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은 간단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코끼리를 넣고 문을 닫으면 끝이다. 부끄럽거나 두렵거나 혐오스러운 걸 없애는 방법 역시 어렵지 않다. 그것들을 장록 속에 깊숙이 넣은 다음 잊어버리면 된다.
참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문을 굳게 잠근다. 숨기고 외면한다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갇혀진 이들의 소리는 그저 혼잣말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는 그들의 말에 집중했다. 애절한 외침을 무시하지 않았다. 법정에, 세상의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얼굴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보려고 하지 않았던 얼굴들. 수많은 얼굴들이 존재한다. 아웃포커싱한 얼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놓은 책 <법정의 얼굴들>이다.
정신질환 범죄를 다루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끼는 점은, 내가 정신질환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알아야 정확하게 처벌하고 조치할 수 있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에 대한 몰이해, 더 나아가 혐오는 끔찍한 수준이다. 아예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범죄에 있어서만큼은 정신질환 자체를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정신질환 범죄를 냉정하고 이성저긍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뿌리 깊은 혐오와 공포다. 그러나 범죄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이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이다.
편견은 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정신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다수 정신질환자가 단 한 번의 촉발로 즉시 심각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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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가 한 번이라도 아서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줬다면, 사장과 동료들이 조금만 더 배려했더라면 우리가 아는 조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조를 보일 때 막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줬다면, 이들의 혼잣말을 지나치지 않았더라면 조커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거대담론만을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섬세하게 곁을 살펴야 한다. 무시하거나 흘려들어도 되는 사소한 목소리는 없다. 특히 약자의 소리는 겨우 들릴 듯 말 듯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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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단 한 사람도 놓쳐선 안 된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가 있다.
중간중간 목차 페이지 속 얼굴이 점점 드러나는 연출…
첫댓글 "편견은 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말이 와닿네요.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못하는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럴수록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힘들뿐인데 말이죠..이해조차 못하며 때때로는 이해하려고 하는것을 포기할때도 있죠. 저도 읽으면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사건을 보며 공감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많은 부분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 무척 새로워요! 책에 무척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했지만, 불편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덮어두고 도려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대처 방식은 일관된 것 같습니다. 외면한다고 냉장고 속 코끼리가 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에요. 책을 읽으며 여러모로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챕터 나뉘며 얼굴 드러나는 연출 디테일 캐치한거 👍🏻👍🏻👍🏻 저는 몰랐어요…^^ 특히, ’무시하거나 흘려들어도되는 사소한 목소리는 없다‘ 는 구절이 인상깊은데, 왜냐면 저는 간혹 무시하는 목소리가 있긴 했었거든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좀 반성하게됐어요. 그 사람이 약자는 아니지만,, 맞는소리하는걸수도 있는데 지레 무시하는습관부터 들인것같아서요. 저도 아웃포커싱된 얼굴들을 마주하려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어머...? 그런 디테일 전혀 발견 못했잖아요...(역시 이럴 때 독서 모임의 짜릿함을 느낍니다 후후) 눈 감으면 내 눈엔 안 보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래서인지 도저히 참지 못하겠으면 눈을 질끔 감을 때도 마음인 늘 불편하더라구요.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말이예요...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각자에겐 결국 유한한 에너지가 있는 거니까, 혼자 발버둥 치다가 그 사람도 가라앉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