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주 테마여행 / 3차
1. 일 시 : 2010. 04. 11(일)
2. 시 간 : 무양청사 / 8시 출발
3. 장 소 : 충주 월악산 만수봉(983.2m) / 포암산(961.7m) / 하늘재 / 미륵사지
4. 테마여행 일정
◇등산코스 : 만수휴게소-만수봉-마골치-포암산-하늘재-미륵사지-주차장 / 5시간
◇문화탐방 : 하늘재 / 미륵사지
◇별미탐방 : 닷돈재 야영장 / 오리불고기로 하산주 준비
5. 산행길라잡이
◇ 상주에서 출발하여 문경을 경유하여 수안보 진입전 삼거리에서 우측의 월악산 국립 공원으로 진입하여 만수 휴게소에 차를 주차한 후 산행을 시작 / 만수계곡을 오르면 만수봉 정상에 도달함 / 만수봉 정상에서 능선을 계속 이어 마골치를 지나 포암산을 오른 후 하늘재에서 미륵사지로 하산하는 것으로 산행계획을 하였음 / 하늘재에서 포암산 구간은 산불감시구간으로 현재 통제를 하는 관계로 하늘재로 하산 하다가 샘에서 우측으로 하산을 할 예정임
6. 테마여행 길라잡이 /하늘재 / 미륵사지
◇ 하늘재의 유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사이를 이어주는 도의 경계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하늘재'는 525미터로 이름처럼 높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미륵사지에서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은 하늘재 고갯마루에 이르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이어진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신라 제 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했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충청북도는 자연환경명소 100선의 하나로 선정했고,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km 구간을 ‘역사 생태관찰로' 로 조성했다.
◇ 서기 935년 10월 신라 경순왕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도모하여 땅을 들어 태조에게 항복하려 할때, 왕의 태자가 말한다. 국가존망은 반드시 천명에 달려 있는 것이니 마땅히 충신, 의사와 더불어 민심을 수습하여 스스로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한 다음에야 그만둘지언정 어찌 하여 천년 사직을 하루 아침에 경솔하게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이에 경순왕 답하기를 .. 외롭고 위태로움이 이와 같으니 그 형세가 더 이상 나라를 보전할수 없다. 이미 강성하지 못한 터에 겸허하지도 못해 무고한 백성으로 하여금 간과 뇌가땅에 나뒹굴게 하는 것은 내가 차마 할수 없는 일이다.
왕은 곧이어 시랑 김종휴로 하여금 태조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을 청하였다. 태자는 통곡하면서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산길을 따라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잎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를 마의 태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의태자가 덕주공주와 함께 개골산으로 향하던 중, 문경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꿈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이 “서쪽고개를 넘어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절을 지으면 억조창생에 자비를 베풀수 있다” 고 일러준 뒤 사라졌다고 한다. 꿈을 깬 마의태자가 덕주공주와 상의하니 공주도 똑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매는 하늘재를 넘어와 마의 태자는 미륵석불입상을, 덕주공주는 월악산 마애미륵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 미륵사지
충북과 경북을 잇는 하늘재의 서북 방향에 펼쳐진 옛 절터다.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석굴사원 흔적에 남아 있는 보물 제96호인 석불입상은 북향으로 석실의 크기가 가로 9.8m 세로 10.8m 높이 6m의 상당히 큰 규모다. 외부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한 형태다. 석축 위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없어졌다. 그 앞에 보물 제95호인 5층 석탑과 지방유형문화재인 석등,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확실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발굴 때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고려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마의태자” 이은상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감으시고
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 보셨네
애달프다 우리 태자 그 마음 뉘 알고
월악산 험한골에 한 품은 그 자취
지나는 길손마다 눈물을 지우네
태자성 옛터엔 새들이 지저귀고
거하신 궁들은 터조차 모를노다
설워라 우리 태자 어데로 가신고
황천강 깊은 물에 뿌리신 눈물만
곱곱이 여울되어 만고에 흐르네
7.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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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에서 미륵사지를 걷는 길은 산림욕으로 솔향도 나고 생태관찰로로 알고 있는데 기대가 됩니다. 저는 포암산을 토암산으로 기억했어요. 좋은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멋진 산행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