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군 왕릉은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 강릉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의 북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김주원의 묘소는 한때
실전(失傳)하였다가 김주원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이 조선 명종(明宗)때에 강릉부사로 와서 찾아냈다고 한다"
- 디지털강릉문화대전(http://gangneung.grandculture.net/) 에서 발췌
능산 자락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평지다.
장승과 솟대가 마을 초입에서 우리를 반기고, 한가로운 풍경 한 켠엔 오래된 기와목조 건물이 몇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예스러움이 많이 남아 있어서인가 해살이 전통체험마을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다.
순박한 모습의 어느 집 처마에 명태 몇 마리를 나란히 걸어 두어 겨울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건조되고 있다.
“ 마을 주변으로 태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형상의 사기막리 마을은 200년 전 사기 막사발을 만들던 움막이 많아 사그막
또는 사기막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지금도 가마터와 사기그릇 잔흔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해살이 마을에서는 막그릇처럼 질박하고 친근한 전통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다.
마을이름인 해살이는 요즘은 희귀식물이 된 창포가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서 붙여진 것으로 볕이 들기만 하면 잘 자란다
하여 해살이풀이라고도 하고 여러 증상에 도움을 주는 약초로 아픈 것의 해답이 된다 하여 해답이풀이라 불리기도 한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http://haesari.invil.org 에서 발췌.
라모나님에게 햇살이 많아서 해살이 마을인가봐요 라고 뻥친게 마음에 걸려 인터넷 자료를 참고했다.
마을엔 개두릅나무(엄나무)를 많이 심어 농가소득에도 일익을 하고 개두릅축제를 봄에 한단다. 나는 참두릅보다 개두릅을
좋아하는 데, 강릉이외 타지에서는 살수도 없어 개두릅 잎을 살짝 삶아 씹으면 쌉쌀한 그 맛이 늘 그립다.
해살이 마을을 지나니 갈골한과마을과 잇닿아 있다.
라모나님과 난 달콤한 한과가 먹고 싶어 길을 찾았지만 마을 건너편 둑으로 이어진 길로 걸어 내려왔기에 아쉽지만 입맛만
다셔야 했다.
뱃속에서 쪼르륵 신호소리가 들릴 때쯤 유명하다는 매운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맘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끓여낸 추어탕은 얼큰하고 구수했으며, 땅을 파고 묻은 독에서 방금 꺼낸 듯 사각사각 얼음이 씹히는
김치 맛이 일품이다.
<< 옛날집 >> 전화 ; 033 - 647 - 3733,/ 아주머니 폰 ; 010 - 9699 - 3733.
한과마을을 지나 큰 도로 하나를 건너니 베어낸 볏 대공만이 삐죽이 나와 하얀 눈을 덮고 있는 제법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인공구조물 제방 벽이 어느 순간 자연 제방으로 이어져 있고 강폭도 넓어졌다.
제법 굵직한 위용있는 모습의 소나무가 길가에 있고, 넓은 밭 한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좁은 논두렁을 한 줄로 길게 따라 걷다 보니 조그마한 야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중심에 불끈 솟은 오대산 줄기 하나가 동해로 내려오다가 잦아지면서 뱀처럼 뻗어 나와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모습이라고 하는 교산(蛟山)이다. 그 교룡의 머리 부분에 애일당이 있었고 허균의 호 교산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은 순탄치 못한 벼슬길에 부침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50세의 나이에 참형까지 당하고 말았으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차갑다.
산 자락을 휘돌아 나오니 비릿한 바다냄새가 훅 다가온다.
사천 해변에 도착했다. 낮은 파도가 모래를 껴앉으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기분이 아주 좋다.
작은 마을의 선착장 한 어귀에 비닐로 만든 포장마차 식당에선 멀리 한양에서 온 회원들을 위해 누군가 앞장서서
양미리를 굽는다.
양미리도, 情도 연탄불위에서 빨갛게 익어간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깊어져 왔을 삶을 생각하며 길을 떠난 17킬로미터의 도보여행을 마쳤다.
강릉 회원분들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배려와 좋은 길을 개척해 주신 이순원샘. 이기호 대장 등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2010.1.17일 야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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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 살 이 마을.... ^ ^
함께 걸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종종 오십시오. 바우길은 언제나 바우여신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화목과 건강을 줍니다.
좋은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이 길을 걸을때는 또다른 느낌으로 걸을 것 같습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늘 이곳에 남겨 두고 가셨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사천항에서 떠나시는 뒷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But I have promises to keep"
해ㅅ.ㄹ이 마을 그걸 전 해솔이 마을이라 읽었었지요. 해와 솔이 많아서 붙여진 마을 이름인줄 알고...ㅎ 해살이 마을 오랍들에서 살았다는 오랍들님이 곁에없어 마을이름 유래를 들어볼수 없었는데 여기서 알게 되는군요. 창포=해살이풀=해답이풀 ⇒해살이 마을. 그 마을을 진입하며 느낌은 진짜 햇살이 집중되는듯 했고, 뒤 돌아보 ㄴ 산 풍경은 부채처럼 펼쳐져 있기에 개인적으루 맴에 들던 해살이 마을.마을주변엔 모두 드룹밭. 뽀롯이 싹트는 봄날은 햇살과 함께 더욱 정겨움으로 다가올듯한 그 마을이 참 좋았습니다.
추어탕집. 고추장이들어가는 강릉식 음식, 고추장 칼국수,고추장 추어탕 옛맛이 항상 그리웠는데 그곳에서 그 추어탕 옛맛을 보았던 기억에 언제고 그 길은 그 집이 기억에 남을듯 하네요. 여름철 그곳을 지나게 되면 마당옆에 있는 자두도 한입 깨물어 볼수 있을듯 함에 시큼한 얼굴찡그림으로 다가오는....
사천천 뚝방길에선 가시고기잡던 옛 추억이 함께 걷고, 천 건너 한참 생산씨즌인 한과마을 아쉬움....
음~~~ 교산이 그런형태였군요. 많은것을 알게되는 후기 잘~ 보았습니다.
음~~~ 양미리 또 먹고싶넹.
역시 서울시의 역사해설사님답게 후기도 역사와 마을의 어원과 근원을 따져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여럿이 함께 걸어서 기쁜 길동무였구요...
한양의 박물관에서 역사해설을 하시면서도 강릉과 바우길에 깊은 애정을 두심에 또한 감탄과 고마움을 내려 놓으면서....
이렇게 설명과 함께한 후기 못간 사람들에게 좋은 설명이 되네요. 잘 보았습니다.
카페에 올려진 사진으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사진 찍으신 분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았는데...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