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슬레이트 밀집 마을 등 고통 커…부산시는 추경 예산 5000만 원도 빼
암을 일으키는 물질인 석면이 시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여러 경고에도 부산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석면이고, 우리나라에서 충남 다음으로 석면 환자가 많은 부산이다. 부산보건환경연구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부산의 석면 노출 우려 지역 15곳을 추적 조사한 결과 4곳의 토양에선 검출빈도 90% 이상 확률로 석면이 발견됐다고 한다. 노후 슬레이트 밀집 지역이나 수리조선소 일대에서 10번 검사 하면 9번 검출된다는 이야기다. 비록 당장 인체에 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라고 하나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 우려가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하는 또다른 증거다. 그러나 부산시는 7000억 원대 1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서 석면 관련 예산을 제외했다.
부산보건환경연구원 조사에서 석면 검출빈도가 90.0~96.8%에 이르는 4곳은 연제구 물만골 마을, 동구 성남오길(수정동 79) 일대, 사하구 다대동 및 감천동, 영도구 남항동 및 봉래동 등이다. “흙 50g을 채취하면 석면이 미량 나오는 정도이나 최근까지 검출된다는 것은 오랜 세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라는 연구원 관계자의 지적에 주목한다. 해당 지역 주민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수정동 79 일대는 100세대도 안 되는 작은 동네이지만 2019년부터 석면 피해 인증자 54명, 폐암 특별 유족 3명이 나왔다. 노후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30년 넘게 살아온 주민이 대부분이다. 영세 수리조선소가 밀집한 영도와 사하구 사정도 만만찮다. 이들 조선소가 주로 처리하는 러시아 선박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선박에 석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러시아는 석면 생산 세계 1위 국가로 지금도 선박에 석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석면 유관 기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는 대면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대면 홍보를 할 인력과 예산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산 16개 구·군 행정복지센터, 노인복지관 등 지역사회가 함께 석면 검진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부산보건환경연구원은 수리조선소 작업장 환경 개선을 권고했다. 주요 석면 배출 원인인 노후 선박 수리 작업시 비산먼지 저감 조치 실시 등이다. 작업자와 주민 건강 피해를 막기 위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지만 쉬운 일이겠는가.
부산시가 이같은 현장의 다급한 조치와 대응을 얼마나 절실하게 여기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가 1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석면 기초 및 정밀 검사에 사용할 예산 5000만 원을 빼버렸기에 하는 말이다. 시는 지난해 2억1000만 원이던 석면 피해자 발굴을 위한 건강검진 예산을 올해 1억6000만 원으로 줄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석면 대책을 재검토하라는 지적을 받은 데도 불구하고 5000만 원을 추가로 확보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