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 나무 사계를 보다 / 출품작
겨울 마지막 시기에 버찌나무 엄청 큰 가지 둥치 하나가 본 둥지에서 단락 되어 떨어졌다. 그 자리에 말거머리 하게 새살의 빛 선명하다. 고통, 시간이 지나야 아픔의 흔적 다듬어지리라. 몇 해 전 그 둥치에다 밧줄을 묶어 그네를 만들었다. 묶은 부분 아래가 본 등지만큼 커졌다. 위로 오르는 영양분 억제당해 그 묶음 아래에서 뭉치고 멈추어 아주 크고 둥글게 변형적으로 자랐다. 그 무게 견디다가 통으로 생 추락한 것이다. 억겁의 연고로 다듬어지는 천지 속 기운 못 받으니 당연 반역 순리다. 이상 성장. 재미 삼아 단 그네가 성황수로 여기던 이 나무를 핍박한 꼴이 되고 말았다. 바닥에 누워 쳐든 가지들이 회초리가 되어 꾸짖는 것 같다. 좋다고 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만 좋은 것이 된 이기심이다. 버찌나무는 한 해 겨울 마무리로 팔 뚝 하나를 잃으면서 시작되었다.
매화는 겨우새에 새 기운 받아들여 꽃 피운다. 벌 나비 불러 흥 가락 터트리면서 온 밭에 향기 날린다. 그 내음에 버찌 나무는 순 연록 빛 속살을 살금살금 올리는 옥봉꽃잎 모양새가 너무 앙큼하다. 꽃 잎새들이 만들어진다. 단락의 아픔이 언제 이냥 훤한 상처 괜찮은 듯 가지들 마다 한 껏 기운 올린다. 아직은 차가움이 왔다 갔다 하는 봄날. 갓난아기 손톱보다 작은 잎새 모양이 엉기어지면서 꽃이 핀다. 며칠 사이에 가지가지 사이사이 꽉 채우며 만발이다. 손톱보다 작은 꽃봉오리 온 가지에 별들이 내려앉은 것처럼 우아하게 펼쳐졌다. 꿀벌 천국이 된다. 하얀 꽃동산의 향기와 녹잎 풍경은 앙상블 환상의 꿈이 아니다. 하얀 눈 사탕의 한 그루 나무, 웅장한 자태로 멋진 장관 이룬다. 이렇게 버찌는 예쁜 청춘으로 봄의 왕관을 차지한다. 하지만 단락 된 한 번의 고통을 과연 지울까?
바람이 좀 더 불어 들면서 봄날이 더욱 익어 갈 때 하얀 꽃잎은 깊은 봄을 향한 시간 여행으로 낙화한다. 봄날인데 눈이 내리는 듯하다. 따뜻한 겨울날처럼 가지마다 한 잎 한 잎 살랑 살랑이다 우르르 내려오는 모습에 온몸이 전율한다. 땅에 다 하얗게 이부자리 깔리듯 바람이랑 놀러 다닌다. 눈이 날리는 풍경처럼 따사로운 햇살 맞이 꽃잎이라 마구 동심의 나래 펴진다. 천방지축같이 꽃잎 잡으러 촐랑이니 코흘리개 아이 따로 없다. 떨어진 꽃잎은 땅 위에서 아무 힘도 주지 않고 초연히 눕는다. 아무 데라도 좋은 듯한 자리 걱정 않는다. 시간에 바람에 삶의 공허를 알았을까. 한 없는 멈춤을 하고 있다.
나무 아래 만들어 둔 평상 위에 하얀 자부동처럼 있다. 차 한 잔 마신다. 푸른 하늘 달려가는 구름 무리. 자유라는 단어 아님 요망사항 방랑일까? 따라나서고 싶은 욕망이다. 가만히 한 뭉치씩의 구름을 엑스레이 영상처럼 찍어가며 본다. 어쩌면 엄니 중씨 모신 성주 우성 공원 산기슭도 지나갈까. 이 꽃잎을 한 바가지 담아 보내 주고 싶다. 한 켜로는 버찌의 하얀 꽃잎과 머리 위 허연 머리카락 엮어 본다.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 아담한 꽃잎과 할비의 슝슝한 머리칼의 덫. 꽃은 봄날 맞이 만장이지만 머리는 추수 맞은 겨울나기. 하얀 동색은 친구라며 억지로 비유하며 웃는다.
버찌는 토종 벚나무과다. 꽃잎 하나에 열매는 한 개부터 다섯 개까지 달린다. 연록으로 시작하여 진록 그리고 차차 붉은 색깔로 다려진다. 봄날이 다 가지전 여름 맞이할 때쯤 붉은색도 넘어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익는다. 올해는 성급하게 떨어지고 있다. 빨간빛으로 쌀알만큼 한 것이 꽃잎이랑 같이 떨어진다. 다 익으면 까맣게 달콤한 단맛을 내며 담근 주 재료로 아주 좋은데 떨어진다. 그나마 남아서 익어가던 열매도 어느 날부터 보이지도 않는다. 자유 낙화놀이를 해버린 것이다. 생물은 삶의 부유가 한창일 때 종자 번식을 위해 최고의 열매를 만든다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 열매는 속이 어쩌랴. 보는 이 서럽고 안타깝다. 단락의 고통이 지금의 이 모습일까? 아무 말도 없이 맞는 여름맞이다.
많은 잎새들이 하늘 가리면서 시원한 그늘 움막 꾸민다. 바람까지 더하면 한 여름날의 더위도 비켜 줄 것이다. 밭일하다 힘들고 땀이 나면 그늘아래 평상에 걸터앉아 쉬기도 한다. 물 한 잔에 여름맞이 잎새들은 더욱 기고만장이다. 열섬이 부딪칠 때 낮잠 한 숨자면 안성맞춤 명당자리. 하지만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계곡물 받아 내려오는 호스의 물로 폭포수처럼 덮어쓰다 보니 뒷전이 되었다. 꿀잠보다는 붓 들고 산속 풍경 놀이 학습하기 때문이다. 물론 버찌 꽃과 벌 소리도 같이 포함이지만. 그렇게 여름을 버찌나무가 데리고 놀며 보낸다.
태풍 온다는 일기 예보에 바람만 세차게 분다. 몇 번 강풍이 가지를 못 살게 달군다. 임시 정자의 비막이 퍼라이트 지붕이 들썩거리며 두려움에 도움 요청하는데 이 이파리는 싸대기 세게 맞고 견딘다. 버티다 버티다가 떨어져 날아간다. 밭으로 계곡으로 어느 곳 강제 이동, 강추다. 힘 받쳐서 살아남아 가지에 달려 있는 이파리 무슨 일 있었나 듯 그냥 자연스레 나부낀다. 자연에서 언제든 일어나는 현상이다. 선택되는 것이라고 해 봐도 되는 건가? 떨어지고 남아 있고 가을맞이 진행 중이다. 아직 단풍으로 물들기 이른 시기. 승리에 힘주는 둥지는 더 우람을 자랑하듯 보인다. 몇 가지는 앙상하게 하늘로 치드는데. 가을이다 하기 바쁘게 겨울 길목 같은 풍경이다.
뭇 나무는 짙은 녹색으로 가을을 맞는다. 산 위에서부터 물들어지면서 기슭까지 누렇게 퇴색되어 온다. 추억이라는 말을 델고 낙하하면서 날려지기도 한다. 경쟁보다는 꽃과 열매 그리고 가지와 같이 어울려 계절의 시기를 맞춘다. 가을 추수가 무엇인지도 마지막 순간으로 연명 놓기 한다. 달려온 계절의 경기에서 먼저 일지라도 늦어지더라도 겨울맞이 저장시기 계절. 이정표 없는 뒤안의 길 동면이 시작되는 것이다. 버찌 나무는 이들보다 먼저 추월한 시공의 현장을 당그런 작품 속 한 나무로 보여 주고 있다. 단풍 멋 보지 않고 하늘 향한 가지 끝 날에 남은 손가락 수만큼인 이파리 팔랑 인다. 가을보다는 겨울을 먼저 맞이한 것 같다.
새싹과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면서 낙하하고 땅속으로 가는 순리는 만년 세월 동안 그렇게 하여 왔다. 조금 빠르기도 하고 맞춰가기도 하고 늦기도 하고. 모태에서 젖먹이와 내 발 두 발 세발 걷기. 눈 뜨고, 머리 열리면서 선택하는 하여지는 인생 삶이 소설이 된다. 시간이 시대가 되어도 같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둔 경험 축적하고 선택을하면서다. 인계철선으로 엮인 인연. 어두움에서 박달 길 봇짐 나들이 길. 나만 위한 시간으로 한 자리는 비워 두고 싶다. 망망한 자유를 위해서다. 자연의 한 켜에 한 몸을 얹는다. 가슴 열어 즐겨보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다. 인생 공부다. 버찌 나무는 수련을 위한 겨울 잠자리에 든다. 겨울이 조용히 나무 둥지에 걸터앉고 있다.
17. 11. 24.
2023년 어름문학 10호 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