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을 보고 김견남
“여기가 지옥이다 야"
개봉하기 전부터 화재를 불러 모았던 영화 ‘귀향’ 을 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제목의 뜻을 알고부터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귀향’이란 단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단순히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 아닌, 귀신귀 자를 써서 귀신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있다는 뜻이 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소녀들의 아픈 이야기.
‘여기가 어디예요’
시골에서 순박하게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14살 소녀 정민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르는 채 또 다른 수많은 또래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소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섭고 사나운 일본 군인들이었다. 소녀들은 그날부터 눈만 뜨면 고통과 아픔이 계속되는 위안부 생활이 시작됐다. 거부하거나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를 하면 가차 없이 혹독한 채찍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평균 나이 16세. 내가 하지 않으면 동료가 죽어 나가거나 미치거나 기절하거나 하는 잔혹한 현실이 계속됐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영화에서는 증언의 100분의 1 정도만 표현했다고 하니 실제는 얼마나 더 끔찍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약소국가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범죄만 있고 인권은 없었던 일제 강점기시절.
아무리 전쟁터라는 상황이 사람의 감정을 마비시킨다 해도 인간의 성욕이라는 것이 그토록 소름끼치고 잔혹할 수 있을까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귀향을 보면 신들린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당은 14살 정민의 목소리로 변해 혼자 살아서 돌아온 노인이 된 영희 할머니에게 여기까지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 장면은 정말 귀신의 몸속에 정민의 영혼이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한풀이 굿이 시작되고 차가운 이국 땅 속에 묻혀있던 어린 소녀들의 시신에서 하나씩... 둘씩... 혼령들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수많은 시신에서 나비 떼가 무리 지어 날아오르더니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비 떼가 멀고 먼 산을 넘고, 넘고, 또 넘어 고향까지 날아서 온다. 그 모습은 마치 소녀들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끼게 해줬다. 극장 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소녀들은 혼령으로나마 찾아온 고향에서 그리운 엄마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고, 사랑하는 고향의 향기를 맡으며 수십 년 전의 어린 시절 소녀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2002년 조정래 감독이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 중에 만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영화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자가 없어 전 세계 각지에서 후원금으로 제작비를 모금했고 연기자들의 재능기부로 14년 만에 어렵게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인터넷 검색에서 강 할머니의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주변은 산인 듯하고 한쪽에 여성들이 트럭에 실려 있다. 총을 든 일본 군인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고 또 다른 쪽에는 구덩이 속에서 불에 태워지고 있는 여인들이 있다.
강 할머니는 그때 일은 죽어서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국땅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다 비참하게 죽어간 우리의 딸들.
16살 때 보았던 그 모습들을 90살이 다 되도록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낸 강 할머니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쳐죽일 늠들!!
그들은 여리고 여린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삼다가 전쟁이 끝나자 모조리 총살시키거나 강일출 할머니 그림에서처럼 불에 태워서 죽였다.
자신들이 한 짓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람의 탈을 쓰고 잔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했던 일본군의 만행은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더 가슴 아팠던 건 위안부 피해자분들 스스로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동사무소에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하려고 갔다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다시 돌아서 나오려고 한다.
그때 동사무소 직원들의 소근 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지역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가 보다”,며 “설사 있다고 한들 누가 미쳤다고 신고를 하겠냐.”는 내용이다.
안 그래도 피해신고를 하려다 용기가 안 나서 돌아가려던 할머니는 그들에게 돌아서며 울분을 토한다. “그래 내가 바로 그 미친년이다”
영화 속 그 직원들도 놀라고, 영화를 보는 나 자신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술래잡기를 하고 아버지의 지게에 올라앉아 노래를 불렀던 14살 어린 정민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이 땅의 수많은 처녀들처럼 혼령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고.... 고향의 향기를 맡는다. 여전히 14살의 어린 나이다.
부모가 끌려가는 자식을 보호하지 못했고 나라는 백성의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누구도 힘이 없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치욕의 과거는 한순간의 생생한 현실이 되어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우리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다시는 이 땅에 이처럼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나부터도 본분을 잊지 말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 20만 명 중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는 고작 238명 그리고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는 46분에서 영화 개봉을 하기 전에 2분이 별세하시고 현재 44분 만이 남아계신다고 한다.
영화를 만든 조정래 감독은 “영령들의 넋을 고향으로 모셔와 따뜻한 밥 한술 올려드린다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위안부는 우리들의 아픈 역사이며 그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말 훌륭하고 용기있는 영화감독이다.
-2016년 어느 날-
첫댓글 글을 읽으니 영화 한편을 본 듯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저 영화 볼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봤는데 ㅎㅎ
세월이 사람의 감정을 느슨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