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를 읽고
김견남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쓴 채식주의자를 읽고 한동안 그녀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채식주의자는 어릴 때 겪은 폭력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통을 안기는 삶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며 육식을 거부고 채식으로만 생활하기로 결심한 주인공 영혜는 어린 시절에 월남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에게 툭하면 매질을 당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개가 영혜를 물었다는 이유로 오토바이에 개를 매달아 마을을 끌고 다니며 잔인하게 죽인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마을 사람들과 모여 앉아 개고기를 먹었다.
영혜는 그날 피눈물이 고여 있던 죽은 개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인정이 없고 술만 마시면 엄마와 싸우며 온갖 횡포를 부렸다. 그때 영혜는 말없이 맞기만 했고 언니 인혜는 그런 아버지에게 술국을 끓여주며 뒷수발을 들면서 그나마 덜 맞고 자랐다. 슬픔과 상처를 안고 두 자매는 조용하고 평범한 여성으로 성장했다.
영혜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평범하게 사는 걸 최고로 여기며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로 살고자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들은 결혼 5년 차가 될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며 슬슬 아이를 가져볼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혜가 변했다.
영혜는 꿈을 꾸었다며 한밤중에 냉장고 앞에 유령처럼 서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냉장고에 있는 모든 고기와 생선, 계란에 우유까지 다 내다 버린다. 그때부터 영혜는 모든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었고 날이 갈수록 몸이 야위어 간다. 그뿐인가 고기 냄새가 난다며 밤에는 남편이 곁에 오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날 이후 평범을 추구했던 남편은 자신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영혜의 육식 거부는 온 가족의 고민거리다. 가족 모임이 있던 날 친정아버지는 영혜에게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고기를 먹으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한다. 아버지의 폭행은 불을 품는다. 영혜의 뺨을 때리고 우격다짐으로 입안에 탕수육을 밀어 넣는다. 그러자 영혜는 구역질을 하며 탕수육을 뱉어낸 뒤 과도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왼쪽 팔목을 그어 자해를 한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그녀의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그 일이 있고 나서 이혼을 하자고 했고 영혜는 언니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영혜의 형부는 아이의 목욕을 시켜주다가 처제의 몸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아내의 말을 들었던 기억을 되살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처제의 알몸을 상상하며 예술적 영감을 떠올린다. 그는 스케치에 푸른 꽃일 것 같은 점을 엉덩이 가운데에 찍다가 강렬한 성욕을 느낀다. 스케치 속의 얼굴 없는 여자는 처제여야만 했고 스케치 속의 얼굴 없는 남자는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유혹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는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처제의 알몸에 커다란 꽃들을 그려 넣는다. 그것을 보고 만족해하는 처제를 보며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린다. 영혜는 형부의 몸에 그려진 꽃 모양을 보며 자연스럽게 형부를 받아들이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야릇한 비디오 촬영을 하며 둘은 최절정의 오르가슴을 느낀다.
부도덕한 욕망의 추함과 예술적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괴한 순간이다. 언니 인혜는 혼자 사는 동생의 집에 반찬 가지들을 가져다주려고 들렀다가 온몸에 꽃 모양을 그리고 알몸으로 잠들어 있는 남녀를 본다. 그들이 동생과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언니는 경찰에 신고를 한다.
언니 인혜는 그 후 혼자 아들 지우를 키우며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 영혜를 돌본다. 다른 사람에게는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인 그녀도 한순간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아들 지우를 보면서 자살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 한다. 그녀는 무엇이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억척스럽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할 것 같은 사람이 언니다.
어느 누구도 정상은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같은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두 자매. 평범한 것 같았던 영혜는 마음속의 공포와 분노를 치유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영혜는 마음의 상처가 확대되어 육식을 거부하고 급기야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물만 먹고살다가 죽어간다.
젊어서부터 폭군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는 노인이 되었어도 어른이 된 영혜를 자기 방식대로 손찌검을 하고 강제로 고기를 먹인다.
어릴 때부터 현실과 타협할 줄 알았던 언니는 나이가 들어서도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갈망정 겉은 누가 보아도 명랑하고 즐겁게 잘 사는 여인상이다.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상처. 아버지에게 받은 자매의 상처. 치유되지 않고 지나간 그들의 상처, 결국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말았다.
독특한 줄거리이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많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내용의 강렬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한강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11년 전에 책을 완성해서 9년 전에 발간한 것인데 이제 와서 큰상을 타게 된 것이 놀랍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한다. 책을 읽고 난 뒤 영화로 제작된 채식주의자』도 봤는데 책과 달리 영화는 외설스러우면서도 예술적 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은 2016년 맨부커상(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외국 문학작품에 주는 상)에 이어 올해(2024년)는 세계 문학의 상징인 노벨문학상(매년 세계에서 인류의 복지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문학가를 선정하여 주는 상)을 받았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이후 12년 만이고, 아시아 작가로는 한강 작가가 5번째 수상자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으로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강은 한림원이 공개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라며
“한국 독자들,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한강 작가가 앞으로도 많은 작품으로 세계문학계를 주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