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같이 때로는 대나무처럼 - 김명세교수님의 정년에 부쳐
김성규
이제
35년의 긴긴
날개 짓을 접고
둥우리로 내려앉는 엄숙한 시간입니다.
1986년 4월 1일
방사선종양학과가 처음 문을 열고
암환자의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룸이 없는
선생님의 철저함 때문에
초창기 10년 동안 밤 10시 전에
환자가 끝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열악하고 엄두도 못낼 상황에서
생물학 실험실을 열어
선생님의 학문적 진지함 때문에
방사선조사에 대한 기초 실험으로
실험이 있는 날에는
병원에서 몇 날 몇일을
밤샘이 하여야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위암에서 수술중방사선치료를
1990년에 처음으로 시행하였고
1991년에는 대장직장암에 대한
수술중방사선치료를
국내에서 최초로 시행하였고
지금까지 100례를 넘게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앞서가는 뛰어남으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백혈병환자들에게
전신방사선치료를 실시하기 위하여
우리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전신방사선치료 기구를
제작하기 위하여
수십 번도 더
철공소로 아크릴공장으로 다녔습니다.
선생님의 환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1995년에는
온열치료의 국내 정착을 위하여
대한온열종양학회를 창립하시더니
온열치료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온열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학술대회 준비와 학회지 발간으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2000년
경주힐튼호텔에서 열린
제8회 세계온열종양학회는
어쩌면
선생님 인생에서
학문적 여정에서
최고의 꽃이었습니다.
4년 동안 준비과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초인적인 힘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최고의 세계학회가 되도록
경주를 수십 번도 더 다녀왔으며
후원과 준비를 위하여
서울을 수 십번도 더 다녀왔습니다.
2000년 4월 26일 개회식날
세계온열종양학회 회장 김명세는
5월 장미보다 더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학회 준비로 초록집 제작으로
숨막힐 만큼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2005년에는 한국 의과대학 사상
여성으로서 최초의 선출직
학장에 당선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의과대학 발전기금 마련을 위하여
‘영의인의 밤’을 개최하였으며
임상수기센터를 완공하였으며
e-런닝 선터를 개설하여 스탠포드대학과
실시간 강의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며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있는 것이 만물의 이치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은
빛나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며
가슴 설레이게 하는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선생님의 걸어오신 과거 때문에
더욱 빛나는 오늘이게 하소서.
그리고 내내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