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차이
송선주
시월 중순이건만 한낮의 햇살은 따끈하다. 남편은 덥다고 에어컨 온도를 낮춘다. 나는 추워 다시 온도를 몰래 올린다. 저녁 무렵, 남편이 느닷없이 “안 맞아 못 살겠네” 하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나도 질세라 “밖에 나가 봐요. 시원해.” 그러자 남편 왈 “내가 홈레스냐?” 하며 밖을 나간다. 살그머니 뒤 따라 나갔더니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전화기를 열심히 들려다보고 있다. 남편이 앉은 의자 옆자리에 가을 햇살 한 자락이 벗하고 있다. 드높은 청자 빛 하늘에 무게 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나무그늘이 시원한 공원에 이웃사람들이 나와 테니스와 농구를 한다. 놀이터에는 미끄럼을 타는 아이, 그네 위에 앉아 흔들리는 아이,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공원이 떠들썩하다.
우리부부는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보는 TV프로그램도 다르다. 남편은 하루 종일 뉴스에 열중이다. 음식도 남편은 짜고 매운 것을 좋아하고 나는 순한 음식을 좋아한다. 아~ 같은 게 있긴 하다. 두 사람 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자 따로 걷고 시간대도 다르다. 빠른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저것 꽃도 보고 하늘을 보며 걷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사십여 년을 서로 맞지 않아도 이 일 저 일 때문에 함께 살아야 했기에 여기까지 왔다. 이제 와서 새삼 남편이 서로 안 맞아 못 살겠다고 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에고 늙은 남자여.
몇 주 전, 남편에게서 계약서를 따냈다. 집을 산다던지 공사를 따 낸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름 하여 ‘생활계약서’이다. 이건 어떤 것보다 내겐 아주 중요한 숨 쉴 공간 확보이다. 생활계약서의 약정은 단순하다. 그 시작은 이러하다.
신문에 한국의 안도현 시인과 박덕규 교수가 오셔서 강연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수필가 박덕규 교수를 적극 칭찬하는 이가 있어 그의 강연을 듣고 싶었다. 오전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강연장을 찾았다. 한 시 반부터 시작하여 여섯시 반에 끝난다고. 정시에 도착했는데 어느새 주차장이 만원이다. 주변 주차 할 곳을 찾아 빙빙 돌다가 여기해도 되나 걱정하며 텅 빈 이웃 식당 안쪽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니 강의실 자리가 꽉 찼다. 틈을 비집어 가져다주는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 덥석 안겨 반겨주는 이가 있었다. 초창기 같이했던 P문인이다. 유달리 정이 많고 의리 있는 그녀다. 여러 낯익은 분들도 있다. 안도현 님 강의에 시인이 바라보는 는. 예; “태풍이 내 커피 잔에 빠졌다.”라고 표현한다. 이북으로 간 백석시인도 알게 되었다.
다섯 시, 강연 중 쉬는 틈을 타서 나왔다. 남편이 평소 해지기 전 들어와야 한다는 소리가 귀 언저리에 맴돈다. 지인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나오는데 우리 창간호 출간 때 문학기행에 같이 간 J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아직도 문학행사가 있으면 기웃거리는 그는 외로워서일까. 어쩌면 나의 기우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너도 나도 모두 외로운 존재다. 모두들 이를 글로 담아내기 위하여 모인 것이리라. 차에 앉으니 그가 녹음한 CD에서 시와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왜 굳이 멀리 있는 교회에 갔느냐.” 남편은 집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화를 내었다. 마주보고 이야기하면 큰소리만 날 테니 카톡으로 속상한 마음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내 설움에 그냥 눈물이 났다. ‘생활계약서’란 타이틀로 두 사람의 이름에 사인을 하여 그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으로 올라왔다.
‘생활계약서’
1 새벽기도에 참여할 것임
2 내가 필요할 때는 가야 할 곳에 갈 것임
이틀 후에 남편이 자기가 댓글을 달아 사인했다고 보여준다.
댓글: 꼭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하고 해지기 전에 들어올 것
오호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른 사람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소릴 웬 계약서씩이나 할 것이다. 옛날 같으면 종이를 찢어 버렸을 터인데 순순히 서명을 했다. 언젠가부터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직접 만들어 보며 먹어보란다. “아 맛있네요. 다음에는 소금과 후추를 조금 적게 넣으면 훨씬 맛있겠는데.” 하면 그러겠단다. 하지만 다음에도 똑 같다. 짜고 매운 것을 좋아하니 자기 입맛에 따른다. 호르몬 변화 때문인가. 집에서 음식 하는 걸 재미있어한다. 저녁이면 현미 쌀과 몇 가지 잡곡을 썩어 씻어 밥솥에 안쳐 놓기도 한다. 나는 아침에 강황가루를 넣고 밥을 누른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아빠가?” 하며 깔깔된다.
세월 탓인가, 조금씩 변하는 우리들의 모습,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이의 적응력이 놀랍고도 통쾌 하다. 생활계약서 덕분에 새벽기도도 열심히 나간다. 어머니 정한 수 같은 새벽기도. 맑은 기운을 심호흡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떨어진 고운 단풍잎을 주어 책갈피에 넣어두듯 애잔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