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가실 채비
위 텃밭 잡초 제거할 계획이었으나, 대붕 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축 처져서 땅에 닿고 있다. 진 녹 잎사귀들이 북새통이다. 너무 힘든가 보다. 가뭄에, 폭염에, 물 건너 꽃나비 습격에, 모기 등 살에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히히, 뫼기는 아닌데, 난데. 며칠 사이에 억지로 버티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혼자 다진 것처럼. 감은 살짝 숨기면서.
비내골 밭에서 가실걷이로 다른 과실수도 있지만 기쁨을 주는 유일한 나무다. 누렇게 익어 가는 감을 보면 희열이 벅찬다. 첫 누른 감이 달였을 때 환희는 감격이었다. 산그늘 늘어지는 상달 어느 날, 달덩이처럼 보였다.어두워 지던 밭이 환했다. 작년에도 백여 개를 따서 지 인분 좀 나눠 주고 양지쪽 단지에 담아 뒀다. 겨울날 오가면서 꺼내 먹는 재미. 맛난 간식 입맛 돌았다.
감나무 심고 3년 차 될 때는 감이 열리지 않았다. 통상 3년 차에 과실은 열린다. 일단 그 기대는 져버렸다. 그래도 내년은 열리겠지. 살아 준 것만도 기특하다 했다. 한 해후에도 없다. 7년 차에 사 꽃이 핀다. 8월 여름 시기에 20여 개가 달렸다. 하지만 날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추락, 상달이 되기도 전에 다 떨어졌다. 실망감. 찾아오는 이들 이구동성으로 약 치지 않으면 하나도 못 얻어먹는다, 한다. 하지만 난 끝까지 약을 치지 않았다. 내가 먹을 보약 감인데 고집부리고 있다.
다음 해 8년 차 때다. 백여 개의 감이 누렇게 달렸다. 상달이 한창일 때까지도. 얼마나 감격인지. 또, 한 고집 농약 절대 사용치 않았다. 약 치지도 않았는데 먹거리가 된 것이다. 두 배 기쁨이다. 여기에 외손주의 초롱초롱한 얼굴이 겹친다. 홍시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숟가락으로 발라 주면 잘도 받아먹는다. 온통 그 생각만이 가득 찬다. 이 나무 만 보면 외손주다, 외손주다 한 이유다.
눈앞이 캄캄했다. 온 밭이 한밤중이 되어있다. 며칠 만에 올라와서 본 모습이다. 환히 밝히던 놈이 사라지고 없다. 빈 가지만 바람에 흔들린다. 아직 덜 떨어진 누른 잎사귀 배만 내놓고. 꼭대기에 여 남 개는 끼치 밥으로 남겼는지 댕 그렇게 달려 있고. 누가 서리 해갔뿐거다. 육자 빼기 문자 막 튀어 나왔다. 진정되어 다시 본다. 이미 저질러진 일 마음 다독인다. 그래도다. 그러면서 애고! 지도 손주 줄라고 따 갔겠지로 돌린다. 제 값어치로만 잘 대해주길 바라면서 울분을 다렸던 감나무다.
축 처진 건 감이 자라나면서 무거워서다. 처서가 지나니 하루가 다르다. 며칠 전 몇 뿌리뿐인 도라지 이랑에서 잡초 제거할 때 좀 처진 걸 봤다. 바지랑대 받쳐 주어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위 다랑이 밭 잡초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3일 정도 지났다. 그새 못 참고 땅까지 내리고 날 좀 먼저 봐 주소 하고 있다.
주변 산기슭 둘러본다. 잡목 눈에 띄는 놈 골라 밑둥치 자른다. 받침대용으로 기다란 나무다. 가지를 받쳐 주려고 보니 온통 난리 난장판이다. 서로 처 지지 않으려고 포개고 찌르고 안고 들이밀고 하고 있다. 하지만 한 뭉치로 같이 다 처져 있다. 전지를 잘해주지 않아서다. 약 치기는 안 해도 가지치기는 해주어야 한다는데. 나는 그도 하지 않는다. 가지치기는 나무를 스스로 약해게 하는 인간 욕심 때문이라고 고집하면서. 너무 뭉쳐있기는 하다. 그냥 계속 두면 스스로 자정하려나. 자연현상으로 맡겨 본다.
가지마다 받침대 받쳐 위로 들어 올려 준다. 이놈들 신나는가 보다. 팔처럼 쫙 벌린다. 엉김은 있지만 조금은 서로 분리가 되었다. 바람길이 생긴다. 문제는 햇볕인데. 자기들끼리 방해도 하지만 동쪽에 가지 처진 소나무가 가리고 있다. 내가 작문 작업에 활용하고 있는 나무다. 이나무도 필요해 있어야 하는데. 내심 갈등 중이다.
올가을 수확 날을 기대해본다. 이 밭에서 가실 건지는 건 무 배추 말고는 없다. 이도 어느 때는 산짐승들 밥이 되기도 하고. 잡곡, 땅속 열매 종은 산짐승들 분란으로 포기 중이다. 겨울 동초용 채소 준비하는데 이걸 또 다른 가실걷이라고 나 혼자 우긴다. 시간과 겨룸으로 파생한 호작질이니. 오늘 하루 일을 조금 변화를 주었다. 체취보다는 도움 쪽으로. 달랑 하나뿐인 가실걷이 채비로. 환한 상달을 기대하면서다.
어름 문학 9집 출품작 22.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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