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9상
제 29 장 이스라엘과 블레셋 대전
(대 지)
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진함(1)
二. 다윗이 블레셋 군에 가담함(2-3)
三.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에 노함(4-5)
四. 아기스가 다윗을 돌려 보냄(6-11)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진함(1)
. 29:1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쳤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하여 아벡이라는 곳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사마리아 부근)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켜서 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징계하기 위함이다.
二. 다윗이 블래셋 군에 가담함(2-3)
. 29:2-3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둘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의 군대 장관들이 수백 흑은 수천 명씩 군대를 영솔(領率)하고 나아갔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도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모집한 블레셋 군대에 가담하여 아기스와 같이 군대 장관 들의 뒤에서 나아가게 되었다.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가담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나아가는 이 일은 다윗의 일생 중에 제일 큰 실수이고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전장(前章)에서 말한 바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기 위하여 기름을 부으셨는데 그러한 그가 이스라엘의 대적에 가담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치러 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에 가담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빠져 있었다는 것도 전장에서 밝힌 바 있다. 다윗이 블레셋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자기의 입장 때문에 본의 아니게 원수의 군대에 가담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나아가게 되었지만 다윗은 나아가면서도 어떻게 이스라엘과 싸울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다윗이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는가 ? 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자기의 생명과 같이 가장 사랑하는 요나단이 있지 않은가! 다윗이 나아가 싸우면 요나단과 싸워야 되고 하나님의 백성을 죽여야 될 입장에 있다. 요나단은 생명을 내어놓고 자기를 도와주었는데 어떻게 요나단과 마주 서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다윗은 진퇴 양난(進退兩難)의 궁지에 빠졌다.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가담하여 이스라엘을 치게 되면 다윗은 이스라엘 왕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다윗이 원수와 한 패가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웠다면 어떻게 그를 백성들이 이 다음에 왕으로 추대(推戴)하며 공경할 수 있겠는가? 다윗이 울며 겨자 먹기로 블레셋 군에 가담은 하였지만 이것은 다윗의 일생 동안에 제일 큰 곤궁에 처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아를 잡아죽이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것도 큰 죄이지만 그보다 이스라엘 왕으로서 제일 큰 죄는 원수에게 가담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왔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이와 같이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진 것은 그의 신앙이 잠들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신앙에 잠이 들어 본의 아니게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큰 죄를 지을 뻔하였는데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서 죄 짓는 것을 막아 주셨다. 즉 블레셋 군대 장관들이 이 히브리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따라 오느냐고 아기스왕에게 물었다. 아기스는 다윗을 변명하여 말하기를 사울의 신하이지만 망명하여 온 후 한결같이 우리나라(블레셋)에 충성하였고 한 번도 허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며 다윗을 두둔하였다. 이것은 다윗의 블레셋에 대한 충성심을 믿고 전쟁에 참가하도록 놓아두자는 아기스왕의 주장인 것이다.
三.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에 노함(4-5)
. 29:4-11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參戰)에 노하였다. 그것은 다윗이 전장(戰場)에 나아가서는 블레셋의 대적이 되어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자기들을 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즉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한 과거의 실적을 잘 알기 때문에 다윗이 전장에 나아가서 이스라엘 군에 가담하여 블레셋을 대적하고 그것을 계기(契機)로 다시 사울과 화합(和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방백들은 다윗의 참전을 극히 싫어하고 노하여, 다윗의 일행은 왕이 정하여 살게 한 처소로 돌려보내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四. 아기스가 다윗을 돌려 보냄(6-11)
. 29:6-11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블레셋 방백들이 노하자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지 않도록 평안히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이때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서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아기스)의 원수(이스라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라고 항의조로 말하였다.
사울왕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이라고 하여 과거에 두 번씩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은 그 신앙이 다 어디로 갔을까?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지 못하는 것이 몹시 섭섭한 것처럼 말하였다. 다윗이 합당치 않은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심히 연약하여져서 윗사람(아기스)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본심일까? 본심으로야 어떻게 다윗이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하여 안타까워하겠는가? 다윗은 여기서 아기스왕에게 잘 보여야 생명이 유지되겠으므로 본의 아닌 말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다. 믿음으로 나갈 때는 사자와 곰을 찢어 죽였고 골리앗을 단번에 쳐 물리친 다윗이지만 신앙이 잠드니까 말할 수 없이 연약한 가운데 빠졌다. 신앙으로 나아갈 때는 강하고 용맹이 있고 의리가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존중히 여긴다. 그러나 신앙 이 잠들고 연약성에 싸였을 때는 어린아이보다 약하여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다윗의 현재 상태는 왕은 고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랑하지 못한다. 항상 자기는 부족한 줄 알고, 연약한 줄 알고, 전적으로 부패한 자인 것을 알고,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처럼 믿음이 좋고 큰 용사가 이렇게 시험에 빠진 것을 볼 때에 우리도 이런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다윗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빠져서 이렇게 본의 아닌 전쟁을 하러 나갔지만 양심에 많은 가책을 느끼고 될 수만 있으면 이 곤경에서 피할 길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 될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적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사울왕과 자기를 생명같이 사랑하는 요나단을 대적하여 싸울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다윗이 걸어왔던 신앙의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불쌍히 여기시고 건져 주셨다. 군대 장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격동시켜 다윗의 참전을 싫어하도록 만드셨고 마침내 왕에게 항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윗이 전쟁에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기만 하였다면 다윗은 왕이 될 수 없다. 다윗이 망하는 길로 빠져들어 가는데 아주 망하지 않도록 건져내시려고 하나님께서 군대 장관들을 격동시켜 왕에게 다윗을 돌려보내라고 말하게 하였고 왕도 장관들의 말을 들어 다윗을 돌려보내게 만드셨다.
아기스왕이 다윗에게 장관들이 싫어하니 평안히 돌아가라 할 때 "예"하고 잠자코 돌아갔으면 괜찮을 것인데, 아기스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하는 것이 아주 섭섭한 것처럼 한 마디 하여 더욱 수치를 드러내었다.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하게 된 것이 매우 원통한 것같이 "왜 왕의 원수(이스라엘)와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고 한 것을 보면 다윗은 재주가 있는 사람이므로 인본주의를 한 번 쓴 것이다. 이것은 아주 큰 잘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건져내시어 더 이상 죄를 범하여 망하지 않도록 간섭하여 건져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으로 건져 주셨지만 실수한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받았다. 다윗의 신앙이 잠들어 이스라엘의 대적에 가담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려 한 죄값으로 아말렉이 침노하여 시글락을 불사르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다 사로잡아 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징계하신 것이다(30:1-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갈 때 사랑으로 막아 주시고 건져 주시며 죄를 지은 것은 징계하셔서 공의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원수를 격동시켜서라도 우리들을 건져 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하여서나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건져 주시며 직접 감동시켜 건져 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바른길을 걸을 수가 없다. 오늘날까지 걸어 나온 것도 하나님께서 여러 번 우리를 건져 주시고 잘못된 걸음을 돌이켜 주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10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바을 자신이 잘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메섹 도상에서 불러 주시며 하늘의 비밀을 보여 주시고 날마다 주께서 강권(强勸)하여 인도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로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지 않으면 망하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믿음이 잠들 때가 있다. 엘리야 같은 사람도 신앙이 잠들었었다. 우리도 신앙이 잠들고 여러 번 죽을 고비에 빠졌었지만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 것이다. 우리가 사망의 길과 어그러진 길로 잘 걸어가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며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징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것이며 자주자주 징계가 내리는 것은 하나님이 아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연약성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수하면 징계를 하여서라도 회개시키고 바로 서게 만들어 쓰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증거이며 징계를 받아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면 징계를 받지 않은 것보다 유익하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이러한 방법으로 연단시켜 나가시며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신다. 여기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에 잘 이용당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