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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수행에 대한 가르침 제 2장
제 2 장 수행자를 위한 예비적인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3가지 익혀야 할 것(삼학)이 있다.
도덕적인 행위(계)를 익히는 것.
마음 집중(정)을 익히는 것,
그리고 지혜, 통찰 또는 깨달음(혜)을 익히는 것.
도덕적인 행위를 지켜 나갈 때 그것은 말과 행동을 삼감을 의미한다.
이는 곧 재가자의 경우에는 최소한 5계 또는 8계를,
상가(승려 집단)의 경우에는 227계 또는 별해탈別解脫(paṭimokkha)이라는
지켜야 할 규범을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별해탈別解脫 몸이나 입으로 짓는 악업을 따로따로 해탈하는 계법戒法]
우리가 온전치 못한(unwholesome; akusala 不善)행동과 말을 삼갈 때 이 계들을 온전하게 지니는 것이다.
5계를 지닐 때 우리는 살생, 도둑질, 잘못된 성행위, 거짓말
그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어떤 종류의 술이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 해야만 한다.
첫 번째 계인 살생을 삼간다는 것은 온전치 못한 행동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 계인 도둑질과 소유자가 주지 않은 물건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것을 삼간다는 것도
온전치 못한 행동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세 번째 계와 다섯 번째 계인 잘못된 성행위를 삼가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을 삼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온전치 못한 행동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네 번째 계인 거짓말을 삼가는 것은 잘못되고 온전치 못한 말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온전치 못한 말과 행동을 피한다면 우리는 戒(sīla)를 완전하게 지니게 될 것이다.
집중 수련기간 동안에는 8계를 지녀야만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보다 많은 시간을 수행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의 계는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는 것이다.
이 시간 동안에 어떤 종류의 음식도 삼가 해야만 하지만
꿀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레몬주스와 같은 과일 주스는 먹을 수 있다.
일곱 번째 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춤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 것
그리고 꽃이나 향수 등을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삼가 해야만 한다.
여덟 번째 계는 높고 사치스러운 침구를 삼가는 것이다.
8계 가운데의 세 번째 계는 단지 잘못된 성행위가 아니라 모든 성행위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들을 피함으로써 여러분의 말과 행동은 청정해진다.
이것이 집중 수련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지녀야만 할 8계이다.
8계를 지니는 것은 도덕적 행위의 정화(戒淸淨 sīla-visuddhi)를 의미한다.
계청정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서 향상을 이루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도덕적인 행위(戒)가 청정해졌을 때 절대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이 없을 때 그의 마음은 안정되고 따라서 그는 어렵지 않게 마음 집중(定)을 얻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꿰뚫어 보는 지혜(慧)가 생겨날 것이다.
비파사나란 무엇인가 ?
비파사나(Vipassanā)는 두 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법(Dhamma)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비(vi)’라는 말은
마음과 육체의 3가지 특성인 무상, 불만족 또는 고, 무영혼, 무아 또는 에고가 없음을 말한다.
‘파사나(Passanā)’라는 말은
바른 이해 또는 깊은 마음 집중을 통한 깨달음(realization),
또는 마음(名 nāma)과 육체(色 rūpa)의 3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뜻한다.
비파사나 수행 또는 마음 챙김 수행을 할 때 그 목적은 현상의 3가지 특성인 無常, 苦, 無我를 깨닫는 것이다.
마음과 몸의 이 3가지 특성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탐욕⋅욕정⋅욕망⋅갈망⋅분노⋅악의⋅질투⋅아만⋅혼침과 수면⋅슬픔과 걱정⋅들뜸과 회한 등과 같은 온갖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번뇌들을 없애 버렸을 때 우리는 해탈 또는 괴로움의 소멸을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이 번뇌들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남아있는 한 우리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경험할 것임에 분명하다.
번뇌는 괴로움의 원인이기 때문에 번뇌가 제거되어 버릴 때 온갖 괴로움도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네 가지 요소(四大)에 대한 마음 집중
수행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하나의 그리고 모든 정신적·육체적 과정들을
그것들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관찰해야만 한다.
수행(좌선의 경우)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우리는 대장로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시켜야 한다.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은 대념처경(Mahā Satipaṭṭhāna Sutta)에 따른 것이다.
이 경에는 4가지 요소에 대한 마음 챙김에 관한 부분이 있다.
거기에서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4가지 요소(地界 땅의 요소 pathavi-dhātu, 水界 물의 요소 apo-dhātu, 火界 불의 요소 tejo-dhātu, 風界 바람의 요소 vayo-dhātu)가 발생할 때 그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챙기라고 가르쳤다.
이 4가지 요소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육체적 현상들도 관찰해야만 한다.
우리는 땅의 요소(地界)가 실제적인 땅(地)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대신에 그것은 ‘땅의 요소’의 참된 본질을 가리킨다.
땅의 요소란 딱딱함(hardness), 부드러움(softness) 등과 같은 그것의 개별적인 특성에 주어진 명칭이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딱딱함, 부드러움이 ‘땅의 요소’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특성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몸의 어느 부분에서 딱딱함이나 부드러움을 자각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땅의 요소의 참된 본질 또는 개별적인 특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의 요소(水界)는 실제적인 물(水)이 아니라 그 요소의 개별적인 특성에 주어진 명칭이다.
유동성과 팽창성이 ‘물의 요소’의 특성들이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몸의 어느 부분에서 유동성이나 팽창성을 자각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물의 요소를 자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의 요소(화계)는 실제적인 불(화)이 아니라 그 요소의 독특한 특성을 말한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불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이다.
바람의 요소(風界)도 마찬가지로 바람(풍)이 아니라 ‘바람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에 주어진 명칭이다.
그 특성이란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의 움직임⋅동작⋅떨림 또는 지탱해 주는 힘(support)을 말한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 움직임⋅동작⋅떨림 또는 지탱해 주는 성질을 느끼고, 자각하고, 바르게 이해할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바람의 요소를 자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일체지자이신 부처님은 “어떠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과정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과정에 마음을 모을 때
처음에 어느 대상을 관찰해야 하는가 모를 때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장로 마하시 사야도는
수행자들에게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과 함께 수행을 시작하라고 가르쳤다.
숨을 들여 마실 때 복부는 불러오고 숨을 내쉴 때는 복부는 꺼진다.
우리는 이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복부가 불러올 때 우리는 그것을 ‘일어남’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복부가 꺼질 때, 그것을 ‘사라짐’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복부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밖으로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수행자는 이러한 ‘바람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을 완전하게 자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수행자들은 사람이니 존재니 영혼이니 하는 잘못된 견해를 깨 버릴 수 있다.
수행자들은 복부 안쪽으로의 움직임과 밖으로의 움직임 또는 복부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서 관찰해야 한다.
여러분이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는 수행을 하는 동안에
알아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큰 소리를 들었을 때
여러분들은 ‘들음, 들음, 들음’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여러분은 그 (시끄러운) 소리를 이겨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이 ‘들음, 들음’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여러분이 (소리를) 알아차리는 일을 그만둘 만하다고 생각될 때,
여러분은 일차적인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어떤 때는 소리가 1-2초 동안 지속될는지도 모른다.
소리가 사라져 버렸을 때, 여러분들은 평상시 알아차려야 하는
일차적인 대상인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갈 것이다.
정신적인 상태와 감정적인 상태에 대한 마음 챙김
여러분이 행복함이나 불행함을 느낄 때 또는 유감스러움이나 슬픔을 느낄 때,
이러한 감정적인 상태도 있는 그대로 ‘행복, 행복’, ‘불행, 불행’ 또는 ‘슬픔, 슬픔’하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서 관찰해야 한다.
감정적인 상태가 사라지고 난 후, 알아차리는 마음은,
평소 관찰해야 하는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온다.
여러분의 마음이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을 놓쳐 버리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일이나, 가족, 친척들에 대해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복부의 움직임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헤매는 생각을 관찰하면서 마음으로 ‘생각, 생각’하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이 점에서 여러분은 아주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여러분이 어떤 정신적인 상태나 감정적인 상태를 관찰할 때 여러분의 알아차리는 마음은 활기 있고
주의 깊고 정확하고 어느 정도 민첩해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그 알아차리는 마음이 지속적이고, 끊어짐이 없고
항상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강해질 때 생각이나 관념 또는 생각하는 마음은 저절로 멈추어 버린다.
그때 알아차리는 마음은 더 이상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 없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평상시 알아차려야 하는 복부의 움직임으로 되돌아온다.
걷는 수행(行禪)
부처님은 걷고(行), 서고(住), 앉고(坐), 눕는(臥) 네 가지 동작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걷고 있을 때에는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한다.
서 있을 때에는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한다.
앉아 있을 때에는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한다.
누워 있을 때에는 그 동작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야 한다.
따라서 모든 자세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수행자들이 걷는 수행(行禪)과 앉는 수행(坐禪)을 번갈아 가며 실행하라고 지도한다.
그래야 그들은 보다 쉽게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걷는 과정과 앉는 과정에 대한 지혜(insight)를 얻게 된다.
매번 (좌선을 하기 위해) 앉기 전에는 걷는 수행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걷는 수행에서의 발의 움직임은 앉아 있을 때의 복부의 움직임 보다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수행이 점차 향상되면 그때는 걷는 수행보다도 앉는 수행을 오랫동안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비파사나 앎(Insight Knowledge)의 제 6단계에 이르게 되면 걷는 수행보다 앉는 수행을 더 오래 하게 될 것이다.
앉는 수행을 2-3시간 동안하고 걷는 수행은 1시간 정도로 하게 될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여러분의 마음 집중은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소멸을 자각하는데(명색소멸지) 충분할 만큼 좋고, 깊고, 강하다.
하지만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에는 좌선보다 행선을 오래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는 없더라도 오랫동안 걸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좌선할 때보다는 행선할 때 어느 정도까지의 마음 집중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여러분은 발걸음을 알아차리면서 걷는 수행을 해야 한다.
왼발을 내딛을 때, ‘왼발’ 하고 알아차린다.
오른발을 내딛을 때, ‘오른발’ 하고 알아차린다.
이런 식으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또는 ‘걸음, 걸음’ 하고 알아차린다.
명칭 붙이기나 이름 붙이는 것은 발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마음만큼은 중요하지는 않다.
여러분은 발의 움직임에 대한 알아차림, 예리한 알아차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걷는 수행을 할 때,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대신에 (편안하게 보통 상태로) 눈을 반개해야 하며 여러분 발 앞의 1-1.5미터 전방 바닥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머리는 앞으로 너무 수그려서는 안 된다.
고개를 너무 수그리면, 목과 어깨에 바로 긴장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생길 수도 있다.
발을 바라보아도 안 된다.
만일 발을 바라보면 발의 움직임에 제대로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마음은 눈과 함께 움직여서 여러분의 마음 집중은 깨지고 만다.
누군가 여러분 앞으로 다가오거나 지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 여러분은 쳐다보려고 하는 경향이나 욕구가 생길 수도 있다.
쳐다보려고 하는 경향이나 욕구는 즉시 관찰되어야 하며 ‘경향’ 또는 ‘바라보려고 함’ 하면서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한 경향이나 욕구가 사라지면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 집중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주변을 둘러보지 않도록 주의해서 여러분의 마음 집중을 지속시켜 나가고
걷는 수행을 통해서 마음 집중을 이루는데 향상을 이루도록 하기 바란다.
여러분이 손의 위치를 바꾸어야겠다고 느꼈다면 바꾸어도 좋으나 마음을 챙기고 해야 한다.
(손의) 자세를 바꾸려고 하는 의도가 생겨났을 때
여러분은 (먼저 그 의도를) ‘의도함, 의도함’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꾸면서
자세를 바꾸는 행동에 따르는 모든 행위와 움직임은 관찰되어져야 한다.
어떤 움직임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마음 챙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여러분의 손의 자세를 바꾸고 난 후 여러분은 다시 전처럼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좌선의 경우에도 역시 어떤 이들은 적어도 45분 동안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초보자들은 최소한 20-30분 정도는 자세를 바꾸지 말고 앉아 있어야 한다.
만일 초보자가 (주로 다리의 어느 부분에서) 생겨난 심한 통증을 참을 수 없을 경우에
그는 자세를 바꾸었으면 하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자세를 바꾸기 전에 먼저 자세를 바꾸려고 하는 의도를 ‘의도함, 의도함’ 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세를 바꾸는데 따르는 모든 동작과 행동을 알아차리면서 아주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자세를 다 바꾸었으면 다시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으로 돌아와서 평상시처럼 알아차려야 한다.
침묵 속의 알아차림
집중 수련기간 동안에 어떤 행동이나 움직임도 빠르게 해서는 안 된다.
가능한 만큼 모든 행동이나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매 순간 몸의 움직임이나 행동에 마음 챙김을 적용시킬 수 있게 된다.
가정에서는 이러한 모든 행동과 움직임을 천천히 할 필요는 없으며
평상시대로 하되 마음을 챙겨서 관찰해야 한다.
모든 행동과 움직임은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서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일상적인 마음 챙김이다.
집중 수련기간 동안에는 모든 행동과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과 몸의 모든 행위들에 대해
마음 챙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몇 마디 말도 천천히 부드럽게 해야 하며 이 말 때문에 다른 수행자들 마음 집중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모든 일들을 아주 소리가 적게 또는 아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신을 끌거나 몸이 축 쳐져서 걸으면서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고 있다면 걸으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마음을 챙겨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라도 알아차려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모든 먹는 행동과 동작에 대해서 마음을 챙겨야 한다.
목욕을 할 때, 옷을 입을 때, 물을 마실 때, 여러분은 모든 행동을 천천히 해야 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앉을 때에도 모든 앉는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아주 천천히 앉아야 한다.
일어날 때에도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아주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과정을 그 참된 본질에서 자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신적·육체적 과정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즉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생겨났다가는 없어져 버린다.
우리는 정신적·육체적 과정들의 이러한 참된 본질을 자각하기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움직임을 천천히 해야 한다.
마음 챙김(念)과 마음 집중(定)은 지혜(慧)가 펼쳐지기 위한 길을 장엄해 준다.
마음 챙김이 이어질 때 마음 집중은 자연스럽게 더욱 심화된다.
마음 집중이 더욱 심화될 때 지혜는 저절로 펼쳐진다.
따라서 우리는 끊어짐 없고 지속적인 마음 챙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