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 버린 너/김 필로
엄마는 세 번이나 너를 잃었다가 찾았다.
유치원을 가기 전이었으니까
3살~5살 무렵이다.
첫 번째는 시골에 살면서 엄마 사촌 오빠 결혼식으로 영등포에 갔다가 일어났다.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 목동은 판자촌 수준으로 낙후된 동네에 불과했고 골목길은 좁고 미로 같았다.
아침에 잠깐 마트에 들려 물건을 사는 동안 네가 없어졌다.
주위에 있을거라고 혼자서 멀리 가진 않았을거라고 믿으면서도
골목골목을 실성한 듯 한참을 찾아 헤맸는데 생각지도 못한 먼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의 종종 걸음이 빠르다는 걸 알았다)어느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청국장 덩어리를 손에 꼭 쥔 채...
아마 어른들이 준 용돈으로 먹을 수 있는 빵으로 착각했는지 그때 상황이 희미하다.
촌스럽다고 안 입힐려고 했던 노란색 가디건이 막 피어난 개나리 꽃처럼 산뜻해서 금방 눈에 띈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두 번째는 김제를 떠나 부천시 심곡동으로 이사 와서 한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때였다.
동생 하고는 연년생이라 제대로 업어주지도 못하고 늘 엄마 손 만 잡고 다녔다.
주로 중앙시장을 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구경도 했던 그 거리는 상당한 먼거리였다. 거리도 거리지만 횡단보도와 역전 앞 지하상가를 거쳐서 시장 방향으로 빠져나가려면
어른도 힘든 지형이었지만 세 모녀는 탈 없이 껌딱지처럼 딱 붙어 다녔다.
그러던 7월 그 어느 날 유난히 중앙시장이 복잡하고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월 상품 옷가지를 싸게 파는 아울렛매장 밖 진열대의 풍경이었다.
엄마도 현혹되어 눈을 반짝이며 등엔 동생을 업고 (동생은 늦게까지 업혔고 특히 시장 갈 때는 포대기로 야무지게 업었다.) 한 손엔 가방과 너의 손을 잡았지만 어느 틈새도 모르게 놓치고 말았다.
몇 가지 예쁜 티를 고르고 보여주려고 했는데 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하늘이 빙빙 노랳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장 사무실을 찾아가 접수를 하고 파출소에 미아 신고를 했다.
이름과 연락처 인상착의 등을 남기고
어쩔 줄 모르는 엄마한테 아이가 집으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어서 가보라고 한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교회 구역 식구들이 전부였고 소사동에서 쌀가게를 하시는 큰 아빠 가족뿐이었다.
아빠하고는 연락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큰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단숨에 오셔서 골목을 다 찾아다니셨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네가 먼저 큰 아빠를 보았다고 한다.
구역 자매님의 미용실에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큰 아빠를 보게 된 것이다.
큰 아빠 오토바이 앞에 타고 아무렇지 않게 오는 너를 보았을 때 반가움으로 엄마는 엉엉 우는데 너는 너무나 태연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집으로 바로 왔는데 집에 없어서 미용실로 간 것은 엄마랑 동생이 그곳으로 올 걸 예견하고 잠까지 자며 기다렸다고 한다.(구역 예배를 그곳에서 드리기로 했다는 걸 기억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지혜가 있어 그 복잡한 거리거리를 빠져나와 집에까지 무사히 왔는지 너의 두 번째 미아 사건은 영웅담이 되었고 엄마는 아빠한테 두고두고 혼이 났다.
그 세 번째는 동대문 시장에 갔다가 벌어졌다.
그때는 안양시 관양동에 살던 때였다.
집사님의 권고로 함께 동대문 가죽 판매 시장으로 세 모녀가 대동했다.
너는 그래도 컸다고 동생을 챙기고 엄마도 동생 손을 잡았다.
한참 쇼핑을 하다 보니까 또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장의 규모는 컸지만 복잡하지가 않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점을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찾지 못하면 정말 생이별이 될 것 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런데 눈송이 같은 안내 방송이 나왔다.
네 이름과 인상착의를 얘기하며 엄마 되시는 분은 상가 사무실로 안심하고 빨리 오라는...
너는 참 영리하고 이름 그대로 지혜로웠다.
부천 사건 때 만약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시장 사무실에 가서 방송
을 해 달라고 하랬더니 그걸 실천한 것이었다.
그렇게 세 번씩이나 크게 널 잃을 뻔하고 엄마는 별의 별 생각으로 애가 타도 속수무책이었지만 지혜로운 너의 행동으로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생각하면 시골 서포리에 살 때부터 그 시초가 아니었나 싶다.
죽산읍으로 장을 보러 간 엄마 찾아 죽산 다리까지 아장아장 5리 길을 호올로 나섰으니....
너는 공간능력이 탁월하고 거리 감각이 꽤 뛰어난듯하다.
그리고 스무 살
어리석고 무지한 엄마는
너의 손을 또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스무 해가 속절없이 지나고
네 나이 마흔두 살
이제 마음이라도 잡고 싶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삶을
살아도
엄마의 사랑법은
애끊지 않아도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