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태 소리
황보림
은행 CD기에서 등록금 뽑아 올리는 듯한 소리. 노적가리 닿을 듯 높아지던 늦가을 홀태* 소리는, 가난을 훑어 내리던 파열음이었다. 온종일 낱알 쏟아지는 소리에 마을은 찬 서리가 내려도 시들지 않았고 쉬이 잠들지 못했다.
여러 날 품앗이에도 지치지 않던 엄마, 짚단 더미가 당신 키보다 몇 번이나 높아져도 홀태를 놓지 못했다. 알곡 다 떨어준 휘어진 마디마디, 굽은 관절 삭아 내려도 홀태 날 같은 당신의 갈비뼈로 식솔들을 끌어안았다. 무쇠덩이도 골이 깊으면 파동이 이는 것일까. 가난을 훑어 내리던 소리가 울려 퍼지면, 울안 귀퉁이의 버드나무도 파르르 떨었다. 늦가을 내내 앙칼진 무쇠 날과 맞서는 엄마의 영역에 어린 소녀는 감히 들어서지 못했다.
가을볕에 달구어진 쇠 소리 가라앉을 즈음, 마당 한가운데 수북이 쌓인 나락 더미를 보며, 등록금 걱정을 놓던 엄마, 쭉정이 걸러내며 무쇠 날처럼 닳아 무디어졌지만, 아직도 서슬 퍼런 홀태 소리로 산다. 해마다 여문 가을 오지게 훑어 내리던 소리, 삶의 터전을 지키던 엄마의 무쇠심장 소리였다.
은행 CD기 앞에 서면, 알곡 쏟아내던 훌태 소리가 먼 진동으로 울려 퍼진다. 여 전사처럼 훌태 날을 앞세워 가난을 물리치던 들녘의 엄마, 아직 울려보지 못한 내 뭉툭한 무쇠 날, 해 저물기 전 통통여문 벌판으로 나선다.
*훌태 -벼를 훑는 옛 농기구
첫댓글 카페에 불이 꺼져 있어 부족하지만, 저의 자작시 한 편 올립니다
훌대소리와 더불어 풍요로운 가을 맞이하셔요 ^^*
잘 감상했습니다. 다음 모임때까지 모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ㅎㅎ
네 인우님! 좋은 시조도 많이많이 쓰시구요 ^^*
역시 자유시는 뛰어납니다. 은행 ATM기에서 홀테로 연결되는 치환과 상상이 돋보입니다.시조도 이런 치환과 상상에 형식만 입혀지면 최고의 작품이 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회장님의 격려말씀에 힘이 나는 아침입니다
항상 살펴주시는 마음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