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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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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기도할 수 있는데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12년 |
수상횟수 | 제3회 |
출생지 | 여수 |
[수상 작품]
기도할 수 있는데 / 서현성
새로운 천년을 앞둔 새학년 첫날.
우리반 아이들은 마치 첫사랑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25번째 맡는 고3담임이었다. 3학년의 수능달력은 1년이 열두달이 아닌 아홉달이다. 3월부터 11월까지 평생을 좌우하는 시간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활시위를 당기기 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첫 담임시간. 그동안 쌓아온 진로지도의 생생한 경험담을 온마음을 다해 들려주었다.
“얘들아, 지금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단다. 한발한발 걸어가는 과정 그자체가 중요한 거야. 최선을 다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어. 설혹 성과가 더디거나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단다. 선생님이 꼭 함께 가줄게. 어려운 일은 상의해라.”며 진심으로 다독였다. 긴장을 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한 우리반 아이들 모습에서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또 나는 아이들이 지친 친구의 손도 잡아주고 교실 창밖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바라보면서 힘든 수험생활을 견뎌내도록 당부했다. 내 책상 위에는 자기들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이들의 러브레터가 쌓여갔다. 그 바쁜 아이들이 어느 틈에 연습했는지 나의 애창곡 ‘마법의 성’을 화음 넣어 불러줄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교정을 온통 꽃자리로 꾸민 벚꽃에 이어 보랏빛 화관을 쓴 등나무가 꽃을 떨구더니 어느새 주황빛 능소화가 자꾸만 여름을 부채질하며 한 학기가 끝났다. 감사하게도 반 아이들 모두가 심신이 안정되고 차츰 실력이 향상되고 있었다. 이렇게 나가면 잘 될 거야, 느긋한 안도감이 스쳐지나갔다.
그 해 여름방학도 보충수업의 열기와 아이들의 땀으로 범벅이 되어 무더위와 싸우며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꾸만 눈이 침침해지고 안개가 덮인 듯 사물의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더위를 먹은 걸까, 땀과 먼지가 눈에 들어갔나, 아니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걸까. 자문자답하면서 며칠을 보냈지만 회복의 기미는 없고 책 읽기도 불편해졌다. 서둘러 유명하다는 안과들을 찾아 검진을 받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의사는 그냥 그 상태로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기막힌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고3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우리 아이들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 이런 날벼락이라니.
어떤 렌즈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시력 탓에 대학병원에서 3주간에 걸친 각종 검사를 받았다. 만약 황반변성이라면 치료약도 없고 앞으로 시신경도 상해갈 수 있다는 예단뿐이었다. 병명도, 치료방법도, 예후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나는 학생들을 졸업시킨 후 다시 오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의사는 실명할 수도 있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냐며 어이없어 했다. 무슨 거창한 사명감이라기보다는 나를 의지하고 따라와 준 우리 반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 뿐 다른 생각은 파고들 틈이 없었다.
수능은 고도의 심리전이기에 내가 아픈 것을 당분간 비밀로 했다. 내가 흐릿하게 보이는 영어 철자 때문에 어쩌다 더듬거릴 때도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선생님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사랑이 아이들에게 마법의 안경을 씌워준 때문이었다.
어느새 소슬한 가을바람이 교정의 은행나무잎을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저만치 앉아 있는 선생님의 얼굴도,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시침도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워낙 익숙한 얼굴들과 익숙해진 일상이었기에 그런대로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나의 행동반경을 가능한 한 학교와 집으로 한정시켰다.
그 무렵, 우연히 테이프로 듣게 된 ‘기도할 수 있는데’는 선물처럼 내게 다가왔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 매일매일 이 성가를 듣다 보면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오면서 이런 시련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밝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살아온 것 감사합니다. 삼중고를 겪은 헬렌 켈러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면서 간절히 소원했던 그 소소한 일상들을 수없이 체험하며 살아온 것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루었던 기적 같은 일들을 떠올리게 된 것 또한 감사합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아이들은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겨울이 되어 해가 짧아지자, 나의 귀가 길은 가관이었다. 계단에서 헛디디기, 가로수에 부딪칠 뻔하기, 화단 철책에 걸려 넘어지기.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들어섰다.
입시철이 되었다. 어려움은 많았지만 대입성적은 어느 해보다 알찼다. 소신지원이 특성인 수시지원에서 22명 합격.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합격해서 나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드디어 졸업식 날,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자 놀라며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오히려 나의 버팀목이 되었단다. 너희들과 함께여서 선생님은 내내 행복했단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 품을 떠나갔다.
그제야, 나는 다시 찾은 대학병원에서 실낱같은 가능성의 불씨라도 살릴 수 있다면 의사의 어떤 지시도 믿고 따르겠다고 했다. 백내장은 아니지만 시력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원한다면 백내장 수술이라도 해주겠다고 했다.
수술 다음 날, 안대를 풀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환하고 벅찼던가. 그때 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만 뜬 게 아니었다. 잘 안보이던 내 눈은 일상에 떠밀려 가는 나를 돌아보게 했고, 마중물이 되어 내 마음의 눈도 뜨게 해 주었다.
얼마 전 나는 행복한 선생님으로 사십 년 교직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그 세월 동안 졸업시켰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찾아와, 그 옛날 자갈밖에 없는 황무지에 희망이라는 꽃씨를 뿌려준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평생 교사의 길을 걸어온 보람과 감사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 나는 시신경이 손상돼 늘 비상약을 지녀야 하고, 빛이 부족하면 꼼짝도 못하지만 지금 이순간 이 모습 이대로 기쁘게 걸어가리라. 내가 걸어가야 할 그 길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몫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리라. 무엇이 두려우랴, 기도할 수 있는데.
[수상 소감]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겨울나무는 잎도 열매도 다 내어준 채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기도합니다.
축복처럼 함박눈이 내리면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눈꽃으로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에 무척 놀라면서도 참 기뻤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는 단순히 한 편의 글이 아닌 제 분신이기도 합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상은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언젠가는 글로 꼭 풀어내리라 다짐하며 견뎌냈던 저에게 주시는 위로와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부족한 제 작은 글을 뽑아주고 격려해주신 한국수필가협회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좋은 글로, 잔잔한 울림이 있는 따뜻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동안 늘 손잡아주고 제 짐을 덜어주며 함께 걸어와 준 모든 고마운 분들과 백미문학, 작가회 회원님들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작가 프로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백미문학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전 숭신여고 교사.
s-h-esther@hanmail.net
[작품 심사평]
2012년도 올해의 작가상 최종심은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매호에 발표된 작품들에서 예심을 거쳐 12편으로 압축되어 결심을 보게 되었다. 한 편 한 편의 작품을 놓고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심도 있게 심의를 시작했다. 주제의 일관성, 문장력, 독창성, 의미의 형상성, 감동의 깊이를 심사의 기준으로 세우고 논의한 결과 서현성의「기도할 수 있는데」를 올해의 작가상 대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서현성의 수필은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투철한 제자사랑의 자기희생적 투신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게 되는 극한의 긴급한 상황이면서도 입시를 앞둔 제자들의 진로를 걱정하여 몸을 아끼지 않는 스승의 사랑이 가슴 울리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실추되어가는 사도의 정신을 일깨워 참교육자의 아름다운 정신을 만나게 되는 수필이었다. 이외 우수한 작품으로 거론되어진 수필은 강대진의 「비계」와 은종일의 「사점(死點)」, 송복련의 「꿈속의 집」, 심정임의 「세상의 모든 딸들」이었다. 이들 작품이 눈에 띄면서도 아쉬움을 남긴 것은 주제가 선명하지 않거나, 결미부분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 끈질긴 작가정신이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월간한국수필에 해가 갈수록 훌륭한 작품들이 발표되어져 한국수필문학의 밝은 미래가 내다보인다는 총평이었다.
심사위원장 지연희, 심사위원 한동희 최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