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 1장은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기록한 내용입니다.
* 금강경 1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 째 나오는 "여시아문"과 뒤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상 생활상입니다.
* 여시아문이란 꾸밈이 없이 있는 그대로 듣고 기록을 했다는 뜻입니다.
* 절에 있는 종을 치면, 우리나라 사람은 "땡땡"이라고 듣고, 일본사람은 "강강"으로 듣린다고 합니다.
* 절에 종소리가 땡땡으로 들린 것도, 개인의 분별 의식 때문이요.
* 강강으로 들리는 것도 개인의 관념에서 일어나는 분별 의식 때문입니다.
* 무심한 마음으로 들어야만이 정확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꾸밈없이 들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무심입니다.
* 무심한 마음, 분별이 없는 의식, 꾸밈이 없는 마음으로 들어야만이 올바른 종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들으려면 마음이 열리어서 깨달아야 합니다.
* 기독교의 용어로 말하면 "진리로 거듭나야" 합니다.
* 금강경을 기록한 부처님의 제자는 자기의 뜻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듣고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꾸밈없이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했으니, 누구든지 금강경을 읽고 깨달으면, 부처님처럼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 부처님의 많은 제자와 함께 부처님이 설하신 경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 부처님의 제자는 인터넷에 있을 테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자가 많다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 제자가 아무리 많아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이 설하신 금강경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 부처님처럼 깨닫고 나면,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법을 설할 때는 자리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 깨닫지 못할 때는, 육체를 자기 자신으로 잘못 알고 있는 욕망의 마음에 따라서 행동을 하지만.
* 진리를 깨닫고 나면, 순수한 본능의 마음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 예수님은 깨닫은 후에 마음을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 어린아이는 꾸미거나, 거짓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생활을 합니다.
* 예수님은 젖먹이 아이를 보자, 그 아이를 비유하여서 ,천국 또는 진리의 세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 꾸밈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사용하는 "젖먹이 아이" 같은 마음이라면,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는다는 겁니다.
젖먹이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 즉 꾸밈이 없는 마음, 분별이 없는 마음을 사용하는 자의 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다.
* 어른은 욕망의 마음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그래서 어른은 자기가 미워했던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면 순수하지 못해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 순수한 어린아이는 처음보는 아이를 만나도 오랜친구처럼 잘 놉니다.
* 어른은 속으로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어떻까, 온갖 생각을 굴려가면서 사람을 사귀게 됩니다.
* 어린아이의 마음은 본래의 마음, 홀로의 마음, 독생의 마음을 사용하기에 순수한 마음의 세계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묻습니다.
* 다른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니.
* 어리석은 제자들은 "그럼 우리도 어머니의 자궁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야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 어리석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저렇게 도로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 어른들은 육체에서 나오는 욕망의 마음을 사용하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 못해서, 상대적인 마음을 사용합니다.
* 상대적인 마음은 바로 순수하지 못한 욕망의 마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망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욕망의 마음을 물로 비유하면 "흙탕물"에 비유를 할 수가 있습니다.
* 욕망의 마음이 흙탕물이라면, 순수한 마음은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드러나는 맑은 물이 됩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참 하나님은 항상 너의 안에 있다"고 하신 겁니다.
* 마치 흙탕물의 안에 맑은 물이 항상 함께하고 있듯이, 욕망의 마음이 사라지면, 죽음이 없는 순수한 마음(영)이 나타납니다.
순수한 마음이란 바로 상대적인 것이 없는 본래의 마음(온전함 마음)을 말합니다.
* 둘은 상대적인 숫자입니다. "낮은 것의 반대가 높은 것"입니다. 이렇게 둘로 나뉘어진 마음이 상대적인 마음입니다.
* 이런 둘의 마음으로는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 진리의 세계(천국)에 들어가려면, 상대적인 둘의 마음에서 오직 홀로 존재(독생)하는 하나의 마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너희가 둘에서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항아리를 보면, 안과 밖이 존재를 하는 둘의 세계, 즉 상대적인 것으로 존재를 합니다.
* 항아리가 모양으로 존재를 하니, 안과 밖으로 둘로 나뉘어 집니다.
* 항아리를 부수어 버리면, 안과 밖은 사라져서 오로지 하나로 존재를 합니다.
* 모양으로 존재를 하는 것은 모두 다 상대적인 세계의 것입니다.
* 상대적인 세계는 영원하지 못하고 부서지고 흩어집니다.
* 건물은 상대적으로 존재를 하기에 , 때기 되면 영원하지 못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것입니다
* 사람의 육체도 상대적으로 존재하기에, 태어나면서 늙고 변화여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 사람도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상대적인 육체의 나에서 , 영원한 본래의 마음(영)을 찾아야 합니다.
* 본래의 마음을 찾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불교에서는 부모미생전 나라고 합니다.
불교에 보면, "전강스님"은 깨닫고 이런 오도송(깨달음의 시)를 읇습니다.
* 전강스님의 오도송을 잠깐 해석해 보겠습니다.
* 어제밤이란 깨닫지 못했을 시에는 달빛이 누각에만 있었다는 겁니다.
* 누각이 아닌 곳에는 달빛이 없어서, 달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둘로 존재를 했다는 겁니다.
* 오늘 깨닫고 보니, 창밖(참나)은 온통 갈대꽃이라는 겁니다,
* 달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에서, 즉 온세상이 갈대꽃처럼 하나의 세상이 되었다는 겁니다.(홀로의 세계)
* 둘의 상대적인 세상에서 오로지 하나로 존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갈대꽃에 비유를 해서 말한 것입니다.
* 눈이 오면 온 세상이 하나의 세계처럼 하얗게 되지요.
* 깨달으면 참 자신(영/온전한 마음)의 세계가 이렇게 보입니다.
* 부처님은 이런 세계를 반야심경에서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였지요(공즉시색)
* 이런 세계만이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참나)를 찾고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가 깨닫기 전에는 마리아가 준 육체에 붙은 이름입니다.
* 예수님이 깨달은 후에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는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참나)참 하나님을 명칭하는 이름입니다.
* 이곳의 이름을 : 참나 = 참 하나님 = 나(영) = 진리 = 천국 = 영원한 생명 ... 등으로 불리어 집니다.
* 창밖의 세계로 둘로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세계가 둘로 존재하는 상대적인 관념(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을 예수님은 " 내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본다"고 표한 하였습니다.
남의 티(단점)가 보이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 남의 티(단점)가 보이는 것은, 나(내) 속에는 티보다 더 큰 것이 들어있기에 남의 것을 보니 그것이 작게 보이는 겁니다.
* 반대로 내 속에 작은 것이 들어 있다면, 이번에는 남의 것이 크게 보이게 됩니다.
* 남의 것이 작게 보이는 것이든 크게 보이는 것이든, 그 원인은 내 속에 어떤 관념(기준)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겁니다.
* 이런 마음이 바로 둘로 존재하는 상대적인 마음이요. 죽음으로 가는 마음입니다.
* 영원한 마음, 영원한 생명(영)은 둘로 존재를 하지 않고, 오로지 홀로, 독생으로 존재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깨닫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 아버지란 바로 참나(영)를 말하는 것입니다.
*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은 둘이 없기에,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 남의 단점이나 어떠한 것을 판단하여 심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여호와는 가짜의 하나님이기에, 사람의 행실을 보고 판단하여 죽이거나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진리의 참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기에 누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 오로지 홀로 존재하기에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 둘이라면,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지만, 홀로이기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 오로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참 하나님은 오로지 사랑이라"고 하신 겁니다.
다시 전강스님의 오도송을 보겠습니다.
* 창 밖의 세계가, 달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둘로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세계가 둘이기 때문입니다.
* 창 밖의 세계가 온통 갈대꽃처럼 하나로 보이는 것은, 내 안의 둘이 사라지고, 하나인 진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내 안의 기준이 사라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 부처와 조사로 나뉘어 지는 것도, 내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요.
* 깨닫고 보면, 부처도 사라지고, 조사도 사라지고,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곳이 나타납니다.
* 그래서 전강스님이 "부처와 조사도 신명"을 잃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자(거듭난 자= 산자= 깨달은 자) 만이 볼 수 있는 세계
* 예수님은 본래의 마음, 죽음이 없는 마음, 깨달음의 세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그곳을 일러서, 진리, 천국, 영원한 생명, 홀로, 독생, 아버지, 참 하나님...등으로 부릅니다.
* 여호와처럼 모양이 있어서, 모세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한 여호와는 가짜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 그래서 "진리는 구약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부터 나왔다"고 하신 겁니다.
* 진리의 세계(참나)는 본래부터 모양이 없으니, 전강스님도 모양이 없는 곳을 명칭할 수가 없으니 아래처럼 말을 한 것입니다.
* 모양은 없지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보는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말하지 않고, 아래처럼 표현을 한 것입니다.
* 진리를 깨달은 자, 즉 모양이 없는 참 사람은 "지금 다리 위를 지나고 있다"는 겁니다.
* 참으로 멋진 오도송입니다.
부처님도 깨닫고 나서 꾸밈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바로 금강경 1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깨닫고 나서 꾸밈이 없이 생활하는 모습이 바로 여기에 나옵니다.
* 밥 먹을 때가 되니, 옷을 입고, 사위성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서 먹었다는 겁니다.
오늘 금강경을 보고, 인연이 있으면 아래의 동영상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자가 있을 겁니다.
* 저 영상을 보고 또 보세요. 혹시 인연이 있으면 깨달음을 얻을 겁니다.
* 핵심은 밖의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보이면, 그는 깨닫지 못합니다,
* 대신 내 안에 있는 온갖 관념들이 순식간에 싹 무너지면 홀로의 세계가 됩니다. 즉 깨닫게 됩니다.
원효스님은 해골물을 마시고 둘의 세계가 사라져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 깨닫기 전에는 내 안에 "더러움과 깨끗함"이 둘로 존재를 했는데. 깨닫고 보니,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어라.
* 더러움과 깨끗함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더라.
" 한 생각이 일어나니, 만가지 생각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 가지 생각이 사라지더라"
한글이란 무엇인가?
* 훈민정음을 발표할 때, "이미 한글이란 이런 것이다"며 한글을 사용한 글이 등장합니다/
* 이와 같이 "금강(영)" 의 쓰임 이란 무엇이냐 하면,
* 금강경 1장에서 " 부처님이 걷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그 자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