장 장엄한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겉모양의 초라한 모습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수님을 예언한 말씀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1-3)
건물의 규격과 울타리 먼저 성막의 넓이는 22.5m 이며 길이는 45m 가되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보통 도시 부지(敷地)의 형태로 이 건물의 땅은 북남서(北南西)의 삼면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울타리의 높이는 2.25m이었습니다. 그 울타리의 동쪽에는 성막으로 들어가는 입구(入口)가 있었는데 그 문은 성막의 거룩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유일(唯一)한 길이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이 문의 넓이는 9m이며 그 밖의 나머지 부분은 하얀 세마포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울타리는 놋쇠 기둥에 싸여 마치 커튼처럼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둥들은 놋쇠로 만들어진 받침에 의지(依支)하여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뜰 이 세마포 울타리를 후에 부르기를 이방인(異邦人)의 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뜰은 언제나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의로운 태양(太陽)이신 그리스도의 분명한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 성막 뜰의 동편 끝에는 놋 제단이 있으며 성소 입구에는 물대야(물두멍)이 있습니다. 성소 내부(內部)가 아닌 외부(外部)에 있는 성전 기물(器物)로는 놋 제단과 물두멍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막 뜰은 지붕이 없이 울타리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성막은 이동(移動)하기에 편리하게 지어진 건물로 넓이 4.5m 높이도 4.5m 길이는 13.5m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인 집의 큰 거실(居室) 정도의 크기이었습니다. 성막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고 크기는 동쪽을 향하여 있는 방을 성소(聖所)라 했으며 그 크기는 길이가 9m, 넓이가 4.5m, 높이가 4.5m이었습니다. 성소 다음에 있는 방을 지성소(至聖所)라 했으며 휘장(揮帳)으로 성소와 분리 시켰습니다. 지성소는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은 입방체(立方體)의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9;1-5)
성막의 세부적(細部的)인 부분들 성막의 세부적인 부분들은 구세주(救世主) 이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신성(神聖) 그리고 사역(使役)에 대한 내용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막의 목적은 구속에 대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예비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이 그리스도를 묘사(描寫)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자(信者)들을 묘사하는 그림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것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處所)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신자 안에 거하셔서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聖殿)입니다. 성막이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된 것처럼 신자들도 성부(聖父)이신 하나님, 성자(聖子)이신 하나님, 성령(聖靈)이 거하시는 삼위가 연합(聯合)하여 계시는 처소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20)
성령으로 거듭난 구속받은 신자는 성막이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이 몸과 혼(魂)과 영(靈)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肉身)은 성막의 바깥뜰에 해당되며 우리의 개성이 들어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지는 부분으로 제사(祭祀)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혼(魂)은 성소를 말하고 있으며 그곳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다른 신자들과 교제(交際)하며 진설병 상(床)에서 떡을 떼며 빛 가운데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곳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영(靈)은 성막의 맨 안쪽에 있는 지성소를 가리키며 감춰져 있는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께서 임재(臨齋)하시는 곳입니다. 속죄소가 있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곳입니다. 이 지성소는 영적으로 완전히 승리(勝利)하는 장소입니다. 성막은 단순히 그리스도와 신자의 그림자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감춰져 있는 신비한 처소입니다.
성막의 일곱 단계 구성(構成) 성막 밖에 있는 죄인들은 성막의 일곱 단계를 거쳐서 구원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승리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번제 단 이들은 성막의 동편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되고 출입문은 오직 한 곳뿐입니다. 출입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넘어 오는 자는 절도며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출입문으로 들어 온 자는 반듯이 번제 단 앞에 멈춰서야 합니다. 그 제단은 바로 십자가(十字架)입니다. 그곳은 구원을 체험하는 출발점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물두멍의 씻음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으니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분리되어 날마다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씻어야 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5;26)
성소의 진설병 물두멍을 지나 성소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진설병 즉 매일 말씀을 먹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2;2)
성소의 금 촛대 성소에는 다른 빛은 없습니다. 오직 금 촛대에서 비취 주는 빛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배웁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6)
성소의 향단(香壇) 향단에서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며 기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5;15-16)
지성소에 들어갈 준비(準備) 거기서 신자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 내적인 생명 가운데서 개인적인 능력과 하나님과 교제를 경험하며 섬기는 일 가운데서 차원(次元) 높은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속죄(贖罪)소 (시은소) 그리하여 참된 신자는 그룹들이 내려다보는 그늘 아래 마련되어 있는 피가 뿌려진 속죄(贖罪)소에서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10;19-20)
성막에 대해서 기록된 내용을 연구하는 것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들을 열심히 상고하고 연구하여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111;9-10)
성막에는 일곱 가지 기구(器具)들이 놓여 있는데 그것이 일곱인 이유는 하나님의 완전(完全)성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 2가지가 있으며 성소에 3가지 기구가 놓여 있는데 진설병과 금 촛대와 향단입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2가지 기구가 있는데 그것은 언약궤와 속죄소입니다. 성막의 모든 부분(部分)들과 이 기구들은 하나같이 성막은 신자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이며 성막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완전하신 점을 계시(啓示)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기구들은 오직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 주님의 구원의 사역과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사역을 말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구원에서의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출24;1-2)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요1;16-18)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天下)보다 귀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한 사람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지식이나 명예(名譽)나 권세(權勢)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罪人)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벗었음으로 숨었다 했습니다. 그는 숨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그의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두려워서”로 해석(解釋)할 수도 있습니다. 무화과 잎은 종교(宗敎)를 의미합니다. 어떤 종교적인 행위(行爲)로도 부끄러운(두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8-10)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 잎의 연약한 앞치마를 무시(無視)하시고 저주(咀呪)를 선고하셨습니다. 그것은 죄 값은 사망입니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자손(子孫)입니다. 그리고 모두 죄인입니다. 사망의 저주(咀呪) 아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5;12-14)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 옷은 한 마리의 짐승의 희생(犧牲)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짐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입니다. 죄도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희생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恩惠)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율법(律法)과 은혜(恩惠)의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는 데로 율법은 구약성경의 핵심(核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解放)되어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율법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포함(包含)된 하나님의 의(義)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으로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善)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完全)하게 하시려 오셨고 천지는 변할지라도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基準)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完成)자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犧牲)적인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13;8-10)
성경은 은혜(恩惠)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恩寵)이며 선물(膳物)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19-2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3-26)
구원은 신앙의 완성(完成)이 아닙니다. 이제 출발입니다. 과거(過去)적 구원은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었다고 칭의(稱義) 된 것이라면 현재(現在)적 구원은 생활에서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성화(聖化)의 과정입니다. 구원의 미래(未來)적 측면(側面)은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낮은 몸이 신령(神靈)하게 변화되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聖靈)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곳 인간(人間)은 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을까요? 그것은 죄가 원인입니다. 죄로 더러워졌고 추악한 괴물(怪物)이 되었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그것은 곳 거룩함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곳이 바로 성막(聖幕)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막의 바깥뜰은 죄인(罪人)의 처소, 죄악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그 곳을 떠나 지성(至聖)소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을 뵈옵고 참된 평안(平安)과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끝까지 이 성막과 그리스도를 읽고 은혜(恩惠)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救出)해 내신 후에 모세에게 명령하여 광야(廣野)에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막(聖幕)은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이며 형상(形象)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보다 더 완전(完全)하고 영원(永遠)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處所)입니다. 그리고 이 성막의 모든 세부적(細部的)인 부분과 구조는 주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조의 모든 부분과 자료(資料)와 기구들과 그리고 성막 안에서 하는 사역(使役)들은 우리 구세주의 무한(無限)하신 은혜(恩惠)와 고결하심, 또한 속성(俗性)과 그리고 사역들에 관하여 특별한 면을 계시하고 있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에서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히9;2) 이것은 성막에 있는 두 개의 방(房)가운데서 큰 방이었으며, 그 큰방을 성소라고 불렀다. 성소(聖所)라는 말은 “거룩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저자(著者)는 다른 하나의 작은 방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 중에 거룩 이라고도 하며, 지성(至聖)소라고도 불렀습니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 3-5) 구약(舊約)에서 그리스도의 이 성막(聖幕)비유에 대하여 모형(模型)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실을 다루기 전에 “성막”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민수기 17장에서는 그것이 “증거의 장막”(Tabernacle of Witness)이라고 호칭(呼稱)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5장 5절에서는 “증거장막”(Tabernacle of Testimony)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하여 해야 될 의무(義務)와 책임(責任)을 증거하고 증명(證明)하시는 곳으로 유일(唯一)한 장소였습니다.
출애굽기 33장 7절에서 우리는 “회막(會幕)”이라고 표현(表現)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이 참된 성막이 건축되는 동안 사용했던 임시 천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회막 이라는 말은 이 건물의 성격을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중(會衆)은 여러 개인들이 교제하며 의논하기 위하여 모인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그 장막은 “‘모이는 천막”’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성막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33;7-11)
“회막(會幕)”은 하나님과 인간이 모이는 장소였으며 잘 기억할 것은 그곳은 제물(祭物)과 피를 근거(根據)로 해서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유일한 장소라는 점입니다. 그 성막 안에서 제물과 피를 흘리는 장소를 제외해 버린다면 이스라엘 민족(民族)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절대로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모든 인간은 그 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제물(祭物)의 피를 바탕으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하여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죄인들이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寶血)을 근거(根據)로 말미암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히9;8-9)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인 성막(聖幕) 성령님께서는 계속해서 간증하시고 증거(證據)하시는데. 성령님의 증거 하시기를 광야의 성막은 장차 올 어떤 것에 대한 비유라고 했습니다. “비유”라는 말은 모형(模型)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말은 그림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막은 오직 장차 있게 될 어떤 훨씬 더 위대(偉大)한 것에 대한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1-14)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원래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성전입니다. 광야에 있는 성막은 그때 당시에는 아직 오시지 않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비유이며 그림자였습니다. 성막에 있는 제단은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주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은 영원하신 말씀이신 그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진설병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등대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象徵)하고 향단은 중보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며, 언약궤는 그분의 지고하신 권능과 왕적 위치를 말 할뿐만 아니라 그분의 다 이루신 사역(使役)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조각목 나무는 그 분이 지니고 계시는 인성(人性)을 의미하고 있으며, 황금은 그분의 신성(神性)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은(銀)은 그분의 의(義)를 상징하며 놋은 그분의 완전하신 심판을 상징합니다. 자주(紫珠)색은 그분의 왕권(王權)을 의미하며, 흰색은 그분의 의를, 주홍(朱紅)색은 희생과 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휘장(揮帳)은 하나님께로 접근하기 위해서 찢어져야 되는 그분의 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모든 부분의 하나하나의 세밀한 기물이나 부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역(使役)에 대하여 미리 나타냈으며 예시(豫示)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오직 한 곳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상기해 주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의 성막이 있었으며 오직 하나뿐인 성막(聖幕)과 오직 하나뿐인 희생(犧牲)제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희생제물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제물이 제아무리 완전(完全)하다 할지라도 이 유일한 성막에 있는 제단에 가져오지 않은 제물은 절대로 받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곳은 오직 한 곳이었으며, 그곳이 바로 성막 문안에 있는 제단(祭壇)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고 그들 자신에게 여호와의 심판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흩어짐을 당하게 된 요인은 바로 그들이 이 유일한 제단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반복하여 제사를 드렸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며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는 곳도 오직 한곳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6-7)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神秘) 성막의 제도가 그리스도를 나타낸 모형(模型)이며 그림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오묘(奧妙)한 신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29;29)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1;21-27)
인간(人間)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이 세상 어디를 간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나 뵈올 곳이 없으며, 하나님과 화목(和睦)될 수 있는 곳도 없고 구원(救援)받을 수 있는 곳도 없습니다. 아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계십니다. 그리고 확실(確實)한 우리의 구원(救援)의 문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