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25. 진(盡)과 무진(無盡)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함[盡]이니
다함이란 모든 망루(妄漏)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하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體]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日] 아래 여러가지 그릇들을 놓아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곧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26. 불생불멸(不生不滅)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染漏心)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며,
염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27. 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보살계]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는지라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계란 청정한 마음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청정행을 수행하여 받는 바가 없는 마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청정하여 받음이 없는 행을 닦아서 불도를 이룬 것이니,
지금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받음이 없는 청정행을 닦는 사람은
곧 부처님과 더불어 공덕을 균등하게 써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과 더불어 깨달음이 같으므로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나는지라 지혜가 청정함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또한 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28. 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부처님과 법에 있어서 부처님이 앞입니까, 법이 앞입니까?
만약 법이 앞이라고 하면 법은 어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며,
만약 부처님이 앞이라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이어 받아서 도를 이룬 것입니까?"
"부처님은 법보다 앞에 있기도 하고 법의 뒤에 있기도 하느니라."
"어찌하여 부처와 법에 앞뒤가 있읍니까?"
"만약 적멸법에 의거하면 법이 앞이요 부처님이 뒤이며,
문자법에 의거하면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적멸법에 의해서 성불을 했으므로 곧 법이 앞이요 부처님은 뒤이니,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스승됨은 이른바 법이다'고 하였느니라.
성도하고 나서 비로소 십이부경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시니
중생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여 성불하므로 곧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인 것이니라."
29. 설통(說通)과 종통(宗通)
"어떤 것이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림이 곧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차이가 없음이 곧 설법도 통하고 종취도 통한 것이니라."
30. 도(到)와 부도(不到)
"경에 이르기를 '이르되 이르지 아니하고 이르지 않되 이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말은 이르러도 행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렀으나 이르지 못함이요,
행은 이르러도 말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지 않되 이르른 것이며,
행과 말이 함께 이르름이 이르고 이름이라 하느니라."
31. 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불법은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하니
어떤 것이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다 함은 처음 발심으로부터 드디어 보리수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마침내 쌍림에 이르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가운데 일체법을 모두 다 버리지 않음이
곧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비록 무념을 닦는다 할지라도 무념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으나 무상.무작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음이 곧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32. 지옥유무(地獄有無)
"지옥이 있습니까, 지옥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느니라."
"어째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합니까?"
"마음을 따라 짓는 바 일체 악업이 곧 지옥이 있음이요,
만약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곧 지옥이 없느니라."
33. 중생(衆生)과 불성(佛性)
"죄를 지은 중생도 불성이 있읍니까?"
"또한 불성이 있느니라."
"이미 불성이 있을진댄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도 함께 들어갑니까?"
"함께 들어가지 않느니라."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은 다시 어느 곳에 있읍니까?"
"또한 함께 들어가느니라."
"이미 함께 들어갈진댄 지옥에 들어갈 때 중생이 죄를 받음에 불성도 또한 함께 죄를 받습니까?"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함께 지옥에 들어가지만
중생이 스스로 죄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불성은 원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이미 함께 지옥에 들어갔을진댄 무엇 때문에 지옥고를 받지 아니합니까?"
"중생이란 모양[相]이 있음이니 모양이 있는 것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음이요,
불성이란 모양이 없음이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한 성품이니라.
그러므로 진공의 성품은 무너짐이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 땔 나무를 쌓으면 땔 나무는 스스로 무너지나 허공은 무너지지 않음과 같으니
허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땔 나무는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그러므로 함께 들어가나 함께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34. 삼신사지(三身四智)
"팔식을 굴려서 네 가지 지혜를 이루며 네 가지 지혜를 묶어서 삼신(三身)을 이룬다 하니,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함께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홀로 이루는 것입니까?"
"눈.귀.코.혀.몸의 이 다섯 식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육식은 의식이니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심식은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며, 제팔함장식은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느니라."
"이 네 가지 지혜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본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르니라."
"본체가 이미 같을진댄 어째서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울진댄 바로 하나의 본체일 때 어떤 것이 대원경지입니까?"
"담연히 공적하여 둥글고 밝아 움직이지 아니함이 곧 대원경지요,
능히 모든 육진에 대하여 사랑함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의 경계에 들어가 잘 분별하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재를 얻음이 곧 묘관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 하여금 일을 따라서 응용하여 모두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이 곧 성소작지니라."
"네 가지 지혜[四智]를 묶어서 세 가지 몸[三身]을 이룬다 함은
몇 개의 지혜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지혜가 홀로 한 몸을 이룹니까?"
"대원경지는 홀로 법신을 이루고,
평등성지는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는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세 가지 몸도 또한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분별하여 다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한 것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확실히 알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본체의 성품은 모양이 없어서 머물음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서니 또한 머물음이 없는 근본도 없느니라."
[출처]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25~34|작성자 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