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바로 알고자 한다면 다만 일체의 형상을 취하지 않고 무심하면 곧 얻게 될것이다 모두 일정한 실체가 없으며 허깨비 환(幻)도일정한 형상이 없으니 이것이 무상법(無常法)이다 시작이 없는 광대한 겁[劫]으로 부터 활동해 온 것과 일체 시간과 장소에 이르기 까지 모두 그대의 본심이며 모두 그대의 본불[本佛]이니 마음 그대로가 부처(卽心是佛)라 하는 것도 또한 이와같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끝내 따로 부처를 구할 수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보리와 열반을 찾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의 성품(自性)은 진실하여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으며 법 그대로가 마음이라는 뜻으로 자 기의 마음이 보리며 자기의 마음이 열반이다. 다만 밖의 부처만을 찾는다는 것은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전을 독송하지 아니하며 부처는 계[戒]를 지키지 아니하며 부처는 계를 범[犯]하지도 아니하며 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또한 선악을 짓지도 않는다.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품을 보라 견성(見性). 만약 성품을 보지 못하면 염불[念佛]하거나 경전을 독송하거나 재(齋)를 지키고 계를 가져도 또한 이익될 것이 없다. 염불은 인과[因果]를 얻고 경전을 독송하면 총명함을 얻고 계[戒]를 가지면 하늘에 태어나고 보시하면 복보(福報)를 얻으나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유위(有爲) 법은 꿈과 허깨비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겁(曠劫)에 본래 생멸[生滅]이 없었거늘 어찌 모름지기 생멸이 저를 멸하거나 생기게 하리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환[幻]과 같아서 본성은 스스로 공[空]할 뿐이니 어찌 제거하려 하리오. 만약 심성[心性]이 형상이 아닌 줄 안다면 고요히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저절로 여여[如如]하리라. 삼라만상이 함께 공[空]으로 돌아가니 다시 空이 있다 집착하면 도리어 병이니라. 모든 법이 본래 스스로 공[空]과 유[有가] 아님이나 범부의 망상으로 사[邪와] 정[正]을 논하니 만약 능히 둘이 아닌 이치로 살아간다면 누가 곧 범부가 성인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세계의 본래의 성품(本性)은 진여의 성품이요 또한 본성 없는 것을 곧 원융(圓融)하게 포함하니 오고 가고 일어나고 멸함이 없으며 유무[有無]도 아니요 어둡고 밝음 명암(明暗)도 아니니 모든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여래[ 如來]를 보고 이름할 만한 이름이 없건마는 참부처라 하니 오직 깨달은 이는 능히 알수 있으나 알지 못한 중생은 오히려 장님과 같음이로다. 진여의 평등한 성품을 보고자 한다면 삼가 마음을 일으키지 말지니 곧 눈앞 목전(目前)이니라. 묘한 이치는 그윽하고 오묘하여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지극히 피곤하게 찾아 쫓지 말지어다. 만약 능히 무심[無心]하면 곧 참된 구함이지만 다시 만약 구함이 있으면 도리어 알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지극한 사람은 그 앞을 도모하지 않고 그 뒤를 염려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지금만 마주하니 생각 생각이 道에 돌아갈 뿐이다.
미혹할 때는 죄가 있으나 깨달았을 때는 죄가 없다.왜 그러한가? 죄의 성품이 텅 비어 있기때문이다. 미혹할 때에는 죄가 없는 것을 죄로 보고 만약 깨닫게 된다면 죄에는 죄가 없는 것임을 알게된다.어째서 그런가? 죄에는 처소가 없기 때문이다. 경[經]에"모든 법은 성품이 없으니 참된 작용을 의심치 말라 의심하면 곧 죄를 이룬다 "하셨다. 왜냐면 마음을 아는 것이 도[道]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마음은 가히 얻을 수 없고 만약 도[道]를 얻으려고 한다면 도[道]를 가히 얻을 수 없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도를 구하여 얻었다고 한다면 모두 사견[邪見]이라 한다. 미혹할 때에는 부처님도 있고 법도 있지만 깨달으면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다, 왜 그러한가? 깨달음이 곧 불법이기 때문이다.수도[修道]는 마음을 멸[滅]하여 도[道]를 이루는 것이다. 단 찰나찰나 가운데에 모두 망상을 부리지 않는다면 곧 살아서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을 증득하고 죽어서는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된다. 눈이 색[色]을 볼 때에 색[色]에 물들지 않고 귀가 소리를 들을 때엔 소리에 물들지 않으면 모두 해탈하게 된다. 눈은 禪門이 되고 귀가 소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귀도 禪門이 된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색[色]의 성품을 보는 자는 항상 해탈을 이루고 색[色] 의 형상을 보는 자는 항상 얽매이게 된다. 번뇌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곧 해탈이이라 말하고 별도의 해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망상이 없을 때에는 하나의 마음(一心)이 바로 부처님 나라요 망상이 있을 때에는 일심[一心]이 바로 하나의 지옥이다. 중생이 망상을 조작[造作]하여 마음을 내기 때문에 항상 지옥이 있지만 보살은 망상을 관찰하여 마음으로써 마음을 내지 않기에 항상 부처님나라 불국(佛國)에 있게 된다. 만약 마음으로써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곧 마음이 공[空]에 들어서 생각마다 고요함 정(靜)으로 돌아가 한 불국토를 지나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게 된다. 만약 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면 곧 선[善]과악[惡]의 두 業이 있어서 천당과 지옥이 있다.그러나 만약 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곧 선과 악의 두 업이 없어서 또한 천당과 지옥도 없으므로 본체가 되는 것은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다.
마음은 범부에게는 있지만 성인에게는 없는 것이다. 성인은 그 마음이 없기 때문에 가슴이 텅 비어 하늘처럼 트이니 마음이 열반을 얻었을 때에 곧 열반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왜냐면 마음이 바로 열반이기 때문이다.
-達磨偈頌(달마대사게송)- 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喘) 심여장벽(心如障壁) 가이입도(可以入道)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의 마음에 헐떡임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이 움직이지 않아야, 가히 도(道)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