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의 강연 소개
제목: 십자가의 의미
원제: NT Wright Reconsidering the Meaning of Jesus' Crucifixion
https://youtu.be/tOo5fkDkQFE?feature=shared
이 강연은 톰 라이트가 지난 2014년 4월에 미국의 켄우드침례교회에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 The Day the Revolution Began(혁명이 시작된 날)을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 그 내용의 핵심을 전했다.
이 강연의 끝부분에서 톰 라이트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던 금요일 저녁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가요?”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 책과 이 강연은 이에 대한 대답이다.
동방정교는 십자가의 죽음보다는 부활에 강조점을 둔다고 한다.
서방신학은 전통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으로 상정하고 십자가가 바로 그 구원을 가능하게 한 은총이라는 식으로 이해한다.
신학적으로는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할 때 여러 이론이 제시되어 왔다. 예를 들어, 그것이 대속적 죽음이냐 또는 인류를 대표한 죽음이냐, 또는 올바른 삶을 보여준 모범이냐, 아니면 결정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이렇게 이론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문제의식은 신약성경이 설명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기나긴 이야기와 예언에 기초하여 예수님의 의미를 풍성하고 실제적으로 전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말하자면, 서사를 외면하고 추상적인 이론으로 전락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재미도 흥미도 능력도 실제성도 상실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십가가를 희생제사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도 문제라고 그는 여긴다. 희생제사와 관련하여 그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 구약의 희생제사에서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짐승에게 죄를 전가한 후에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생각은 레위기의 정신과 정반대가 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런 제물은 광야로 내몰리는 속죄의 염소뿐이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은 그 피로써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이 다시 그 백성과 함께하실 수 있도록 만든다. 그 피로써 성소가 다시 거룩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낼 수 있다.
희생제사와 관련하여 톰 라이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마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벌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가져오는 부차적인 개념이 성경의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다고 우려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죄를 전가시키시고 대신 죽게 하셨다는 생각을 그는 이교도의 구원론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 오해될 수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사실 이런 생각에 깊이 물들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희생양을 찾거나 또는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사랑이라고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종교적 폭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영화가 다루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의 근원에는 십자가를 희생제사로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가 있다.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벌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육체 안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모아서 그 위에 지우시고 그 안에서 죄를 멸하셨다. 이것이 로마서 8장 3절의 이야기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벨탑을 무너뜨린 후에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것과 같으며, 또한 파라오가 무장해제 되고 수장된 이후에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과 같다. 또한 바벨론이 멸망하여야 포로에서 돌아오는 구원이 온다.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구원을 받는다. 이런 이야기를 배경에 두고 골로새서 2장 15절을 이해하면 더 실감난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는 말씀을 위의 이야기 속에서 이해하면 그림이 그려진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성경의 설명이 이와 같다.
톰 라이트는 요한복음 전체를 보면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결국 창세기 이야기와 출애굽기 이야기의 재현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출애굽이며 새로운 성전이나 성막의 백성이 탄생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처럼 십자가가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출애굽을 상징하는 표시라면 교회는 예수님이 시작하신 새로운 통치에 동참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하늘의 권세로 사는 것이다. 그 권세는 이 세속적인 권세와 다르며 그것을 압도한다. 십자가는 바로 이 권세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권세의 또 다른 예시는 세족식이다. 세족식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톰 라이트는 설명한다.
이런 관점으로 성경과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는 악한 통치자가 있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종살이 시킨 파라오와 같으며, 그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과 같은 상태다. 그리고 창조의 날에 받은 존귀와 영화를 잃어버리고 강제노역으로 신음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악한 자의 통치 아래 사는 피조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켰다. 낡은 창조세계는 새롭게 지음을 받았으며, 그 백성은 구원을 받아 해방을 누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 그들은 다시 성막과 성전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권세를 가지고 통치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 간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시작하신 일은 혁명(Revolu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성금요일 저녁에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깨우침을 통해서 톰 라이트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하여 톰 라이트는 서구 신학의 세 가지 오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교정하고자 한다:
1. 기독교 신앙을 역동적이게 하는 종말론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꿈을 갖기보다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갈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2. 인간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맡아서 관리하고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 것이 기대되는 존재로 성경은 설명하지만, 서구 신학은 그 동안 인간을 단지 하나님의 도덕시험에 실패한 존재로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3.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설명할 때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시키는 도구나 수단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며 이교도의 신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톰 라이트는 극구 반대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승리이면서 관계회복의 상징이며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며 진정한 통치의 모범이다. 그런 삶을 톰 라이트는 cruciform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주는 삶이며, 예수님처럼 섬기고 대신하는 삶이다.
금년도 2024년 초에 나는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분으로 믿는가를 정리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된다: 구원자 Savior, 후견인 Guardian, 삶의 목적 Life Goal, 롤 모델 Role Model, 그리고 만왕의 왕 King of kings. 톰 라이트의 강연을 듣고 나서 나는 이 단어들은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