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향로봉, 비봉 그리고 사모바위를 거쳐 백운대까지 가려고 목표를 세웠다. 불광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산행로를 찾으려면 주택가를 지나 요리 조리 골목길을 잘 찾아야만 한다. 오전 7시의 서울은 출근하는 직장인을 제외하고는 아주 조용하다. 대부분의 상점이 오전 8시는 되야 문을 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다이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점도 일찍 영업 하는 곳이 별로 없다. 파리바게트를 지나치다가 오늘은 김밥 대신 크림단팥빵을 살까 고민하다가 지나친다. 그런데 길 건너에 수제전문빵집이라고 쓰여진 곳이 있어 들어가 본다. 가격이 1700원 이라고 하니 마음이 동한 것도 사실이다. 둘러 봤는데 먹고 싶은 크림단팥빵만 안 보인다. 주인아저씨에게 물으니 냉장고에서 두개를 꺼낸다. 새로 만든 빵이 아닌지라 조금 찝찝해서 살까 말까 하다가 배낭에 넣었다. 어차피 점심 때쯤 되면 찬기가 없어지겠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빵은 하루 지나면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유튜브에서 산행 길을 알려 주는 영상을 열심히 본 탓인지 설명한데로 가니 이정표가 나온다. 오래된 듯한 허름한 아파트를 끼고 좌측으로 가니 ‘산행로’라고 적혀 있는 계단이 시작되고 ‘조용히 지나 가세요’ 라는 문구가 있다. 등산객들이 몰려 다니면 빠짐없이 들려오는 웃음과 고성 때문이리라.
입구에 들어 서자 마자 우측에는 잘 닦여진 나무 계단이 휴계소를 향해 있고 산행길은 좌측 바로 옆길이다. 15분 정도 걸으니 앞에 가파른 암릉이 있는데 길이 어딘지 종 잡을 수가 없다. 다행히 한 분이 내려 오고 있어서 보니 거의 연세가 80은 된 듯하다. 그런데 그 가파른 길을 스틱만으로 밸런스를 잡으면서 내려 오시는데 그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언제 올라 가셨길래 벌써 내려오세요?” “난 매일 오전 6시면 올라 갔다가 이때 쯤 내려 와요,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오늘 향로봉, 비봉, 문수봉을 지나 백운대 까지 가려고 합니다.” “아이고 멀리 가시네. 다리 쥐나지 않게 천천히 가세요.”그리고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허리를 곧게 펴고는 암벽을 내려 가신다. 한마디로 OMG 이 입에서 터져 나온다.
손발 다 써서 네발로 기듯이 초반부터 기어 오르니 향로봉 가는 길이 나온다. 팻말이 있어 읽어보니 2명 이상만 입산 가능하고 상당히 위험하니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들어 가라고 써져 있다. 향로봉은 보이지도 않는데 2인 이하 출입 금지 줄까지 처 있어서 엄두도 못 내고 바로 내려 왔다. 70쯤 되어 보이는 호리 호리한 분이 내 앞을 지나 가길래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다. 자기는 오늘 문수봉 갔다가 구기동 방향으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아이고 잘됐다 생각에 “제가 좀 따라가도 될까요?”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신다. 자기도 혼자 가려니 적적했는데 잘 됐다고 하시니 마음이 놓인다. 스틱 사용하는 것과 등산화와 배낭이 남달라 보였는데 역시나 이미 백두대간을 두 번 완주 했고 매주 2번씩 빠짐없이 혼자서 북한산 관악산을 번갈아 가며 등산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아까 초입에서 80세 되신 분이 너무 잘하신다고 했더니 자기 나이는 몇 돼 보이냐고 묻는다. 아뿔싸, 이 분도 80이 다 되셨다고 한다. 아니 한국에 등산 하는 분들은 모두 고수들만 산에 다니시나?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워낙 많이 다니셔서 가는 곳 마다 설명까지 해 주신다.
요즘 성문을 모두 개보수 하느라 중간 중간 공사 중인 곳이 많다. 북한산에는 12성문이 있는데 종주 코스를 하면 다 돌 수 있고 거의 16마일 정도 된다고 하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걸어야 할 것이다. 점심 장소로 들어간 곳은 거의 식당 수준이다. 문은 없지만 잘 지어진 건물에 피크닉 테이블이 세개가 있는데 한 테이블에 10명은 앉을 만큼 길고 잘 만들어졌다. 컵라면을 나눠 먹자고 해서 나는 가져온 크림단팥빵 하나를 드렸다. 배가 고파 한입 입에 넣는 순간 너무도 맛있는 크림이 내 입을 행복하게 한다. 수제빵이라 그런가 크림과 팥이 엄청 꽉 차 있었다. 이름있는 빵집만 다녔는데 이제는 자그마한 동네 빵집도 종종 들러 봐야겠다. 라면까지 곁들여 훌륭한 점심을 마치고 커피 까지 한잔 주신다. 내친 김에 오늘 백운대까지 동행할 수 없는지 여쭈어 봤더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오르락 내리락을 얼마나 했던지 다리가 슬슬 피곤해지고 있다. 왼편 높은 바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정상을 향해 한 줄로 오르고 있는게 마치 개미가 이동 하는 듯 줄이 일정하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지지대를 잡고 기어 오르는데 한국의 산은 정말 신비롭기만 하다. 요세미티 해프돔 가는 길목도 줄 서서 기다린다고 했던가. 평일 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10여명의 여성그룹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연신 사진 찍기 바쁘다. 단체 사진, 개인 사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기쁨에 차 있었는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한 여성이 웃으면서 이게 단체의 힘이지 뭐 하며 약 까지 올리는데 전혀 밉지가 않은 것은 동병상련 이랄까…
백운대 바위에 서서 두손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는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 한국 축구가 4강에 올랐을 때 모두 애국자가 되었 듯이 나 역시 북한산 정상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니 눈물이 글썽인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간다. 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서울, 여름이면 구기동에서 과수원을 하시던 큰이모님 집에 놀러가서 북한산을 오르곤 했었는데…정상 바로 밑에 넓다란 바위에서 멍 때리며 쉬고 있는 많은 등산객을 뒤로 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지지대에 매달려 내려간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이미 8마일을 걸어 지친 상태인데 동행한 어르신은 얼마나 걸음이 빠른 지 쫓아 가기 바쁘다. 어느새 나의 롤모델이 되어 버린 어르신과 서로 통성명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