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고 많이 부족하지만 전원주택을 가지게 된
사연과 노년의 이웃이 겪는 비애,
동네 강아지 사연, 북해도 기행시를 문세를 통해서
지인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
백화정 연가 1
시집와서 애들 어릴 적부터 단 한 뼘이라도 좋으니
마당 있는 주택 집에서 살고 싶다고 여태껏 한평생
노래 노래 부르고 발이 닳도록 구경만 실컷 다녔지만
꼬장꼬장한 남편 대꾸도 없이 돌아앉았다
애들 키우느라 궁색한 처지라 할 수 있는게 없어
무엇이든 하겠다고 납작 엎드려 주님께 빌고
빌었더니
천사를 보내시어 마당 넓은 촌집을 주시니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평생 소원 풀었네
기적 같은 현실 앞에 설렘으로 밤잠을 쫓아 내고
도화지에 마당 설계도를 그리고 또 그려서
한평생 못 잡아 본 삽질 수 없는 괭이질 호미질
골라낸 돌덩이 몇 수레 흘린 땀 몇 바가지
잔디 깔고 나무 심고 꽃씨 뿌리며 쏟아낸 정성
여린 손 마디 마디 핏 물집 곪아 병원 오간 세월
더해서 일념으로 기도하며 끈기로 버텨 서니
대문 안 백화정은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백화정 연가 2
한골 마을 정겹게 포개진 이웃 헤집고 돌아
약간은 우뚝 선 곳에 하늘빛 대문 있었고
베드로의 도움으로 천국 문 들어 섰다
정갈한 잔디 부지런한 주인 앞에 납작 엎드리고
환호하며 반기는 허브향기 횃불 든 맨드라미
넉넉하고 열정적인 주인 쏙 빼서 닮았다
향수 불러온 목단 작약 점잖음 잃지 않으려 애쓰며
담벼락 밑 수줍은 듯 모여 앉아 어깨너머 사이로
늦은 손님 구경하는 구절초 가족 코스모스 가족
어느덧 보따리 챙겨 떠날 채비 하고 있네요
그들에게 인사 나누고 뒤란에 돌아서니
열렬히 반기며 얼굴 붉히는 맨드라미 양쪽 뺨 뜨겁고
오래도록 기다린 수국 나이든 얼굴에도 기품 넘치며
가을 축제 제2막 전성시대 예고하는 한 다발 국화꽃
몽우리에 초대장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감 홍시 곁들이고 메리골드 꽃잎 띄워 따뜻한
차 한 모금 넘기며 부끄러운 습작 시 한 수
차 향기에 실어 읊으니
사랑하는 이웃들 얼굴 더욱 환하게 밝아 왔고
어느새 내 마음은 주님이 가꾸시는 작은 정원에
와 있었다,
애물단지
돌아서면 깜박대 마누라 성화에 떠밀려
치매검사 받았더니 판정은 정상인데
마음이 허수하여 도서관 끄트머리 앉아
책 가슴을 파헤쳤지만
어느새 고독한 그림자만 골목길에 누웠네
녹슨 대문 서둘러 여는데 마누라 날 선 잔소리
쇳소리와 한편 되어 긁어대니
시계 추에 매달려 반 때쯤 눈치 보다 저녁 약속
볼모로 세워두고 막걸리 한 사발 시름을 씻었는데
사라진 핸드폰 기억은 터널 속
근심으로 때운 밤 이불 속에 덮어 두고 장례미사
장지수행까지 하루를 봉헌해서 앞마당에 내려놓는데
‘판정은 정상, 돌아서면 깜깜’
놀리는 마누라 손에 애물단지 들려 있네요
‘대체 이게 뭐라고 손바닥만 한 게’
미운 마음 겨우 달래서 열어 보았더니
부재중 그리움이 눈처럼 소복이 쌓여 있었다
시락이의 도둑맞은 웃음
파출소 건너편 도시락집 백옥 털 빛 웃음기 가신
그림자 한 살배기 진돗개 산책길 만나 친구 되었고
한여름 막 데려다준 어느 날 저녁
도시락집 아저씨 기막힌 사연 따라 그 아이 도둑
맞은 웃음 찾아갑니다
추석이라 집 떠난 가족 모두 모여
즐거운 웃음소리 담장타고 넘던 지난 가을
타다 꺼져 내다 버린 연탄재처럼
아저씨네 가족 되어 도시락집 막내답게
폼 나는 이름 얻어 시락이는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슬픈 운명 굴레 뺑소니차 바퀴 아래
옭아매어 반쪽 몸 부서지고 말았다며
눈시울 붉히는 아저씨 연신 담배 빨아대며
애꿎은 연기 탓 합니다
안타깝고 급한 마음 엉켜 붙어 이리저리 뛰어봐도
천만 원 넘는 수술비 칼날 되어 궁색한 살 도려내니
슬픈 울음 창살에 얼어 붙어도 매정한 이웃들
안락사 시키라네요
포기할 수 없는 마음으로 하얗게 샌 이튿날부터
시멘트 보도블록 갈라진 틈새 민들레 노란 얼굴
내밀 때까지 진통제 맞혀 뼈 붙이고 주무르길
여러 날 수천 번 이르니
그토록 시락이를 옭아맺던 운명의 굴레가
마침내 벗겨지고 기적처럼 다시 일어 섰답니다
우리는 도시락집 앞에서 이웃집 천사를 만났고
그 옆에 씩씩하게 서있는 시락이에게 말했습니다
‘한 살배기 참 모질게도 먹었구나 이젠 웃어도 돼’
오늘도 시락이는 멀어져 가는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두 눈에 그리움을 가득 담고서
도야호에 숨겨두고 온 비밀
어둠 타고 숨어든 여정은 북해도 숨은 비밀도
잊은 채 여독에 젖어 깊은 잠에 빠졌다
덜 깬 잠 끌고 가 대욕장(大浴場) 한 켠에 세우자
검은 장막 서서히 걷히고 은둔의 실체가 드러났다
대체 얼마나 큰 노여움 있었기에
수백리 이토록 큰 상처 남겼고
어떤 큰 다툼 있었기에 수백길 끓는 심연 속에서
중도(中島)는 용솟음 쳤는가
순백 얼굴 하늘 인 애조후지
태고의 비밀을 숨긴 채 바라 보고만 있었다
열화 같은 분노 채 삭이지 못해 누린내 흘리는
일렁임 속에 고된 몸 담그고 긴 한숨 내쉬자
전율의 등 타고 적막감 흘렀다
얼마쯤 잊었을까 도야의 얼굴이 확연하게 다가왔
을 때 황급히 유카타 챙겨 입고 대욕장 문을 나서니
기다림에 지친 아내 얼굴이 활화산처럼 시뻘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북해도(홋가이도): 일본 열도의 4개 주요 섬 중 하나로
북단에 위치
* 도야호 : 시코츠도야국립공원 내에 있는 칼데라호
(둘레43km,깊이 평균120m)
*대욕장(大浴場) : 대중 온천탕
*중도(나카지마) : 도야호의 중앙부분에 솟아오른
4개의 섬으로 화산의 중앙 화구
*애조후지(요태이산): 북해도에 있는 잠재적 활화산
(높이 1,898m)후지산을 닮았다고 애조후지라 불림
*유카타: 일본인들의 평상복으로 실내용이나 목욕용 가운