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금원산의 숲과 계곡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가 심상치 않다. 그리하여 여행의 설렘보다는, 날씨에 대한 근심을 단 채로, 지국 사무실에서 류병렬 주임을 만났다. 류 주임은 토박이 ‘거창 사람’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곳’의 주민이 되어, 함께 숨쉬고, 말을 섞고, 서로의 땀 냄새를 번갈아 맡아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류 주임과 같은 토박이 동행인을 만났다는 것은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덕분에 궂은 날씨에 대한 근심을 잠시 접어두고 여행길에 오르기로 했다.
거창에서 가볼만한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류병렬 주임은 주저 없이 ‘금원산자연휴양림’과 ‘수승대’를 꼽는다.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는 금원산 휴양림이요, 거창의 문화적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매년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수승대를 지나칠 수 없다는 말에 따라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고색창연한 유적, 유물과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소나무 숲이 눈길을 빼앗는다. 하천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안개와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하얀 띠구름, 그 이채로운 풍광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십분 남짓 달려 위천면 소재지에 다다른다.
속세의 시름 잊게 하는 금원산의 숲과 계곡
위천면 소재지에서 낮은 언덕길 한 구비를 넘어가자 비구름에 휩싸인 금원산(1352m.)이 신비롭고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금원산은, 저 유명한 남덕유산(1507m)의 한 갈래다. 하늘에 맞닿을 듯한 높은 봉우리와, 끝이 아득한 계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금원산 동쪽 한 자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내친김에, 숲 사이로 난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몰아갔다. 곳곳에 통나무산막, 야영장, 캠프파이어장 등 휴양시설과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짙푸른 숲 사이로 하얀 살결을 희끗희끗 드러낸 화강암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전망이 탁 트인 ‘명당자리’가 나온다. 그곳에 멈추어 서서 잠시 땀을 식히기로 한다.
여전히 가랑비가 흩뿌리고, 골짜기마다 신비로이 안개가 피어오른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숲은 더욱 짙푸른 빛을 내뿜는다. 발아래 한 조각의 구름을 딛고 선 듯하다. 끝없이 펼쳐진, 살아있는 숲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한다. 자연이 빚어내는 장엄한 풍광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바로 ‘침묵’이 아닐까. 그 감동의 여운이 깨질세라 우리는 말을 아끼며, 조심스레 산을 돌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잠시 자운폭포를 둘러본다. 붉은 빛 화강암 너럭바위 위로 부챗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결모양이 마치 노을바탕에 흰 구름이 떠 흐르는 것 같다. 사실 금원산에는 아득한 전설이 서린 기암괴석과 폭포와 용소 등이 지천에 널려 있다. 금빛 원숭이 전설이 서린 ‘금원암’. 옛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였다는 ‘유안청’ 계곡, 엄청나게 몸집이 큰 ‘문바위’, 바로 그 위쪽에 새겨진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국가지정보물 제530호)’,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선녀담’...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지닌 금원산 자연휴양림은 가족과 함께 하는 ‘숲 속 여행지’로는 가히 으뜸이라 할만하다.
자연과 예술의 어우러짐, 수승대와 거창 국제연극제 동행 팀은 금원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승대에 다다른다. 구연동 계곡에 자리한 수승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사신을 신라로 보낼 때 송별하던 곳으로, 원래는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근심으로 보내다’는 뜻이다. 그러던 것을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이곳에 대한 아름다움을 읊은 사율시(四律詩)에서 ‘수승대’라고 부른 것이 효시가 되어 오늘날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수승대가 오늘날 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그곳에서 매년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 때문이다. 올해로 16회째를 맞은 이 축제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화려한 무대가 만나는 여름 시즌 최고의 연극축제다. 낮에는 산과 계곡에서 시원한 휴식을 보내고, 밤에는 야외극장에서 공연되는 전 세계의 연극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산간지역에 세계적인 예술 축제의 꽃을 피워 올린, 아주 독특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동행 팀이 도착했을 때 거창국제연극제는 끝물이었다. 올해 연극제는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17일까지 열렸고 국내외 42개 작품이 막을 올렸다. 주로 늦은 밤에 공연이 있는 까닭에 직접 관람을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하는 마음이 못내 아쉽다. 우리는 내년 여름을 기약하며 다음 행선지로 향하였다.
거창 양민 학살,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에 서다
애초 계획한 세 번째 행선지는 둔마리 고분벽화 유적지였다. 그러나 유물 보호를 위하여 몇 해 전부터 석실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거창박물관에 잠시 들러 고분벽화모형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 신원면 양민학살 현장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거창 주민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슬픈 현대사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끝 무렵인 1952년 2월경, 당시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共匪)토벌작전’을 진행하던 국군 9연대 3대대는, 공비 토벌을 이유로, 박산(朴山)골에서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양민 517명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바로 ‘거창양민학살사건’이다.
거창읍에서 남상면을 지나 자동차로 20분쯤 달리다보면 거창군 신원면 소재지가 나온다. 학살의 현장인 박산 골짜기는 면소재지 바로 뒤편에 있다. 그리고 골짜기 건너편으로는 넓은 터에 높은 추모탑과 초현대식 대형 기념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토록 휑하니 넓은 기념공원을 바라보며 희생된 영령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제1,2추모 묘역과, 박산골 희생터, 그리고 후손들이 쉬쉬하며 만들었다는 두 개의 묘역을 둘러보는 사이에 벌써 어스름한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동행 팀은 착잡한 마음으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뒤로 하고 거창읍내로 되돌아오면서 하루간의 짧은 여정을 정리하였다. 거창은 어느 쪽에서 진입을 하더라도 산을 넘어야만 하는, 어찌 보면 ‘내륙의 섬’ 같은 곳이다. 사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여름엔 매우 덮고 겨울엔 혹독하게 춥다. 눈도 많이 내린다. 그래서 한 겨울철에는 야무지게 눈발이 한바탕 날리고 나면 사흘 정도는 아예 시가지 밖으로 나가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거창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문명의 이기에 침범당하지 않은 깨끗한 동네라는 느낌이 든다. 때 묻지 않은 숲과 천성이 깨끗한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어우러져 사는 까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