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양심
중산 최경수(최규풍)
문학관 시낭송반 종강 회식을 마쳤는데 몇 사람이 남아서 환담하였다. 여자 셋이 툇마루에 앉아서 두리번거렸다. 여성 B 작가의 신발이 사라졌다. 낡은 신발이 남았는데 자기 것이 아니란다. 구두가 해지고 볼품이 없다. 구두가 이것보다 새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렇단다.
"다음 수업에 혹시 신발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우선 이걸 신고 가세요."
"작아서 못 신어요. 내 신을 찾을 거예요."
식당 남자가 슬리퍼를 신고 가시라고 했다. 막무가내였다. 차로 모셔다드리겠다고 하니 몸을 부려버렸다. 혹시 눈이 나쁘거나 무심코 신고 갔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들고 올지 모른다. 비가 내리는데 한달음에 들고 올 리 없다.
회원 세 명이 남았다. 반장인 나하고 여자 총무에 여류 시인 이방환 여사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가지 않고 신발을 찾아내라고 고집하는 여자를 어찌할까.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고 마냥 지켜볼 수도 없다. 같은 여자끼리니 미루고 운전대를 잡았다. 비가 쏟아지는 길을 달리는데 전화가 왔다. 총무다. 주인한테 신발을 내놓으라고 여태껏 외치는데 달래도 소용이 없단다. 주인은 손님들이 불안하니까 진정하시고 그만 가시라고 사정을 한단다.
"반장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놓아두세요. 고함친다고 신발이 돌아오겠어요? 아이도 아니고 딱하네요. 내버려 두고 가세요"
카톡에 신발 사진이 올라왔다. 이 여사가 단체카톡방에 올렸다.
"이 신발 주인은 신고해 주세요. 분실한 분이 울고 있어요."
신발이 돌아올까 반신반의지만 실낱같은 희망이다.
신고 간 여자가 혹시 이럴까?
'신발이 좋아서 신고 왔는데 미쳤다고 신고해?' 그럴 리 없다.
'큰일났네. 너무 마셨어. 바꾸어 신고 왔네. 아이고 창피해. 남들이 알면 주정뱅이라 놀릴 텐데. 어쩔까? 그냥 모른 체 넘길까.'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허겁지겁 한동네 남자 선생님 차를 타려고 서둘러 신은 게 남의 신이네. 어디 사는 줄도 모르는데 다음에 가져가면 되겠지.'
전화가 왔다. '옳거니 신발을 찾겠구나.'
"반장님, 경찰을 불렀어요."
"뭐요? 주인이 불렀지요?"
"아니요. 이 여사가요."
실망이다. 나는 L 강사에게 전화했다.
"신발을 누가 바꾸어 신고 가서 경찰을 불렀답니다."
"누구 신인가요?"
"B입니다."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어른인데 놓아두세요.“
강사도 내 생각이다.
카톡이 떴다. 사진을 본 댓글이 올라온다.
'저는 내 신발을 신고 왔습니다.'
'비닐봉지라도 비치해 놓아야지. 식당 주인이 변상해야지요.'
또 전화가 왔다. ‘오, 진범인가?’ 아니다. 이번에도 총무다.
"경찰서에서 전화 왔는데요. 음식점을 달려오다가 급한 일로 돌아간대요."
"웬 난리요? 경찰관이 바뀐 신발이나 찾아주러 달려오고 그렇게 한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내버려 두고 집으로 가세요. 총무님도 손자 쌍둥이 키우느라 정신없다면서요?"
"예. 그냥 갈게요."
전화가 왔다. 집에 간 총무다. 식당 주인이 강사한테 전화해서 좀 데려가라고 한단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강사님께 말했더니 애도 아니고 놓아두라데요."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도 버티고 주저앉아 있을까? 신발 잃어버린 것이 반장 탓인가. 내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이 들어 잠을 설쳤다.
그로부터 1주일이 흘렀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이ㄱㅇ 시인이 은밀히 내 옷깃을 당겼다. 종이팩을 내밀었다. 구두다. 신발이 주인을 찾아왔다. 남이 들을까 조용히 속삭였다.
"ㅊㅅㅈ 언니가 돌려주래요."
그분은 평소에 한 번도 결석이 없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결석이다. 늘 내게 친절한 분이다.
‘아, 그러면 그렇지. 깜빡하고 신고 갔구나. 알고 그럴 분이 아니야. 미안하고 창피할 거야. 피하지 말고 직접 들고 와서 사과하면 좋을 텐데.’
B 시인이 조금 늦게 교실로 들어왔다. 신발이 든 종이팩을 건넸다. 눈을 치켜뜨고, 누구냐고 물었다.
"좋은 분이에요. 누군지 캐지 마세요."
"내 속을 다 태우고는 진즉 말해야지 이제야 가져와? 도대체 어떤 화상이요?"
"그러게 말이요. 바로 알렸으면 마음 고생을 안 할 텐데, 이제라도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조용히 넘기고 용서하세요."
그분은 자존심이 크다. 창피했다. 1주일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감추고 싶고 밝히기 어렵다.
바뀐 신발이 두 여인에게 어떤 심술을 부리고 마음에 얼마의 상처를 주었을까? 서로가 괴로웠을 것이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솔직해야 한다. 노인이 되면 감각이 어두워진다.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순리다. 용기를 내어 주저하지 말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
늦게라도 돌아온 신발에 가슴이 뜨겁다. 양심의 승리다.
첫댓글 뭣이 중헌디?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 오릅니다. 삶의 표준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늦게라도 찾아서 다행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