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쿠뜨락] 닭관찰기 1_이태종 요한 신부 / 중국 차쿠사적지_청주교구 주보
닭 관찰기1
개인적으로 강아지를 기르는 것 보다 닭을 치는 것이 좋다. 유년시절, 우리 집이 양계를 했던 추억 때문일까? 나는 어려서 연필을 사러갈 때도 집에 있는 계란을 들고 나갔다. 가겟집에서도 으레 현물시세로 물물교환을 해주었던 것이다.
아마 선친께서 몇 마리로 시작하신 부업이 점점 밭 한 뙈기 전체에 망을 칠 정도로 재미를 보신 듯하다. 그렇지만 양계장 아들이라고 불리지 않은 것과, 또 우리 남매들이 닭에 대해 질리지도 않은 걸로 봐서는 가업으로까지 커진 것은 아니다.
어느 해 봄이었던가? 밥상머리에서 들리는 어른들 말씀이 암탉 두 마리가 알 낳을 시간엔 귀신같이 사라졌다가 저녁모이 때야 닭장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디서 뭐하다 오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은 사실 어린애한테 듣고 말 것도 아니었다. 그날도 그렇게 뒷동산에서 놀던 중이었다. 우연히 양지바른 기슭의 찔레 덩굴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 밑동이 은닉처처럼 희끗거렸을 때 밥상머리의 말씀이 불똥처럼 눈에 옮겨졌다.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신출귀몰하다는 암탉의 꼬리를 잡았다고. 아니나 다를까? 거기엔 스무 개의 계란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보물을 안은 소년은 헤헤거리며 집으로 곧장 개선할 수밖에......
둥지 안의 계란을 보는 낙에 양계를 좋아한다. 양계가 매력적인 것은 매일의 잔반 처리 능력이다. 잡식성이라 채소찌꺼기부터
허연 밥알까지 죄책감 없이 던져준다. 그러면 푸드덕 달려들어 깨끗이 치우고는 다음 날 신선한 계란으로 물물교환 해준다. 그래서 벌써부터 차쿠 뜨락에 닭을 치고 살았다. 그런데 요 암탉들이 여간 신통하지가 않다. 작년에 교구부제님들이 성지순례를 왔을 때였다.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에 ‘첫 마음’을 심자는 취지로 닭장 안에 상록수를 식수했을 때이다. 암탉들이 네 명의 부제 중 가장 훤칠한 훈남한테만 알랑알랑 몰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사인해달라고 조르는 극성팬의 교태였다.
한 술 더 뜨는 것은 내가 묵주를 들고 닭장 안에 들어갈 때이다. 묵주를 들지 않을 때는 그저 닭이 사람 쳐다보듯 하다가는 만다. 묵주를 들고 슬슬 움직여야 얘들이 호들갑을 떨며 일열 종대로 따라온다. 한 줄인 것을 보면 분명 유치원생이기는 한데 애교 떠는 날개 짓을 보면 여고생 급이다. 그러다가 정말 기도가 잘 되면 아예 바짓가랑이에 벼슬을 비벼댄다. 훌쩍 날아 팔뚝에 앉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분심이 들었거나 누굴 미워하는 마음으로 묵주를 들면 하나 둘씩 실실 꽁무니를 뺀다. 이쪽저쪽으로 사라져 금시 한 마리도 없다.
닭이 홰를 치며 새해 아침을 깨우는 이즈음, 아직 성당의 종탑들에 공현의 별이 높고 밝다. 허나, 만민을 예수께 인도하는 별빛이 어디 종탑에서만 빛나랴? 가깝게는 우리네 얼굴에서도 빛을 내리라. 저 미물인 닭들마저도 금방 알아차리는 그런 기도의 빛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